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힘을 가진 자, 정당성을 획득하라!

 

 

근래 마블의 어벤저스 캐릭터들을 필두로 히어로물이 강세다. 실재적인 느낌을 주는 CG의 발전이 큰 몫을 했기에 이런 인기가 가능하지 않은가 싶다. 거기에 초능력을 갖고 있는 능력자들의 실존적 고민이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2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능력자들 영화의 주류는 단순한 선악의 대결, 힘을 가진 자들의 해프닝 수준이었다. 지금의 히어로물의 인기를 한층 끌어올리고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작품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부터가 아닌가 한다. 단순히 능력을 가진 자의 해프닝이 아닌, 능력자로서의 자신의 존재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그도 한 인간임을, 절대적인 영웅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임을, 상처받고 아파하고 깨달아가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능력의 차만 있을 뿐 그들도 보통의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괴리감은 좁혀지고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건 곧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게 만들고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꿈도 못 꿀 절대자가 아닌 그저 나보다 우월한 능력자. 그리고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초능력은 막연한 환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많은 히어로물은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우린 꿈을 꾼다. 능력자의 꿈을.

 

 

작품에서 14세 소년 스스미에게 주어진 능력과 이후의 파괴적 행동은 위에서 언급한 그런 초능력이 생겼을 때의 부정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가족이 죽은 후, 가출패밀리에 가입해 거리에서 생활하다 끝내 폭주하는 스스미의 모습은 뜻하지 않게 갑자기 생긴 초능력의 남용이 얼마나 파괴적일지, 자신을 비롯한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여파를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이건 꽤 가능성 있는 현실적인 가정이다. 선행학습이 어쩌고 하면서 학원을 몇 개씩 다녀야하는 현실의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우연히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되고 좌충우돌하다 동네를, 세계를 구하는 소년영웅을 기대하는 건 영화로도 충분하다. 괜히 불만스럽고, 또래보다 싸움을 잘 하고픈 그 나이의 청소년에게 갑작스레 생긴 힘의 사용처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싸움을 잘 해 돋보이고 싶은 정도가 고작인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파생되는 사건들에 힘겨워하고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폭주를 하는 스스미의 모습은 어쩌면 배트맨이 하는 실존적 고민보다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소수점 아래의 부유한 생활환경에서 스스로 배트맨이 되고자 했고, 존재의 이유를 다시 사유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딱 우리가 바라는 능력자의 모습일 뿐이지만, 바라지도 않았고 존재감이 완성되지도 않은 미성년의 스스미에게 힘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일 뿐이다. 학원에서도 가르쳐줄 수 없는 힘의 사용법을 모르는 스스미, 결국 폭주하는 스스미를 통해 감당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의 모습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스스미와 대척첨에 서 있는 또 다른 주인공 안시현은 ‘힘을 가진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힘의 출처를 알게 되고, 힘의 사용법을 배우고, 힘의 정당성을 획득한 안시현을 통해 능력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절대적 진리를 확인시킨다. 안시현은 만들어진 영웅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환호를 보냈던 영웅의 다름 아니지만, 스스미는 그런 능력을 꿈꿨던 우리에게 갑자기 힘이 주어졌을 경우 가장 벌어질 확률이 높은 상황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힘을 가진 자의 막중한 책임감을 환기시킨다.

 

 

작품은, 스스미와 안시현이라는 개인을 통해 ‘힘을 가진 자의 책임감’을 물었다면, 이 물음을 확장시켜 백원단과 방바재단이라는 두 단체의 대립을 통해 ‘힘의 정당성’까지 질문한다. 통제할 수 없는 힘, 또는 부당한 권력이 정당한가? 라고 말이다. 백원단은 힘을 통제할 수 없을 경우를 우려해 힘의 근원을 추적하며 정당성을 획득하려하지만, 방바재단은 물리적 힘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방바재단의 모습이 선한 의도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나중 문제다.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힘에 대한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곧 통제로 치환할 수 있다. 그래야 의도한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바재단은 극단적인 행동을 통해 목적을 정당화한다. 그걸 가능케 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을 넘어설 때, 그 목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방바재단이 휘두르는 권력은, 그들이 정당하다고 믿는 힘은 그래서 옳지 않고 명분이 없다. 명분 없는 힘은 결국 파멸을 가져온다. 14세 소년인 스스미의 파멸 또한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명분 없는 힘이기에 그렇다. 작품은 결국 다시 묻는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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