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요한과 함께 예수 찾기 - 예수를 만나는 31일간의 여정
김형국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한복음은 요한일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제자 요한이 쓴 복음서이다. 요한복음은 공통적인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달리 독특한 내용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중요한 본문으로 꼽힌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주옥같은 본문들이 많다. 밤에 예수님을 몰래 찾아와서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냐고 물었던 이스라엘의 선생 니고데모와 당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사람이 없는 시각에 홀로 뜨거운 땡볕 아래 물을 뜨러 왔던, 사실은 그 누구보다 해결되지 않는 갈급함이 많았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과 함께 예수찾기’(저자 김형국)31일동안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 그분은 누구신가에 대한 여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은 주제별 서문과 함께 매일 큐티처럼 본문이 등장하고, 독자 스스로가 예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끔 질문을 던진다.

 

각 파트마다 주제가 다른데, 나는 그 중에서도 마지막 파트인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이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한 뒤에 다시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먹이시고 베드로와 이야기하시는 장면이다. 성경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 자신에게 찾아온 분이 주님인 것을 알자마자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나온다. 그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자처하면서 절대 나만큼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주님 앞에서 자신만만했던 제자 베드로, 그러나 사실 주님을 자기 목숨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심히 통곡했던 베드로.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다시 한 번 찾아오신 것이다.

 

아마 그는 예수님이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내심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나를 꾸짖으실까? 꾸짖으셔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주님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 그분을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뵙고 싶다.’ 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베드로의 예상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에게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빵과 물고기로 먹이신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조용히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 베드로는 이미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이전처럼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아마 주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속에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베드로가 대답한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떼를 쳐라, 내 양떼를 먹이라.”

 

사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부인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자로 선택하셨다. 베드로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그가 교만했을 때도 주님은 그가 사실 여전히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그가 말이 앞서는 사람인 것을 알고 계셨고,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충동적인 사람인 것도 다 알고 계셨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이정도면 나 많이 성장했어, 이정도면 나도 주님을 따라갈 수 있어,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 때의 베드로는 목숨을 잃기는커녕 주님을 따라오는 것조차 못할 것을 알고 계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신앙생활의 시간과 경력들이 쌓이면서 자기 힘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도 나 정도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면서, 호기롭게 사역들을 감당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절대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육신에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신앙적인 지식이든, 사역의 전략이든, 나의 재능이든 -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들이 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가 진짜 은혜의 때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서 우리의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깨어질 때,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실 수 있다. 우리가 삶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주님께 넘겨드릴 때, 그제서야 주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통해 그분께서 이 땅을 살아가실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짜 열매들이 맺히고, 진정한 회복과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똑같이 세 번을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마 베드로는 배신했던 기억이 다시 한번 떠올라서 예수님께서 세 번째 그에게 질문하셨을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주님, 다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나 이 세 번의 질문이 바로 베드로에게는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데, 내 힘으로는 주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진심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순간 주님은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좋다, 나는 내내 이 고백을 기다렸다. 너의 처절한 실패 가운데서 이제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다. 네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영으로는 할 수 있다. 이제 너는 비로소 진실로 나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내 양떼를 먹여라.”

양떼란 모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맡기신 사람들을 뜻한다. “내가 너를 사랑함과 같이, 그 사랑을 아는 너가 가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가르쳐라. 사람들을 내게 가까이 이끄는 역할을 해라. 사람들이 너를 통해 나를 발견하도록, 내 안에 있는 넘치는 생명을 받아 누리도록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해라.”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실패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의 사랑은 실패를 역전시키는 사랑이다. 주님은 우리의 실패를 비난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를 끊임없이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주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날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누린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경험하면 할수록 신이 나고, 알면 알수록 어째서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가, 감사해서 눈물이 나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충만해져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매일의 삶의 현장 속에서 만나주신다. 그는 매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00, 내가 오늘 너와 교제하고 싶단다. 너의 마음 문을 내게 열어주지 않겠니?” 주님은 너무나도 인격적이신 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마치 나 한명만 존재하는 것처럼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그 세밀한 음성에, 사랑에 더욱 반응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회 성장 DNA -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21가지 원칙
리처드 코킨 지음, 김성태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저자 리처드 코킨은 ‘코미션’(Co-Mission)이라는 단체의 설립자로, 지금까지 30여개의 교회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팀 켈러, 존 파이퍼 목사님과 협력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건강한 교회 성장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의 부제(‘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21가지 원칙’)가 말해주듯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실제 코미션 사역을 통해 현장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복음 사역의 핵심 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건강한 교회 성장 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키고자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현재 영국 교회 성장의 주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본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참하게 무너진 줄로만 알았던 영국 교회가 지금도 여전히 주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아서였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난 이후 진리를 진리로 선포할 수 없게 되어버린 영국 땅의 현실과 진리가 희석되고 예배를 드리지만 죄와의 타협으로 인해 거룩함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예배를 보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팠었다.

그러나 저자를 통해 소망이 보이지 않는 교회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한 사람의 예배자를 통해 일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현실만을 바라보고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통해서도 그 땅을 충분히 변화시켜 가실 수 있는 분이심을 이 책을 통해 보게 하셔서 스스로의 인간적인 시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한 여전히 이 땅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영국 교회를 위해 함께 마음으로 중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목회를 위한 책이었지만 평신도가 읽기에도 유익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저자는 단순하면서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교회의 핵심을 명쾌하게 지목한다. 여러 가지로 인상 깊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간단하게 추려보고자 한다.

먼저는, ‘복음 사역은 다름 아닌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건강한 복음 사역이 ‘배우는 것’(지식)뿐만 아니라 ‘사로잡히는 것’(삶)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복음을 진정으로 영향력 있게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삶이 복음에 의해 철저하게 빚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도 ‘사람들이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따르는 리더는...하나님의 손길이 깊이 새겨져있는 리더’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해 많은 계획과 전략들을 수립하지만(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한 목표의식과 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들을 보고 느끼고 있느냐의 문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손길로 다듬어진 사람을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마치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사람은...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복의 통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갈수록, 그 영향력은 자연스레 삶 속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을 비운 예수님과 같이 주님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바울이 자신의 편지에서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 1:1)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복음 사역은 ‘기꺼이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의 의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단순히 ‘지적인 이해’나 ‘감정적인 자극’이 아닌 ‘회개’와 ‘믿음’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사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 두 가지는 돌이킴의 두 가지 측면으로, ‘죄 짓는 삶으로부터’(from) 돌이키고 ‘하나님을 믿는 삶으로’(to) 돌이키는 것이다. 특별히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마음뿐만 아니라 ‘의지’와 ‘애정’까지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참회’와 ‘회개’를 쉽게 혼동하여 우리는 감정적인 변화가 곧 ‘회개’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삶의 변화를 동반’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례 요한이 회개가 행동, 곧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고 선포했던 이유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체, 그리고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신뢰하여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드리려면 하나님을 더욱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록 우리는 삶에서 그 열매를 나타낼 것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에서 점점 자신을 비워 예수님을 닮아갈 것이다. 또한 매일 우리는 죄로부터의 회개와 그분 자체를 믿는 믿음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저자가 언급했던 영역들 중에 ‘하나님 나라’가 기억에 남는다. 성경 전체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야기,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 우리는 ‘도래할 하나님 나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그 긴장 가운데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원수를 심판하시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상을 주시며, 지금은 고통 속에서 끝없이 신음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당신의 피조 세계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닌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기를(날이 갈수록 구원받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온전히 그리스도께서 믿는 우리들을 다스리시기를) 기도한다. 그 날이 오면, 더 이상 사망과 애통과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계 21:3-4). 비록 지금의 현실은 환난과 고통이 가득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믿는 우리들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지금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안다. 아니, 사실 아직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도래할 그 날을,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위에 완전히 임하는 그 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까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곳(everywhere)’으로 나아가기를 힘쓴다. 또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에게(everyone)’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everything)’을 가르치려고 힘쓴다. 그리고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우리는 ‘주어진 모든 기회(every opportunity)’를 잡으려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이대로 가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리는 다음 세대가 없다고 말한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은 이미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점점 기독교를 빙자한 거짓 선지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교회가 돈을 사랑하고 정치 권력과 손을 맞잡아 부패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염려해야 할 기독교가 세상이 기독교를 염려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고, 우리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적어도 지금 눈앞의 한국 교회의 현실은 그렇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은 소수의 예배자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현실과 숫자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또한 그분은 우리가 염려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신실하게 일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다음 세대 또한 하나님께서 전심으로 주를 찾는 자들을 통해 이미 그들을 키워나가고 계심을 믿는다. 갈수록 악해져만 가는 이 세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당신이 예비하신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 땅을 변화시키는 빛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보다도 훨씬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애타게 온 마음으로 찾으시는 분이다. 그 누구의 열망도 하나님의 영혼을 향한 열망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불에 타는 듯한 열망이 어그러진 이 시대 속에서도 성령 충만한 예배자들을 통해 세상 끝날까지 역사하실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 땅의 교회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 물론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위해, 열방을 위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실제적인 전도와 훈련들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이 땅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땅은 소망이 있다.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은 교회이며, 교회는 한 사람, 바로 ‘당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 하나님의 지혜로 인생을 항해하다
팀 켈러.캐시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소개할 책은
팀 켈러 목사님의 잠언 묵상집이다.
저번에 나온 시편 묵상집 <팀 켈러의 묵상>도 시편을 읽는데 있어 굉장히 유익했는데,
이어 잠언 묵상집도 새로 나왔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뒷 표지에 보면,
저자는 잠언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모든 일상생활과 선택을 해 나가는 법'을
상술한 하나님의 책이며, 잠언의 주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매일 수많은 어려움과 숱한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너머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던 차에 만나게 된 귀한 책이다.

책은 365일 큐티 묵상집으로
날짜와 본문 해석, 오늘 적용할 수 있는 질문과 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잠언 본문을 계속해서 묵상하다가 마지막 장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으로 끝이난다.

아마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잠 4:7)]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마지막 부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넣은 것 같다.

나는 책에 있는 많은 주제 속에서도
'인도, 계획, 결정' 파트가 읽으면서
제일 마음이 많이 갔다.
그 이유는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 중에서도 나는 위 사진의
"우리 인생과 역사에 대한 계획이
이미 그분께 있다"는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는
말씀을 확신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사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나의 자유의지와 선택 조차도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자주 의심하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서도
경직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저자는 이 본문을 통해 말한다.
"...누가 뭐래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야곱이 아무리 거짓말하고 속이고
삶을 망쳤어도 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향한 선한 계획이 있다
는 이 진리는 매사에 지혜롭게 결정하려는 당신
에게 어떤 위로가 되는가?.." 라고.

요즘 솔직하게 정말 힘들었다.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과
믿음이 '자기위로'로 전락해버리는 것 같은
비참함 속에 더이상 하나님을 향해 무언가를
하기가 싫었다. 내가 노력하고 아등바등 해야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결국 하나님의
일하심은 나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 때 내게 말씀하셨다.
"모든 순간이 내 섭리 안에 있다.
내가 너를 만나주겠다.
내가 너를 힘껏 안아주겠다..."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가 연단 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이나 고통을 보고
좋아하신다거나 무관심하게
방치해두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대장장이고
우리가 그의 손 안에서 연단되는 도구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단되어지는 과정 속에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울어주실거라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조금만 더 견디라고,
누구보다 귀한 그릇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시는 거라고.

사실 이 고백도 정말 힘들고 이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위로가 되기가 힘들다.

부르심과 사명보다는 내가 오늘 직면한 현실이
더욱 커보이고 실제로 아픈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인정하고 믿고 싶다.

결국에는 이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어둠과 같은 시기를 지날 때
희미하지만 작은 빛을 비춰주시는 그 분을
이미 만났기에
나는 이 여정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삶은 힘들다.
이해하지 못할 섭리도 너무나 많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신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며
아픔과 눈물을 넘어
내일의 푯대를 향해
당신의 길을 따라 걸어갈
나는 이미 당신께 속했다.


#IbelongtoJesus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잠 4: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믿음 -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이성조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편한 믿음'은
분명한 근거 없이 무작정 믿는다고
우리의 믿음을 오해하는 세상을 향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인문학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책이다.

이 책은
비신자들이 읽어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참신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복음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인지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한 책이다.

1시간 일한 사람과 8시간 일한 사람에게
똑같이 급여를 주시는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 나라의 방식부터,
믿음으로 세상이 바뀔까?
세상과 믿음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마지막 챕터까지,

다양하고도 실제적인 주제들이 재밌었고
가독성도 좋았던 책이다.


그 중에서도 비단 책에서 눈에 띄었던 단어가 있는데,
바로 'vulnerability(취약성)'이다.
글쓴이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관점
(vulnerability)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글쓴이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픈 이유,
또한 아픈데도 불구하고
계속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전에 내가 쳤었던 울타리를 거두고
자기자신을 무방비로 열어 두고 노출시켰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에게 취약해졌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vulnerable'은 원래 '공격에 취약한'
'상처받기 쉬운'이란 뜻인데,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이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울타리를 거두어 놓은 상대가 무심코 던진 어떤 말은
그 말의 강도가 약할지라도 비수처럼 꽂힌다.

글쓴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곧 'vulnerability'이라고 말한다.

이는 vulnerable과 ability의 합성어인데,
"상대로인해 내가 취약해지고 아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나의 것을 내어 주는 능력"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
이시기 때문에 죄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달려올 수 밖에 없으셨다.
특히나 그분은 가난하고 연약한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가 될 수 밖에 없으셨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취약해지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vulnerablilty)

또한 책에서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을 예시로 드는데,
장발장이 미리엘 신부의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빛을 경험하게 되고,
그로부터 그는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시는 그 취약한(vulnerable)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도 취약해져서(vulnerable),
연약하고 아픈(vulnerable)사람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흘려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장발장이 흘린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세워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레미제라블'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정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이 원리를 삶으로써
익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타인의 필요보다는 나의 필요를 앞세우기에 바빴는데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할수록
내 안에 상대를 향한 긍휼한 마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특히나 나는 가정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마음이 많이 간다.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는지 함께 울어주고 싶고, 들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취약해져서 상처받고 갇혀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가나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통로로 쓰임받았으면
좋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수할지라도 그럼에도 사랑하심 - 사무엘상 2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럼에도 사랑하심'은
사무엘상 8장부터 15장까지 김양재 목사님의 큐티 노트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왕을 구하며
떼쓰는 이스라엘의 모습부터 사울이 아각을 쪼개지 않아 결국 사무엘이 아각을 쪼개는 본문까지의 구체적인 해설과 적용이 등장한다.

사무엘상은 읽을 때 마다 마음이 많이 찔리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라는 존재는 똑같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해주는 성경인데,
특히 책의 마지막 본문이었던 사무엘상 15장이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는 본문이다.

책에서 보면, 15장에서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영적 상태'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사울에게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셨지만 사울은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였다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못듣는다는 것이 아닌,
알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사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혹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계속해서 가르쳐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변명들과 자기합리화로
결국 자기 뜻대로, 자기 주관대로 선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우리는 "하나님, ~만 해주시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게요!"라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주시면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채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높은 자리에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멀고,
귀가 닫히기가 너무나 쉽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울처럼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존재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그것에 기뻐한다. 사울은 눈만 뜨면 예배를 드리고, 입만 열면 예배를 말했던 사람이지만
실상은 자기가 높아지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바라보시고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고 말씀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22-23절)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완고하게
내 뜻대로 행했을 때가 정말 많았었다.
하나님 앞에 묻지 않았었거나, 혹은 물었어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한 채 조급해했던것이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그 때는 그게 지혜이고 그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에 따른 결과들이 오히려 나에게 올무가 되고 짐이 되어 너무나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읽었던 다른 책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죄는 그에 따른 형벌이 있기 마련이다...
죄를 짓는 사람은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죄는 고통을 수반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공감이 됐었다.
우리는 흔히 죄를 지으면서 생각하기를,
"~하면 행복해질거야. 이게 죄인줄은 알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좋아보여"라는 생각과 마음으로 죄를 선택하지만,
사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세운 다른 우상은 우리를 배신할 수 밖에 없다. 죄는 처음에는 우리를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하지만, 죄를 선택한 이후로는 우리를 죄의 종으로 삼아 어둠 속에서 어떻게든 뒹굴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 죄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 외의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인지 잘 안다. 물론 신앙서적과 말씀을 통해 깨달은 바도 크지만, 사실 나의 뼈아픈 경험으로 직접 깨달은 것이 제일 크다. 내가 하나님 외의 것들을 왕으로 세우고 경배하기로 선택했을 때 따라왔던 많은 것들ㅡ권태, 무력감, 우울, 불안, 두려움, 역겨움 등이 그것이 진리가 아님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하나님 안에 참 생명이 있고,
하나님 안에 참 빛이 있다.
하나님만이 내가 모셔야 할 유일한 왕이다.
입술이 아닌 삶으로 하나님의 왕 되심을
고백하는 내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