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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헤세의 나무 숲을 거닐며 - 겨울 동안 엉성하기만 했던 나뭇가지에 푸른 생명들이 돋아났다. 나무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겨울 내내 창백한 얼굴을 하다가도 봄이 되면 꽃을 활짝 피우고, 여름엔 푸른 잎사귀를 가득 채운다. 매년 반복되는 일들에, 지치지 않는 모습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헤르만 헤세는 나무에서 얻은 기쁨과 위로를 산문과 시의 형태로 다양하게 남겼다. 책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그 글들을 모았다.
책의 표지는 헤세의 복숭아 나무를 담았다. 헤세의 지난 날은 높새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땅 위 들판과 포도나무 잎이 떨어진 숲, 위로 솟은 무화과 나무를 강하게 흔들었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회오리를 만들며 흩어졌다. 그 일로 헤세의 나무 중 가장 큰 복숭아 나무가 부러지고 말았다. 나무에 피는 가지를 꽃병에 담아두거나, 받침대를 만들어주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 나무여서 상심이 컸다. 헤세는 오랜 친구가 빈 자리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생긴 틈으로 공허함, 어두움, 두려움을 느꼈다. 다른 나무가 부러졌을 땐 나무가 있던 자리를 파서 날씨가 온화한 날에 새 묘목을 심었었다. 그러나 복숭아 나무 자리엔 다른 나무를 심을 수 없어 비워 두었다. 항상 새로 나무를 심던 행동을 그치고 일련의 일들에 저항했다.
헤세는 복숭아 나무 관련 시에 '모든 것이 제 길을 가게 해', '안 그랬다간 세상이 너무 좁을테니/삶이 아무 낙도 없을테니'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복숭아 나무 자리에는 다른 나무를 심지 않음으로써 대체품을 세워놓지 않았다. 헤세의 이 행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헤세에게 복숭아 나무는 친구같은 존재다. 언제나 함께하고, 꽃과 나비같은 자연도 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왔을 것이다. 나무에게 친밀함을 넘어 사랑과 우정과 같은 감정도 느낀 것이다. 복숭아 나무뿐 아니라 자연 자체가 소중하고 애틋했던 것이다. 그래서 헤세의 나무가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으며 삶을 알게 해 준 나무와 자연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