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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삶은 물결에 많이 비유된다.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언제 솟구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물결. 그렇다면 자서전이나 에세이는 곧 그 물결의 무늬를 그리는 일이 된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물결의 흐름을 한 책에 고스란히 녹여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 흐름 중 몇 개만 딱 집어내는 것이 불가피하다. 보통의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자서전은 당연히 잘 나가는 순간들을 집어낸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적자에서 흑자까지, 각종 극적인 효과를 동원한다. 한편 너무나 불운한 삶을 살았다면 정반대의 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착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삶은 행운으로만 가득했고 누군가의 삶은 불행으로 가득 찼다고. 누군가에게는 하늘 높이 솟구치는 멋진 물결만 가득했다고.
그런 글은 커다란 흥분을 안겨 주지만 이윽고 나 자신의 삶과 괴리됨을 깨닫고 실망하게 만든다. 그 후로는 그저 글일 뿐이다. 종이에 묻은 잉크 자국, 대량 생산되어 팔릴 책.
그런데, 어떤 글은 삶의 풍경을 조용히 관조한다. 그 고요함 속에 한땀 한땀 삶의 무늬들을 그려낸다. 아무런 화려함이 없다. 과시하려는 마음도 없다. 가르치려는 마음도 없다. 도리어 부끄러움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선 무언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다. 삶이 그 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렇기에 그 글은 오히려 동적이다.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마침내 글을 글 이상의 무언가로 만든다.
김창완의 글이 바로 그렇다. 그의 글은 더듬더듬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술에 취해 터벅터벅 걸어오시는 아버지 모습처럼 낯이 익다. 어디 먼 나라에서 온 듯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 대단한 사람이요, 하고 행세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터벅터벅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이라는 물결과 그에 조응하는 삶, 평생 알 수도 없을 이야기들, 언젠가 모두 흩어져 버릴 것들,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풀어놓는다. 그런 삶이라는 물결의 무늬들을 담담하게, 또 아무런 꾸밈 없이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글은 느긋느긋한 말로 들렸다가 한 편의 시가 되었다가 다시 긴긴 노래가 된다. 어느 노랫말대로, "한마리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