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1주
청원 Guzaarish (2010)
감독 : 산제이 릴라 반살리
배우 : 리틱 로샨, 아이쉬와라 라이
인도 최고의, 아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을 만한 천재 마술사가 있다. '멀린'의 칭호까지 받은 그의 이름은 이튼. 그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자기만의 비법으로, 바람이 불어도 물속에 들어가서도 꺼지지 않고 촛대와 따로 분리되기도 하는 신기한 촛불 마술을 선보인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촛불과 공중부양의 신기함보다도 관객의 눈을 더욱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의 우아한 몸동작과 동화같은 아름다운 연출이다. 조수의 몸과 머리를 분리시켜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마술에서조차 이튼의 쇼는 끔찍하기 보다는 한편의 드라마같고, 투명한 공 하나만으로 춤으로 보여주는 그의 마술쇼는 몽환적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는 젖은 휴지 한장으로 흩날리는 눈꽃을 만들어내어 절로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마술을 하고 있는 본인 역시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전신마비가 된 그는 14년째 혼자서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간호사 소피아에 의지해 살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강인한 마음으로 장애를 견디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 숨막히는 상자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그의 몸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싶다. 스스로는 죽을 수도 없기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내지만, 그의 간절한 소망 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사람들과 국가(법)으로부터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는 삶에 절망하여 포기하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 장애인이 되고 나서 그가 다시 꿋꿋이 재기하는 모습으로 희망을 주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이 세상과 삶을 사랑한다. "인생은 짧지만 온마음을 다해 살면 충분히 깁니다." 그는 자신이 온전히 가졌던 유일한 자신의 것 두 가지를 세상에 남긴다. 그의 웃음, 그의 행복이었던 '마술'은 진실했던 제자에게, 바로 그 자신인 '이름'은 사랑하는 소피아에게. 자유를 눈앞에 둔 이튼의 미소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작별은 너무나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이튼의 아름다운 마술 장면들.. 특히 투명공 댄스는 이튼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쇼!!
<청원>
원작 소설이 아니라 영화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특이한 건,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내용도 좋지만 배우들과 영상미 또한 압도적이었던 영화였는데 이것을 과연 얼만큼 소설로 옮겼을지, 또 얼만큼 영화와는 다른 소설만의 매력이 있을지 궁금하다.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06)
감독 : 닐 버거
배우 : 에드워드 노튼, 제시카 비엘, 폴 지아매티
마술의 황금기였던 19세기의 비엔나에 한 마술사가 나타나 전유럽을 사로잡는다. 그의 이름은 아이젠하임. 어딘지 모를 어두움과 차분한 카리스마를 지닌 아이젠하임은 스펙터클하기 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롭고 다채로운 환상마술들을 선보인다. 빈 화분에서 오렌지 씨앗은 나무가 되어 순식간에 자라나고, 홀연히 나타난 나비가 손수건을 들고 날아간다. 황태자와 그 약혼녀까지도 아이젠하임의 유명세에 그의 공연을 관람하러 온다. 야심가에 의심도 많은 황태자는 눈앞에서 그가 선보이는 마술들에도 속임수가 있다는 식으로 부정하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무시당해왔었지만, 바로 그 무시당하곤 하는 그만의 마술을 이용하여 아이젠하임은 마술 이외에 자신이 바라는 단 한가지까지 모두 이루고자 한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연인 - 지금은 황태자의 약혼녀로 재회한 소피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어릴 때에는 어른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무력하지 않다.
소피와 아이젠하임의 위태위태한 로맨스, 소피를 두고 신경전을 펼치는 황태자와 마술사의 대결,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진실을 캐내려는 울 경감까지. 이야기는 복잡하고 은밀할 것 같지만 사실 꽤 단순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소피의 죽음 이후 우울한 모습의 아이젠하임이 선보이는 영혼을 불러내는 마술은 그의 환상마술의 정점이자 마술을 통해 아이젠하임의 사랑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노튼의 섬세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The Barnum Museum>
영화<일루셔니스트>의 원작은 스티븐 밀하우저의 단편 "환상의 마술사 아이젠하임"으로, 단편집 <The Barnum Museum>에 실려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에는 번역본이 없다. 번역 안된 책이 왜이리 많은고...ㅠㅠ
프레스티지 The Prestige (2006)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배우 : 휴 잭맨,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이번에도 역시 마술의 황금기였던 19세기~20세기 초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똑같이 마술에 푹 빠져있지만 전혀 다른 타입의 두 명의 마술사가 있다. 유복하게 자란 듯한 여유로움과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쇼맨쉽 강한 마술사 앤지어, 그리고 조용하지만 마술에 대한 열정만은 무서울 정도인 '진짜 마술사' 보든. 처음에는 동료였지만 보든의 잘못으로 앤지어의 아내가 무대에서 죽게 되자 둘은 철천치 원수사이가 된다. 하지만 단순한 증오를 넘어서, 이 둘은 서로에게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최고의 마술사가 되기 위한 경쟁에 목숨까지 걸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 가장 견제했던 궁극의 마술은 바로 순간이동 마술. 처음 보든이 먼저 순간이동 마술로 성공하는 것을 본 앤지어는 그 비법을 알아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속임수가 아닌 '진짜 마술'에 집착하던 앤지어는 '과학'의 힘을 빌리게 된다. 영화 <일루셔니스트>가 속임수라고 무시당하는 마술의 환상적인 힘을 드라마틱하게 끌어낸다면 <프레스티지>는 불가능한 것을 이뤄내는 신비한 마술의 무서운 현실적인 이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진짜 현실로 보여주고 사람들의 경탄에 취해가는 마술사의 욕망 때문에, 그들은 진짜 자기의 현실, 자기의 인생,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앤지어에겐 동료가 있고, 비록 잃어버렸지만 사랑했던 부인이 있었고, 그 후에도 지금 그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도 만났다. 보든에게도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같은 어린 딸이 있다. 하지만 최고의 마술사가 되려는 욕망 앞에서 이러한 소중한 것들은 희생되어 간다. 마술을 위해선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고 동화적인 기쁨만으로 마술쇼를 볼 수 없게 될 것 같기도 하다...
<프레스티지>
영화 개봉 당시 한동안 서점에서 윗줄에 당당히 진열되기도 했으나 뭔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표지디자인이었던... 영화의 원작 소설인 <프레스티지>.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10인’으로 뽑혔던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작품이다. 좋은 영화는 역시 좋은 원작에서. 소설은 좀더 진중하게 빠져들 수 있는 게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