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독했다고 어설프게 아는 척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얕은 감상이 금방 티가 나기에 솔직한 감상을 적는다. 1권을 일주일, 2권을 삼일 동안 읽었다. 1권의 삼분의 이 이상을 밑줄을 좍좍 그으며 봤다. 초반에 인물관계며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읽을수록 헤맬 거란 생각에 약간은 전투적인 자세가 됐다. 그러다 밑줄을 포기한 건 다름 아니다.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서술방식의 이야기전개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아서다. 그러다보니 소설을 즐기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게 돼버렸다. 마치 수험서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소설을 즐겨보는 첫 번째 이유는 내 입맛에 맞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다면 소설을 볼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밑줄을 그으며 자꾸 뒤를 넘겨 확인하고 일부러 외우고 심지어 메모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건 몰입의 가장 큰 적이며 소설의 재미를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진도는 안 나가고 남은 분량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리라. 잘 몰라도, 이해가 좀 안 돼도 그냥 마음 편히 읽어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1권 마지막 장을 덮었다. 1권만 먼저 샀기에 2권에 대한 고민이 잠시 있었다. 시작한 건 끝을 본다는 오기 따위는 내게 없다. 언제든 힘들고 어렵고 하기 싫으면 그만 둔다. 단 그 선택을 하기 전까지 깊이 생각하고, 선택을 했으면 책임은 확실히 진다. 책 하나 더 추가로 사는데 이런 말까지 하나 싶기도 하지만, 1권만 먼저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듯싶다. 그만큼 1권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재미를 느끼기에 힘든 측면이 있다. 전체적인 구성에서 이 정도 분량을 사건을 위한 떡밥으로 깔아둔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고, 구성방식이고, 초반에 무조건(?) 흥미를 붙잡아둔다는 다수의 전개방식과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낯설거나 올드한 느낌, 지루한 감은 있다. 그럼에도 2권을 구입한 건 다른 사람들의 2권 리뷰를 훑어봤기 때문이다. 1권과는 다른 스피디하고 흥미로운 전개 등의 표현이, 과연 무대가 되는 호키티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2권은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봤다. 완독한 후 바로 드는 생각.

"47년 맨부커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의 천재적 작품!(홍보문구) 을 읽어냈다!"


자, 이 작품의 내용을 한 줄로 말하면 이렇다.

1866년, 뉴질랜드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하는 호키티카란 마을에서 스테인스란 젊은 갑부가 사라지고, 안나라는 창녀가 자살시도를, 크로스비란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과연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작년 말, 문근영 주연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약간은 아쉬운 시청률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봐서 기억에 남는데, 이 드라마 역시 '대체 이 아치아라란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사람들이 쉬쉬하며 문근영을 따돌리는 걸까?' 란 궁금증을 끊임없이 자아내게 했다. 그러니까 ‘루미너리스’나 ‘마을’이나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가 소재의 컨셉트이긴 한데,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이 마을에서 또는 그때 무슨 일이, 아니면 당시의 누군가가, 라는 건 사건의 기본적인 얼개를 나타내는 표현일 뿐 정작 중요한 건 무슨 일 때문에 벌어져서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이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제라는 건데, 이 작품 루미너리스의 주제가 소재이자 배경이 되는 '골드러시'. 즉, <주제=소재=배경>이라는 거고 그렇다면 이 작품은 초반의 조금은 지루한 전개부터 마지막 탐욕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주제를 대놓고 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바로 골드러시 말이다.


골드러시란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말한다. 왜 몰려들까? 금이 있기 때문이고, 그건 일확천금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금'은 '꿈' 또는 '탐욕'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정직하게, 최소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꿈의 범주에 넣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탐욕이 된다. 그리고 금을 꿈으로 풀이할 수 있기란 매우 힘들다는 걸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다.


[2권 p 640. 살인이나 절도, 반역 같은 데에는 신경 쓰지 말게. 진정한 범죄는 사기뿐이라네. 광부의 희망을 꺾는 짓이야. 광부들이란 가진 게 오로지 희망밖에는 없는 사람들이거든. 광부에 대한 사기는 두 종류가 있지. 빈 광산에 금을 심어서 속이는 게 첫 번째이고, 빈 광산이라고 주장하는 게 두 번째야.

- 금광촌 거물 매너링이 젊은 갑부가 되는 스테인스에게 하는 말.


p 488. 아가씨가 알아둬야 하는 게 있어. 금광 마을에선 관대함 따윈 없다고. 관대한 행동처럼 보인다면, 다시 한 번 들여다봐.

-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크로스비가 창녀 안나에게 하는 말.]


가진 게 오로지 희망밖에는 없는 광부들이 사는 금광 마을에, 한 몫 잡았으나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크로스비가 마을에 갓 흘러들어온 안나에게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꿈(희망)이 있고, 꿈을 찾아 왔으나 관대함을 기대하지 말라는 건 결국 금광 마을 자체가 탐욕으로 이뤄졌다는 말이고, 그 탐욕의 범죄는 살인이나 절도, 반역이 아니라 바로 사기라는 말도 꿈의 좌절이 얼마나 광부들에게 살인보다 더한 짓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결국 골드러시라는 건 허황된 꿈, 탐욕스러운 짓에 불과하다는 얘기겠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골드러시를 감행할까? 그것이 헛된 희망이라는 걸 몰라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꿈이라고 포장된 금보다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 때문이 아닐까싶다. 오로지 일확천금이라는 목적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보자는 것. 작품 초반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중심역할을 하는 무디도 탐광의 꿈을 안고 마을에 들어왔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안나도 어쩔 수 없이 창녀가 되기 전에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찾아 금광 마을에 왔다. 젊은 갑부가 되는 스테인스 또한 일확천금의 목적보다는 탐광이란 일 자체에 매력을 느껴 온 것이다.


[2권 p 544. 오래전부터 신비롭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탐광꾼의 삶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도에 없는 외로운 해변에 금이 보이지 않게 숨겨진 채로 반짝이는 것을 상상했다. 널따란 바다 위로 노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골짜기 사이를 말을 타고 달리고, 맨땅에서 잠을 자고, 나무로 된 선광대로 물을 거르고, 깜부기불 위에서 막대 주위에 광부의 반죽을 감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이 찾은 부가 인류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그걸 자신의 두 손으로 땅에서 파낸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 스테인스의 생각.]


그러니 골드러시라는 단어 또는 행동의 본질에는 금이라는 탐욕 이전에 희망이나 꿈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고, 그것들이 모여 금광 마을을 이룰 때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내내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런 순수했던 골드러시가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살인+실종사건과 연결시켜 추리적인 구성으로 보여줌으로써 골드러시의 본질적인 면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비밀의 중심은 '누군가'에 찍혀있다. 이 누군가는 용서할 수 없는 나쁜 놈이다. 그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렇다. 이 작품 루미너리스의 중심에는 카버와 리디아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소수의 그들이 행한 추잡한 비밀에 한 마을이 기이해지고 발칵 뒤집혀진다. 탐욕이란 욕망에 하나둘 동조하고 그것이 결국 한 마을 전체를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작품에서 '변질된 골드러시'란 행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탐욕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2궁 별자리와 7개의 행성의 특징과 성격에 빗대어져 만들어졌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좀 더 작품의 맛을 진하게 느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완독한 사람으로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넘어가면 그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보는 데 있어 큰 지장은 없다. 별자리를 빗댄 인물의 특성은 소설적 완성도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골드러시'고 말이다. 2권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맨부커상을 읽어냈다!' 였다. 작품의 내용을 한 줄로 간략하게 말했지만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혹시라도 나처럼 읽는 게 쉽지 않았다면 그래도 읽는 동안 느꼈을 나름의 재미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흔치 않은 골드러시란 소재의 작품을, 12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그것도 유명하다는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을 읽어냈다는 자기만족으로도 책을 봤던 시간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논문을 쓸 게 아니기에 이 정도로도 난 만족한다.

(한강 작가님의 맨부커상 후보를 축하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