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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외력과 내력의 싸움
무협소설(또는 영화)에 공통적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다. ‘내공’이다. 여기서의 내공은 심신을 단련해 기(氣)를 강화시켜 자신을 보호하고 몸 바깥으로 발출할 수도 있는 기의 흐름, 기의 힘, 기의 크기 등을 말한다. 이 힘의 크기에 따라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난다. 우리 생활에서도 가끔 쓰는 단어다. 요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즐겨 보는데, 극중에서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청년실업이, N포세대가, 폐업 속출,.. 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력으로 지칭되는 단어가 ‘스펙’이다. 남들보다 영어점수를 더 높게, 자격증 하나라도 더, 공모전 수상에... 그렇게 쌓고 쌓아서 간신히 들어간 직장인데,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고 하니 어디가 나은지, 어디서 살아야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니 살 곳보다 일단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원제처럼 ‘둔감력’을 기르자!
회사원이든 자영업자든 학생이든 그 누구에게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문제의 상당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지 않나싶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맺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할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에게도 자존감이 있는데 언제까지 참고 지내야할까. 저자는 몇 가지 상황을 예로 들며, 지나간 상황과 마음의 상처는 빨리 잊고 오히려 뻔뻔해지라고 충고한다. 예의 없으라는 게 아니라,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며, 그러니 타인의 시선 따위도 괜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둔감해지라는 거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그런 척이라도 하라고 한다. 결국 상처받는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동의한다. 뭉뚱그려 말해,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거나, 사소한 잘못에도 자책을 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등을 걱정한다. 그것들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된(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는 이유로, 타고났다는 이유로, 성격이... 등등의 이유가 있다지만, 결국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둔감해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대의 무례함을 비굴하게 참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넘긴다는 점에 있다. 흔히 말하는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위축되지 않고 나에게 타격이 되지 않을 정도의 외력이라면 ‘흘려버림’으로 점점 갈고 닦자는 거다. 갑질이 명백한 상황에서 본인의 행동을 어떻게 하라고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건 또 다른 몰이해다.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누가 그 행동과 여파를 책임질 수 있을까. 누구도 그런 수십, 수백 가지의 개별적인 상황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다. 다만 저자는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는 걸 경계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p 204. 그런 당당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빈정거림 따위는 통하지 않는, 또는 빈정거림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둔감한 마음의 힘. 바로 둔감력입니다.]
예민하지도 않은데 굳이 둔감할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저자는 둔감해서 좋은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한다. 이를테면 건강에 도움이, 수면습관의 힘,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둔감한 매력,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힘 등으로 둔감함의 여러 매력을 설명한다.
[p 237. 적응 능력이 둔감력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건강한 몸에는 둔감력이 넘쳐흐릅니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늘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몸과 마음의 힘.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둔감력입니다.]
가끔 내공이 강하다, 라는 말을 실생활에서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런 사람을 한 마디로 외유내강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을 이리저리 흔드는 어떤 강풍에도, 머리부터 짓누르는 상당한 무게에도, 발을 딛고 있는 위치를 뒤흔드는 진동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결국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미소를 보인다. 견디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외력이 강하다면 그보다 더 세게 내력을 설계하면 된다. 지금 당장 설계가 힘들면 더 연마하면 된다. 그렇게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그 방법의 한 가지로, 둔감력을 기르자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