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허련순 지음 / 인간과자연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바로 내 옆집에 사는 아저씨는 조선족 아저씨다. 문득 이 소설에 나오는 조선족들처럼 그 아저씨도 배를 타고 밀항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조선족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내 옆집 아저씨도 그렇고 식당에 가도 말씨가 조금 어눌한 조선족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삶은 어떻고 왜 밀항까지 하면서 한국에 와서 돈을 벌려고 하는지에 대해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한민족이면서도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는 조선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이 책을 몰입해가며 읽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건들에 대한 개연성 부족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소설을 보고 그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바로 인과성, 사건들에 대한 유기적인 연결 관계이다. 헌데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점들이 부족해 보였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들이 설명되지 않은 채 일들이 발생해 버린다. 어쩌면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주인공 ‘세희’가 자식들을 남겨두고 왜 떠나는가에 대한 설명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그저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건에 대한 필연성이 적으니 글을 읽는데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소설의 중간 중간 작가의 생각이 들어나는 부분에서 식상함, 촌스러움, 낯간지러움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319p에 나오는 책장 묘사에서 죄와 벌, 노인과 바다, 그리스 로마 신화, 신곡 같은 것들을 일일이 언급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 책에는 ‘나비’가 많이 등장한다. 책의 제목에도 나비가 들어가 있고, 용이와 동일시 된 애완견 이름도 나비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도 배 안으로 들어오는 나비가 등장한다. 나비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제목은 왜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인가. 책에 나오는 바처럼 나비에게는 집이 없다. 그래서 나비는 날아가 앉는 곳이면 다 집인 줄 안다. 이것은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조선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족을 한국인으로 봐야 될까, 중국인으로 봐야 될까. 그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다. 분명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중국에 살지만 조선의 피를 물려받은 조선족이라고 소외당하고, 같은 조상으로부터 피를 물려받았지만 한국에 오면 지금껏 우리와 다른 곳에 살아왔다는 이유로 한국인으로부터도 소외당한다. 조선족들은 그들 자신이 누구일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집이 없다. 중국의 연변도, 한국도 그들에게 진정한 집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집이 그 곳이라고 믿고 살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에서는 나비를 핵심 키워드로 쓴 것이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라는 물음은 ‘나비의 집은 없다’는 대답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작가는 조선족의 정체성에 묻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환상에 속는 것은 속을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속고 싶어서이다. 20p

 

인간은 인간다운 환경에서만 체면이 유지되는 것이다. 27p

 

죽음의 한순간에 비하면 삶이란 너무 지루한 것 같기도 했다. 84p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어야 하오. 그러니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 147P

 

사내란 한 번 결정하면 뒤돌아봐선 안 돼. 198p

 

여자와 남자 사이의 감정이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244p

 

내가 사는 이유도 모르는데.... 327p

 

삶과 죽음이란 원래 그렇게 함께 있는 것인지 모른다. 3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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