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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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철저하게 승리한 사람들,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쓰여지고 전파된다. 그래서 알제리 국민들에게 프랑스어는 프랑스라는 나라 그 자체만큼이나 증오의 대상, 몰아내야 할 대상인 것이 당연하다.
침략자들로부터 조국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축출해야 하는 대상은 지배자들의 언어, 프랑스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정치적 언어로서는 그 힘을 잃어가는 데 비해 지배층의 입 속에서는 3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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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칸은 오랜 파리 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와 고향 카스바에 찾아간다. 하지만 추억 속 아름다운 카스바는 간데없이 ‘유기되고 헐벗은 지역으로 그리고 치명적 파괴의 흔적이 남은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p77). 파괴된 것은 추억의 고향뿐이 아니다. 무언가 결핍되었을뿐만 아니라 ‘부풀려진’ 언어인 프랑스어가 아직도 그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베르칸에게는 카스바 주택들의 파괴와 다름없는 타락이다(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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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들과 그들의 언어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이미 분열은 시작되었다. 어떤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억압한다. 아랍어가 프랑스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문화는 알제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랍어는 사랑과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이제 아랍어는 혼란스럽고, 난삽하고, 방향이 빗나간 듯한, 증오로 가득 찬 언어로 변질되었다(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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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인 마리즈가 베르칸의 곁을 떠나고 난 후 아랍어를 말하는 나지아가 베르칸을 사로잡는다. 베르칸은 나지아를 만나 마리즈에게서 느꼈던 어떤 결핍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고 채우게 된다. 사랑이 가득한 아랍어,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아랍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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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든 군인들은 겨우 열 명이었고, 프랑스 공화국 깃발에 경례를 하기로 했던 (...) 수감자들은 7백 명이었지.”(p213)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구타당하던 그 수감자에게서 최근 몇 년 동안 항의를 회피해 온 우리 국민 전체의 이미지를 마침내 보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돌아오니까 고난이 다시 시작되는 걸까, 혼란, 광기, 침묵이? / 나는 예전처럼 가만히 쳐다보기 위해 돌아온 건가? 바라보며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기 위해?(p214)
침략자인 프랑스 앞에서 알제리는 너무나 무력했다. 겨우 몇 명이었던 부사관에게 학대당하고 고문받으면서도 앞으로 나서 저항하지 못했고 지금은 자국민이 자국민을 억압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베르칸에게 글을 쓰는 것은, 무지하고 힘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여전히 무력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지켜보는 뼈 아픈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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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은 어디야? 내 땅은 어디에 있어? 내가 잠잘 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지? 나는 알제리에서 이방인이고 프랑스를 꿈꿔. 프랑스에서는 더욱 더 이방인이고 알제를 꿈꾸지. 조국이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인가?”(p243)
마리즈가 연기한 인물의 말처럼, 베르칸은 조국에 돌아와서도 조국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되찾고 싶었던 조국이었지만 자신이 꿈꾸던 조국이 아니라 화산처럼 폭발하기 직전의 혼란이 가득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프랑스어가 쫓겨나지만 아랍어는 변질되었다. 증오로 가득한 언어로 변해버렸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아랍어마저 베르칸은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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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최후의 전개는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내 가족의 역사, 바바 시디와 그의 아내, 즉 내 할머니의 역사는 내가 어디를 가든 바로 내 역사니까요.”(p142)
베르칸이 써 내려 간 이야기 속에 단순히 베르칸 자신만의 경험만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나지아와 마찬가지로 베르칸 자신의 역사 속에는 베르칸의 부모의 역사, 침략자에 맞서고자 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역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르칸이 사라진 후에도 그 주변인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베르칸과 그의 조국 알제리의 역사가 쓰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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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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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혜의시대 #뉴스로세상을움직이다 #김현정 #창비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 <지혜의 시대>라는 제목과 뉴스라는 소재가 아주 잘 어울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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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좋아 라디오 pd가 되었던 김현정 씨가 <뉴스쇼>와 만나게 된 배경, 뉴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언론이 뉴스를 만드는 ‘방법’, 뉴스를 접할 때 지녀야 하는 자세 등에 대해 그가 강연장에서 들려 준 이야기들이 정리된 책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적절히 들려주는 동시에 뉴스가 필요한 이유와 뉴스를 대하는 방법을 적절하게 버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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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의 존재 의의: 뉴스는 다른 사람과, 더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자, 과거를 떠올려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현재의 ‘기록’이다.
• 언론의 힘: 언론은 자칫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을 조명하고 언급함으로써 대중들이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모두의 눈과 귀를 모은다는 것, 엄청난 힘이다.
• 뉴스를 볼 때 필요한 자세: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 특히 쟁점이 되는 사안을 대할 때는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선입견 없이 살펴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과연 한 컷의 사진/한 단락의 글이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까 의심해야 하며, 프레임 너머의 맥락을 읽어 종합적인 ‘진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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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시사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사람답게 사건/뉴스를 대하는 그만의 소신이 엿보인다. <뉴스쇼>가 사회에서 행하는 역할을 이야기할 때 굉장히 자연스러운 비유들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그가 그저 <뉴스쇼>의 프론트맨이 아니라 그만의 소신, 철학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양쪽의 입장이 대립하는 일이 있을 때, ‘<뉴스쇼>는 양쪽의 이야기만 들려주고 중립적인 입장만 취하려 하느냐’는 질타(?)에 대해 밝힌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뉴스쇼>가 양쪽 중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소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뉴스쇼>는 모든 청취자를 위해 다양한 생각을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뉴스, 더 나아가 언론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절감하기 때문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모든 논의가 오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고자 하는 그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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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이다. 그 스스로도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이 ‘교과서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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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목소리-특히 마이크가 절실히 필요한 곳에 내미는 공감의 손길. 청취자의 가슴을 울리는 뉴스를 내보내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희망. ‘좋은 보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혼자이면서도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현대인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청취자와 소통하려는 노력. 그와 <뉴스쇼>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비결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앞으로도 <뉴스쇼>가 청취자로 하여금 뉴스를 만들어내게 하는 뉴스, 건강한 논의가 진행되는 공론장으로서 역할하는 뉴스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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