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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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멜리 노통브는  2000년대 초반을 함께한 연례 행사였으며, 가을에 유독 생각나는 작가이다.
제비일기를 끝으로 한동한 시들했던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푸른수염의 출판을 기점으로 해서다.

아가멤논과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서 모티브를 받은 이번 소설은 초기작품인 '적의 화장법'과 '살인자의 건강법' 보다는 덜 치열하지만 힘을 빼고 여유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녀 소설들의 큰 축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의 '논쟁'은 여전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빠, 아빠는 절 죽이셔야만 해요
=너, 도대체 왜그러니?=
=넌 머리가 좋으니까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렴=
뭘 하기 위해서요?
=열정적인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절대 열정적일 수 없어요.
=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니? 네가 실현하고 싶은 꿈이 뭐야?=
꿈 같은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어요. 이 모든 게 중단 되는 것 말고는요. 제가 열렬히 원하는 게 바로 그거에요.
=누가 죽음이란 게 그렇게 좋다더냐?=
좋은지 어떤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그건 다른 거잖아요.
=그럴지도, 또 어쩌면 똑같은 것일지도.
좋을 대로 말씀하세요. 아빠는 이 강박 관념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저한테 그걸 주실 거죠. 그래요, 아니예요?
=죽음말이냐? 결코. 난 네 아비야, 그리고 널 사랑해=
아가멤논도 이피제니의 아버지였고 그녀를 사랑했어요. 그래도 그는 그녀를 죽였죠.

17살의 되바라진 사춘기 소녀는 죽기를 희망한다. 아버지를 고뇌하게 하고 설득하고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가려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사춘기의 변덕으로 끝나고 소설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악의 논리를 선의 논리로 지적인 두 사람이 다양한 옛 문헌,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정신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기도 했지만 길게 이어지는 논쟁속에 누군가를 말문막히게 하는 것이 짜릿함을 주었었다.

이번 소설은 아빠와 딸의 의견대립, 아가멤논이라는 신화와 어우러져 더 박진감이 넘칠 수 있었는데, 그냥 사춘기의 변덕으로 끝나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음에 한 방의 칼을 갈고 있는 세리외즈(느빌 백작의 딸)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평범한 17세 소녀로 끝나 속상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아멜리 노통브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정도는 될 듯 하다.    

나는 여전히 아멜리 노통브의 여주인공과 그녀들의 말솜씨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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