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 오늘의 시인 10인 앤솔러지 시집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권민경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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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는 왠지 마음 편히 집어들게 된다. 이 많은 작가들 중에 한 명은 내 마음에 들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시집에는 시인 10명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특정 주제를 정해놓고 작품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딱히 공통된 소재는 보이지 않았고, 독특하고 개성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들의 등단 연도도 제각각이고, 이름을 많이 본 시인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시인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 오로지 시만 감상해봤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는 시가 몇 가지 있었다. 김안 시인의 ⌜맏물⌟, 이유운 시인의 ⌜최후의 애도⌟, 임지은 시인의 ⌜유기농 엄마⌟이다. 이 얇은 책에서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만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겠지. 그중 김안 시인의 ⌜맏물⌟ 부분을 인용한다.



간밤에 폭우가 있었어.

온밤 꼬박 새우고

짚 앞 천변에 나와 당신이 돌아올 길 바라보고 있지.


<중략>


천 갈래 만 갈래

나뭇가지들 바람의 목울대 움켜쥔 채 흔들어대고

목울대 뜯겨나간 성난 바람이 하나둘 그들을 삼킬 때쯤이면

응달 속에서 풀잎 냄새가 올라와.

때론 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나는 그너머에서 풍기는 당신의 손목 냄새도 맡을 수 있지.

봐, 푸른 풀잎 위에 가만히 누우면

나는 아주 잠시 당신의 손목을 움켜잡을 수도 있어.

미지근하고 고요하게

내 손등은 순식간에 푸른 물 들고

폭우 쏟아지고

머리카락 붉게 풀어지고

내 옆에는 죽은 나무들 나란히 놓여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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