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기 좋은 방
신이현 지음 / 살림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신이현의 <숨어있기 좋은방>에 관한 글을 읽었다.
내가 대학생때 나왔으니까 십수년이 흐른 책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신이현.
장정일의 마누라란 포스가 있어 읽기전부터 인상이 강했던 작가다.
애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했다던가.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선언인 셈이다.
지금은 이혼했다고 하는데 신이현의 글을 읽고 나면 그런 주변적인 것들에 시선이 가질 않고 온전히 그녀의 글에 몰입하게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십수년도 더 된 기억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주인공 윤이금은 어찌어찌해서 기차길옆 여관에 흘러들고 그곳에서 태정을 만난다.
그 어찌어찌의 과정도 참 지난하다.
윤이금의 가난한 삶의 조건 보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무책임할 수 있을까 싶게 모든걸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그래서 결국 주위사람의 삶마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대책없는 주인공의 성격 때문이다.

사장에게 재떨이를 날리고 직장을 때려칠때도 그렇고 아이가 있음에도 술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도, 태정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남편이 있으면서도 계속 태정을 만나는 것도 그녀는 그 어떤 갈등도 느끼지 못하고 감정이 시키는대로 행동한다.

여관의 장기투숙객, 젊은 태정은 노가다로 생계를 유지한다. 언제 올지 언제 갈지 모르는 이금을 잡지도 내치지도 못하면서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수동적인 남자애. 빗물이 수채구멍으로 모여드는 형상처럼 그들도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쾌적한 곳에서 습한 곳으로 모여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그곳을 윤이금은 계속 들락거린다. 처음 집을 나왔던 날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고 하는 내내. 삶의 이쪽편, 책임감 있는 남편이 있고, 온전히 내것이지 않았던 아이가 있고, 난공불락의 시어머니가 있고, 가난한 친정이 있는 이쪽편에서 잘 지내다가도 순간, 휙 사라져 다시 기찻길옆 여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타고난 무책임함이나 삶의 무목정성 때문일지 모른다. 혹은 장기투숙객 태정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도...
그녀가 그곳을 찾아드는 이유를 누가 알겠어. ...

한편 태정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콩나물처럼 태정은 창백하다.
그 창백한 인상 때문에 태정이 무엇때문에 거기에 틀어박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 나중에 태정은 사랑하는 이금과 그녀의 남편 때문에 자살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 윤이금은 태정 대신 그곳에 자리잡는다.

**

인간은 원래부터 퇴행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다.
왜냐고? 세상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거대해서 다시 아이였을때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가 아이였을때는 그저 자기 몸밖으로 나온 똥만 갖고도 기쁨을 느꼈더랬다.
먹고 싸고 울고 웃고.. 그거면 됐던 시절이었다.

그땐 세상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태어났으니 살아가야 한다는 기초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세상이. 세상에 나에게 준거 하나 없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 명령한다.
안그러면 살아가는데 재미없을 거라고.
교육, 취업, 결혼, 출산, 육아, 그 무한루프의 사회화과정.
세상이 나에게 가르쳐준대로 하지 않음 재미없게 된다.
그 순환과정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헉, 턱끝까지 숨이 차 뛰어다닌다.

그런데 그러고나면?
혹시 그곳에서 나오고 나면?
그러면 그녀 윤이금처럼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말로는?
누가 준 공포인가. 자신의 말로에 대한 이 두려움은?  
숨어들만한 방을 찾는건 퇴행인가? 
누구로부터 숨는걸까? 
저 사회화과정으로부터?
저 어떤 공포로부터? 
왜?

 왜. 어떤 인간은 숨어들 곳이 필요한가.
과연 숨어 있기 좋은 방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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