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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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5․18은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전두환 등 국가반란세력과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고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에 의한 무장폭동'이라고 믿는 무지한 세력이 자꾸 깊은 상처를 후벼파는 한 관용과 화해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1980년 5월 비극의 현장 광주.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무엇 때문에 오는 걸까.

열여섯 살로 중학교 3학년생인 동호, 동호네 문간방에서 누나랑 자취를 하는 동호 친구 정대, 동호가 정대를 찾으러 갔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만난 수피아여고 3학년생인 은숙, 양장점 미싱사인 선주, 대학생 진수, 그리고 막내인 동호를 잃은 동호 엄마가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제1장 '어린 새'에서 계엄군에 의해 쓰러진 시신들을 관리하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만나게 되고, 제2장 '검은 숨'에서는 죽은 정대의 혼이 관찰자가 되어 계엄군들에 의해 시신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다루어지는지 지켜본다. 제3장에서 제6장까지는 살아남은 자들이 살았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제3장 '일곱개의 빰'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의 삶, 제4장 '쇠와 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진수의 삶, 제5장 '밤의 눈동자'는 증언 녹취를 요청받고 갈등하는 선주의 삶, 그리고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고 살아온 동호 엄마의 넋두리가 눈물 머금은 꽃잎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잊어서는 안된다고, 잊지 말아달라고.

 

1. 폭력과 상처

소년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날'의 상처들은 무겁고 무섭고, 아프고 슬프다. 무장한 군대를 앞세운 공권력이 외부의 적이 아닌 국가가 존재하는 원천이자 보호대상인 시민을 향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소년이 온다> 17쪽

소년의 눈에 비춰진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화려한 휴가'를 계획하고 수행한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은 '광주'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범죄를 덮으려 하지만 진실은 언제 그 자리에서 역사를 지켜보고 있다. 광주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부산이나 마산이 끔찍한 만행이 저절러진 역사의 공간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년이 온다> 206쪽

 

2. 용서와 화해

아직도 뜨겁게 살아있는 고통의 실체인 거대한 악을 두고서 정치적인 수사가 아닌 한, 함부로 '용서'를 말할 수 없다. 아직도 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태연히 증언한다. 당신이 경험한 상처라 해도 그렇게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맞는 놈은 다리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 말은 때린 놈들의 기만적인 자기 정당화다. 맞아본 사람은 안다. 마음이 편해서가 아니라 잊어야만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45쪽

 

"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소년이 온다> 183쪽

 

잔인하고 깊은 상처는 외면한다고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공감하고 함께 치유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복되면서 다시 우리들에게 번뜩이는 칼을 들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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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넘어 인문학 - 미운 오리 새끼도 행복한 어른을 꿈꾼다
조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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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주제로 다룬 17편의 동화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책으로 읽었거나 TV를 통해 보았던, 아니면 어른이 된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읽었을 수도 있는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동화 '해설서'가 아닌 동화에서 퍼올린 '인문학'이다. 동화의 '교훈'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어쩌면 몇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동화 너머에 있는 인문학 동네 책방에서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인문학 책들과 다리를 놓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 성찰해 보아야 하는 주제를 매개로 '아마도' 좀 어려운, 흔히 '교양서적'이라고 알려진 17편의 골치아픈 책 안으로 파고들어 간다.

 

저자는 따뜻한 인문학의 시선으로 익숙한 동화를 '다시보고', 그 넘어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인문학이라는 성냥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동화 안에 '사람의 길'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은 복잡하고 심오한 인문학 서적을 펼치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동화 속의 불씨를 살려서 '교양서적'이 교양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사색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8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에 다녔던 세대들은 '어린이 명작동화'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앉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런 노래를 흥얼거릴 지도 모른다.

'달려온 어린이들 한 자리에 모여앉아/ 즐거워 손뼉 치며 함께 보는 명작동화/ 해처럼 밝게 커라 정의의 새싹들아/ 손짓에 사랑 주는 어린이 명작동화/ 신난다 재미난다 어린이 명작동화'

 

저자가 어릴 적에 읽은 '보물'을 밑그림으로 쓰게 된 <동화 넘어 인문학>에는 어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인문학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을까.

 

이솝의 <당나귀와 아버지와 아들>에서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였다가 오히려 당나귀를 잃게 되는 낭패를 보게 된다. 이 우화는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지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소신을 지키면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통해 우유부단한 처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능력, 성공, 능동성(할 수 있다) 중심의 '성과 사회'에서는 피로(스트레스) 누적으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사색'을 통해 자신이 이룬 성공으로부터 소외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가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처럼 고난을 극복하고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지 못하도록 '물거품'을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안데르센 자신이 살았던 삶을 돌아보며 공주들이 결혼 후 실제로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는 좀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공주는 외로운 법이니까.

엘리너 파전의 <일곱째 공주님>도 '아름다운 감옥'에 갇힌 삶보다 머리카락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며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유인'의 길을 선택한다.

저자는 <인어공주>나 <일곱째 공주님>이 바라본 동화 넘어 세상을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로 들여다본다.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지고, 그만큼 중요한 '사랑'이라는 주제어에 대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왕자의 키스로 다시 살아난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가 왕자와 결혼하여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21세기 마녀의 거울'이라는 주제로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를 제시한다. 여자에게 미모만이 지상 최고의 진리인 듯 말하는 사회에서 '거울'이 정한 '미모'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백설공주가 아름다움을 잃고도 행복했을까? 늙은 백설공주를 떠올려 본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해 주는 '텔레비젼'이 백설공주와 마녀를 불행하게 만든 '거울'을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고 '스펙타클(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현란한 구경거리)'에 지배된 삶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소외 등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소공녀> 세라의 삶과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를 통해 우리의 행복을 짓누르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피노키오>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살펴보면서 성장을 멈춘 어른이 악당이 되지 않으려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의 동화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 내용이 순화되었지만 동화는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다시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린이와 더불어 읽으면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다면 금상첨화!

어른들은 다시 동화를 읽어야 한다. '지금은, 아직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갈 때이고, 나중에, 때가 되면 꿈을 찾아 떠나야지'하면서 막연한 계획을 믿고 살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때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 그때가 지나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비워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용기(결단)의 문제이다. 카르페 디엠!

어른이 되면 세상 살아가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길이 보이지 않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해답(解答)을 얻기 위해 펼치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수면도서'를 잃고 싶지 않다면 동화라도 다시 읽어야 한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좀 재미있고 쉽게 시작해서 공부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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