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론더링 - 2억 엔의 행방
칸베 타쿠 지음, 미키 와카코 그림, 정승민 옮김 / 출판미디어 율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돈의 효용성

 

일도 사랑도 꿈도 잃은 청년 백수의 손에 어느 날, 은행에서 강탈된 2억 엔이 굴러들어온다.’

책소개의 두 번째 문장이다. 이 글의 시작이자 전체적인 설정이고 등장인물들이 뛰노는 무대다. 솔직히 이런 설정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어 그리 참신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보게 된 건, 책소개의 첫 번째 문장이 흥미로워서다.

‘20억 엔을 손에 넣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공돈이나 마찬가지인 이 20억 엔이 돌고 돌아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 결국 승자는 누구냐가 아니라,

당신이라면 이 20억 엔을 어떻게 사용하겠는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게 재밌어 보였다.

20억 엔은 은행털이범이 산속에 묻는 걸 우연히 본 20대 중반의 주인공이 돈을 사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일단 현실에서의 나라면 어떻게 쓸 것인가?(만약 신고하지 않고 쓴다는 가정 하에.)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 일 년 정도 고이 모셔둔다. 그런 후 흔하고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머니 론더링(돈 세탁)’을 작은 액수로 조금씩 실행해 생활비와 여유자금을 만들어간다.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길 것이고, 조금씩 액수를 높여 머니 론더링을 한다. 그렇게 먹고 산다. 이게 간이 작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럼 주인공은? 처음엔 조금씩 이곳저곳에서 환전을 통한 수법으로 머니 론더링을 한다. 누구라도 할 법한 일이다. 그러다 4년 근무했던 무역회사 시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물론 이 사업은 큰 액수를 위한 머니 론더링이었지만 주인공의 노력과 실력, 운이 맞아 금세 확장된다. 그러나 호사다마, 경찰은 꼬리를 잡아 점점 주인공에게 근접하고, 주인공은 우연히 알게 된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야쿠자까지 개입하기에 이른다. 소동극이 벌어지고 결국 승자는?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사업을 주인공은 한다. 깨작거리는 환전이 아닌 보다 큰 액수를 위한 사업이었으나, 중요한 건 이 사업의 성질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자신이 냈던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것. 비록 내 돈이 아닌 불법자금이지만, 주인공은 이 사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내보이고 인정받는다. 이게 중요하다.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서 4년 근무하다 퇴사 당하고, 다시 음식점 체인에서 근무하다 몸이 상해 퇴사, 편의점 알바로, 건강식품 온라인 쇼핑몰에 다니다 손님과의 트러블로 3개월 만에 짤린 백수 주인공. 그나마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30평짜리 이층집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지만 어쨌든 여느 청년들처럼 암담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주인공이, 공돈이 들어왔다고 나처럼 조금씩 쌓아놓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비록 동기는 머니 론더링이었지만 자신이 구상한 사업을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꽤 흥미로웠다.

패기와 열정,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며 도전을 해보려는 많은 청년들이 있지만 자금 때문에 시작도하기 전에 접어버리는 지금의 우리 실정을 이 글과 대입해 생각해보면 청년창업지원의 중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은 비록 불법자금을 활용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내 앞날을 개척해나간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야쿠자와 맞선다. 그리고 본인의 양심에 맞춰 불법자금을 처리한다. 엄밀히 말하면 시작부터 잘못이다. 그러나 이 글은 평범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사회적 문제와 접붙이며 한 편의 유쾌한 소동극으로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의 마무리를 짓는다.

결국은 공돈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맞춰진 이 글은, 돈의 효용성까지 확장시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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