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유: 니체류 현기증의 계보.
詩. 그것을 읽는다. 그것은 때론 노래라기보다는 언어적 광물, 물성. 특히 바타유와 같이 언어적 질료를 다루는 시인에게선 더더욱. 좋음의 좋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내게는 꽤 문제였다. 비단 바타유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 안에서 어떤 특정한 언어적 풍경과 광휘에 사로잡힐 때, 와닿는 그것은 먼저 말이라기보다는 느낌이고 사로잡힌 그 매혹의 결 속에서 강렬하며 달콤한 악마적 시간들을 음미하면서 허우적대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 느낌에는 정답이랄 게 없으므로, 해석학적 지평의 자유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느낌들을 믿어볼 수 있다. 바타유는 이전에 《불가능》을 읽어본 게 전부였고, 머릿속에 헛돌고 휘감는 그 문장들 중에 일부는 이해했다고 '믿었'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시집은 달랐다. 시들이 배열된 질서에 맞춰 그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금방 그 언어적 세계와 공기에 익숙해졌고 전자의 저서에서처럼 기표 위로 (생각과 그 외의 모든 것들이)죽죽 미끄러졌던 바 없이, 매끄럽게 잘 읽혔다. 언어적 질감은《불가능》에서 광인이 마치 압생트를 마시고 취해 미친듯 웃어대며 내키는 대로 마음껏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오줌을 갈기듯 호탕하게 느낌표(!)를 내지르던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한 절제의 미학이 돋보였고, 세련됐으며, 검은 그림자들은 Petit했다. 작은 고독과 죽음의 공기를 행간에 치밀하게 배열했고 '똥'과 '오줌'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는 익숙한 이야기들이므로 깊은 인상을 받기보다는, 그가 떼쓰는 죽음을 풀어내는 순서와 방식이라든지, 언어적 질감을 감상하는 것은 역시 흥미롭구나, 의 감상들을 불러일으켰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좋았던 시들과 웃음을 터트렸던 시.
1. 대상이 부재한 기도
나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나는 신음한다.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나의 감옥을.
씁쓸하게 나는
이 말을 한다.
나를 질식시키는 말들,
나를 내버려 둬,
나를 놔줘,
나는 다른 것에
목말라.
나는 죽음을 원해
허락되지 않기를
이 말들의 지배,
두려움 없는
연속을,
갈구하고픈
두려움처럼.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렇지 않다면
있는 그대로를
비겁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증오한다,
이 도구적 삶을
나는 균열을 찾는다,
나의 균열,
부서지기 위해.
나는 비를 사랑한다,
벼락을,
진흙을,
어느 넓은 바다를,
땅속을,
하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땅속에서,
오 나의 무덤,
나에게서 나를 해방하라,
나는 더 이상 나이고 싶지 않다.
눈물 흘리는 망령
오 죽은 신이여
퀭한 눈
젖은 턱수염
하나뿐인 이
오 죽은 신이여
오 죽은 신이여
나는
알 수 없는
증오로
당신을 뒤좇았다
그리고 증오로 죽어갔다
마치 흩어지는
구름처럼.
ㅡ《『내적 경험』에서》
하늘 높은 곳,
나의 영광을 찬미하는, 천사들의 목소리.
태양 아래 나는 작고 검은,
길 잃은 개미, 둥근 돌이
나에게 다가와,
나를 으스러뜨린다,
죽어서,
하늘에서
태양은 작열하고,
눈이 부시다,
나는 외친다.
"감히 못할걸"
감히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니다' 아니 아니지
나는
사막 밤 광활함이다
무엇인가
사막 광활함 밤 짐승은
돌아오지 않고 재빨리 허무가 되는
그리고 무엇도 알지 못하고
죽음
즉답
태양의 꿈이 뚝뚝 흐르는
스펀지
나를 무너뜨려라
이 눈물밖에
모르도록.
별
나는 별을 좇는다
오 죽음
천둥의 별
내 죽음의 미친 종鍾.
용감하지 못한
시들
그러나 감미로움
환희의 귀
암양의 교성
저세상으로 가라 저세상으로
꺼진 횃불.
ㅡ 《저 높은 곳에 나의 영광》
'무신학 전서'에서 신이 없는 기도와 대상 없는 기원의 경험에 대해 다루려고 했다는 역자의 주석으로 인해 흥미롭게 읽은 시들이었다. 신을 가장 사랑해야만 했던, 그래서 증오했던, 목마에서 떨어진 니체류 인간들은 결국 기원을 상실한 허무 속에서, '나'의 해방을 기원하며 대상 없는 기도를 실행한다. 사막-밤-광활함으로 이어지는 구도가, 사막-광활함-밤-짐승으로 이어져 바뀌는 구도 또한 흥미로웠다. 바타유는 다른 무엇의 질서에 내맡기지 않고, 부차적 질서 형성에의 욕망을 버린 채 내적 흐름에 따라 시의 운명을 내맡기는 짓을 잘 한다. 그게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치밀할 수밖에 없다.
2. 화살
오 무덤 바닥에서
가녀린 밤의 손가락 사이로
던져진 주사위여
태양 새의 주사위
취한 종달새의 뜀
밤에서 태어난
화살 같은 나
오 뼈의 투명함이여
태양에 취한 나의 심장은
밤의 손잡이다.
ㅡ《『니체에 관하여 』에서 》中
뜨거운 손으로
나는 죽는다 너는 죽는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진짜로
나는 죽었다
죽고 죽었다
칠흑 같은 밤
그에게
쏜 화살.
ㅡ 《신 》
내가 몰지각한 밤을 비웃고 있는 복도
문 닫히는 소리에 내가 웃고 있는 복도
내가 화살표를 사랑하는 복도
ㅡ 《무덤》
그의 시에서 자주 반복-변주하여 등장하는 몇몇 시어들 중에는, '화살'이 있는데 이것은 존재의 보증, 질서에 저항하는 창(槍)과 같이 기능하고 있다. "별칭(꼬챙이)으로 가리키는 상태를 묵상의 형식으로 몇 자 적는다."라는, 시《『니체에 관하여』에서》 의 첫 행을 봐도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바닥'과 '복도', '밤'과 같이 제한되고 막다르고 닫혀버린 곳에서 태어나는, 인생 내내 쉴새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존, 피흘리는 시간의 지속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3. 웃음을 터트렸던 시. 여기서 나는 내 무슬림 친구 W가 언젠가 썼던 '대륙철학적' 사유가 넘치는 글을 먼저 인용하고자 한다. 섹스가 프랑스식 은유로 '작은 죽음'임을 생각해볼 때, 그 어원에 대해 바타유식 에로티슴의 방식과 관련하여 고찰해볼 만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