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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책을 처음 받고 놀란 점은 책등이 없다는 것. 내 견문이 좁은 걸 수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에서 노출 실제본을 택한건 처음 본다. 덕분에 책을 180도 펼칠 수 있다. 일반 책과 비교해 책읽기가 훨씬 편하고 필기하기도 수월하다.
이 제본 방식은 어느 일러스트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책등이 없고 실이 훤히 드러나 있어 파본인줄 알았다. 지금도 내 방 책장을 구경 온 사람들 열이면 열 모두 책등이 떨어졌다며 놀라곤 한다.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가히 ‘실험적인’ 구성이다. 책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굳이 실제본일 필요가 있나 싶다. 앞서 언급한 일러스트 책의 경우 그림의 중간 부분이 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출 실제본을 택했다. 그러나 <실험실의 진화>는 글로 된 책이다. 삽화도 대부분 한 면에만 실려 있다. 일반적인 제본 방식으로 만들었어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나 저러나 눈길을 끄는 제본법이라는 건 확실하다. 책등이 없기에 제목을 보여주기 위해 넓은 띠지를 둘렀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또 눈길을 끌었던 점. 21세기의 책에는 큐알코드가 들어간다. 와! 그림을 핸드폰에 띄워두고 글을 읽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독자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해주려는 저자와 편집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다만 책 초반부 외에는 큐알코드가 거의 등장하지 않아 아쉽다.
책 모양새에 대한 감상은 이쯤하고, 책 내용에 대해 리뷰해보자면
현대 사회는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다. 예능, 영화, 책 등등 대중매체에는 과학이 넘쳐난다. 특히 서점에서는 다양한 분야 다양한 주제의 과학책이 넘쳐난다.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분야가 있기나 할까 궁금해질 정도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과학 원리와 응용에 대한 책은 많지만 정작 그 과학 원리가 발견된 곳인 ‘실험실’에 대한 책은 거의 없다는 것.
<실험실의 진화>는 바로 그 실험실을 비추기 위해 쓰인 책이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토론장에 참여하듯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서재를 방문하듯이,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요람인 실험실을 비추어야 한다.
과학자의 실험실은 근대 과학의 산실에 다름없다. 철학의 영역에 속해있던 과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독립하게 된 과정에는 실험실의 공로가 크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을 통해 자연을 적절히 통제하고 일정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합리와 설득이라는 철학의 영역에서 증거와 인증이라는 과학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실험실이 과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대에 따라 실험실의 성격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본다. 연금술부터 현대 대학교까지 수세기동안의 실험실 발전 역사를 다루기에 역사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시민 과학의 비중이다. 띠지에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모두 살펴본다고 적혀 있는데, 막상 책을 열어보니 시민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는 마지막 한 문단. 끝. 너무 소략하다.
시민 과학자들의 실험실은 곧 그들의 집이기에 쉽게 소개하기 어려웠겠다 싶다가도.. 띠지의 홍보문구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가 깨져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15장은 충분히 재밌었다.
이래저래 덧붙인 말이 많다. 그만큼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결론적으로는
1. 실험에 관심이 있다면
2. 연금술과 과학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3. 무엇보다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통해 흰 가운, 보안경, 정적이고 모범적인 분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실험실을 직접 보거나 방문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은 실험실에서 만든 존재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2020년, 현대 문명을 마비시킨 코로나바이러스와 부족하게나마 싸울 수 있는 것도 PCR 검사와 항체 검사를 가능케한 진단키트, 마스크 필터, GPS 같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공물 덕분이다. (중략) 그런데도 우리는 실험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배우는 과학 지식은 대개 이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틈새를 메꾸기 위해 기획되었다. - P6
실험은 자연을 실험실로 가지고 들어오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중략) 자연에서는 한 번 하기도 힘든 연구를 실험실에서는 백 번을 반복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실험은 근대과학의 강력한 방법론이 되었다. - P55
필드와 실험실의 관계는 다중적이다. 우선 필드 자체가 일종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과학사에서 종종 발견된다. 18세기 말엽에 나폴리의 화학자들은 나폴리 왕립과학아카데미 내의 화학 실험실이 폐쇄되자 근교에 있던 베수비오 화산을 일종의 실험실처럼 사용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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