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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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첫 한겨레 21(1143)‘2016년 올해의 판결이란 기사를 실었다. ‘박수친다, 이 판결’, ‘경고한다, 이 판결이란 이름으로 각기 5건씩 선정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판결로는 촛불시위 금지 통보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 최악의 판결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기록 비공개 결정이다. , 최고의 판결 덕분에 점차적으로 청와대 100m 앞까지 촛불시위의 무대를 확장시킬 수 있었고, 최악의 판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외면당하고 지금도 소모적인 논쟁과 더불어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렇게 되면 최장 30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같은 피해에는 같은 방법으로 보복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사적인 복수, 귀족의 권력남용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오늘날에는 문명화된 법전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법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의 주인공들 직업은 법정드라마의 단골 직업인 변호사, 검사가 아니라 판사다. 현직 부장판사가 썼으니 당연하겠지만 역시나 생소하다. 그건 우리가 익히 보아온 발로 뛰어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을 설득하는 등의 그림이 그려지는 액션의 역할이 아니라, 제출된 기록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역할이기에 그렇겠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고리타분할 수도 있겠고, 다수의 법감정과 배치되는 판결이 나올 때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어진다. 몸으로라도 뛰면 최선을 다했다는 표시라도 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당사자들이 아니면 그 어려움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작가 또한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의 모습을 그리되, 그것을 재판하는 판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신비의 베일이 불신과 오해만 낳고 있다는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 ‘2016년 올해의 판결에 전부 동의한다. 최고의 판결에 엄지척을, 최악의 판결에 혀를 차고 분노하는 건 내 성향이 크게 좌우했기 때문이겠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최악의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게 욕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법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 사법부 안에는 내가 동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최악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해하고, 모르는 판사들이라고 해서 욕을 한다는 건 일단 논리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감정이란 전제를 깔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20년 정도 판사로 일하면서 든 생각은 법정이든 세상이든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재판부가 화끈하게 결론을 내린 것은 하나도 없다. 항상 그런 식이다. 판사는 늘 벽에 부딪힌다. 햄릿처럼 갈등하고 고민한다. 정작 해결의 실마리를 쥐는 것은 시민들이다.” 2부 고깃집 사건을 보면 조선족 종업원에게 동정이 가지만, 원고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도 된다. 4부 자살기도 사건을 보면 회사 팀장의 압박도 상당하지만 집안과 아내에 대한 스트레스도 그에 못지않았다. 6부 교수와 대학원생 여제자의 준강간 사건의 내막 또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7부 국민참여재판을 보면 작가가 말한, ‘정작 해결의 실마리를 쥐는 것은 시민들임을 볼 수 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언컨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법을 믿고, 법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최대한의 권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아울러 성향이 다름에도 모두가 감동을 느끼기도 하는 건 법에도 눈물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겠다. 법이 만능이 아님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이 더욱 신뢰를 받으려면 시민들이 이끌고 판사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작품 속 세 명의 판사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법과 판사를 믿어주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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