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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고구려 -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
지배선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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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도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에 새로 취임하는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여성이 한국계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인데, 당시 한국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를 집중 보도하며 그녀의 성취를 개인의 성공이

아닌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한 쾌거'로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허나 사태는 예기치 못한 쪽으로 진행됐는데, 
그녀가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말라며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생후 6개월만에 버려져 프랑스로 입양되어

한국어는 커녕 한국에 대한 기억조차 없었고, 자신이 프랑스에

오게 된 경위를 알게 된 후에도 프랑스인으로 살기로 결정해

지금까지 한국을 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당황한 언론은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내내 


왜 친부모를 찾지 않는지,

발견되었던 동네에 들를 생각은 없는지,

왜 굳이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프랑스인'이라고 강조하는지,

한국 술이나 노래, 영화 등엔 관심없는지,

지금이라도 한국어를 배워볼 생각은 없는지 등


끈질기게 '한국과의 인연'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확고하게 자신은

'프랑스인'임을 고수했고 결국 언론에선 '그녀는 사실 한국에서

버림받았다는 기억때문에 아직 한국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동양인 입양아로 낮선 프랑스에서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의 삶 전체가 비로소 이해되는 듯 했다' 며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속내까지 추궁했고 끝끝내 그녀를 한국과 어거지로 연관시키며

이 전지적 시점의 소설 한편을 머쓱하게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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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뢰르 펠르랭 사건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한국인이 되기 위한, 아니 어느 한 민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법적 신분인 국적? 유전적 요소? 아니면 개인의 의지?


플뢰르는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밝혔기 때문에
더이상의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대상이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역사적 인물이라면?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서 활약한 유민출신 중 가장 성공한 사례인
이정기와 제나라 왕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역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지 그의 유전적 요소가 고구려인이라고 해서 고구려가 멸망한지 64년이나

지난 뒤에 태어난 이민 3세대 정도의 그를 곧바로 고구려의 자랑이자

한국인의 쾌거로 연결지어도 될 것인가? 


저자는 이정기가 유전적으로 고구려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기반이 된

지역에도 고구려인 후손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제나라는 발해와 함께

고구려인이 세운 제3의 고구려 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구)려 국왕'이라 밝힌 발해의 사례와 달리 남겨진 기록 어디에도

그가 스스로 고구려인이라는 의식을 보인 일은 없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의 중신들 중 고구려 출신이라 기록된 인물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정기가 고구려인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개인적 업적을 고구려인의 성취이자 한국인의 쾌거로 받아들여야 할까?


서두와 말미에서 밝혔듯 저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위대한 고구려의 마침표로 이정기 왕국을 알린다고 하지만, 정작 저자가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아닌 이유로 강조하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이정기 왕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은 '왕'의 지위에 오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당나라 황제의 아래인 위치를 유지했고 그에 따라 당나라 황제가 주는

벼슬들을 거부하지 않고 꾸준히 받았으며 일찌감치 아들들에게도

당나라 고위 벼슬을 챙겨주기까지 했는데, 이는 당시 무력으로 득세한
군벌세력들의 전형적인 세력굳히기 전략으로 독자적인 천하관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신라와 조선의 비굴한 유교사상 때문에 감히 상국인 당나라와

당당히 맞선 제3의 고구려 제나라를 좋게 볼 수가 없어 지금까지 조명이

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이처럼 이정기에 대해 확실한 건

그가 유전적으로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것 뿐인 상황에서 섣불리 그의
성공을 한국인의 성취로 받아들이기엔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다.




만일 저자의 이런 논리를 그대로 따를 경우 동북공정문제에서 또 한 가지

골치 아픈 쟁점이 생기는데 바로 고조선의 '위만왕조'이다.

위만은 한나라인으로 고조선에서 일으킨 쿠데타가 성공하여 새로 왕조를 열었다.

저자의 논리라면 위만이 고조선을 정복한 일은 곧 중국이 한국을
정복한 쾌거가 되는데, 그럼 고조선도 중국역사라는 동북공정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고조선 멸망 후 설치된 한사군에서도 지배층은

분명히 중국인들이었는데 그럼 중국과 일본의 주장대로

한국 고대사의 고조선~한사군시대는 중국의 식민지였던 꼴이 된다.


동북공정은 물론 말도 안되는 무례하고 천박한 중국인들의 자위질에

불과하며 이를 좌시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억지 논리에 똑같은

방법으로 맞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위에 언급했듯 문제는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동북공정을 분쇄시켜 다시는 이런 소리를
못하게 확실히 종결짓는 것이므로 저들의 뻔뻔한 곡학아세에도

좀 더 차분하고 의연히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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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 자체에 대해 평하자면, 이따금씩 등장하는

(이정기와 제나라가 고구려역사라는) 저자의 코멘트들을 제외하곤

책의 내용 자체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의외다 싶을 정도로 저자는 자신의  저런 '코멘트'를 자제하고 있으며

여러 사료들을 잘 엮어 이정기와 제나라 55년사를 충실히 설명하고 있는데,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은 책의 마지막 장에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 역사는 역사대로,

사관은 사관대로 구분한 저자의 구성이 특히 만족스러웠는데,

 

다만 오타는 그렇다 쳐도 당시의 혼란한 정세와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설명, 그리고 지도가 몇 장 더 있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도는 p45. p185. p188 로 딱 세장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 지도가 이정기의 제나라 영토만 표시하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책에는 제나라 영토와 인접한 다른 지역들이

수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왕 만드는 김에 140페이지 분량의 텀 사이에

한 두 장 더 넣어주고, 인접한 지역들도 함께 표시해줬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우리 역사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이정기와 제나라-그리고

저자가 전문으로 연구하는 다른 고구려 유민들-의 역사는 솔직히 재미있고

감정이입도 되어 신나기도 한다.


특히 이정기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전형적인 영웅으로서의 풍모와 매력,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난세를 기회로 바꿔 역사에 남긴 큰 족적을 따라가는 건 정말 재미있다.
 
위에 주저리 떠든 사관에 관한 문제를 뺀다면,
부담없이 순도 100% 실화 이야기를 즐기기에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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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화 2018-09-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요약이 잘되어 있네요.
잘보고 갑니다. 또 한수 잘배웠습니다.
 
한권으로 읽는 의학 콘서트
이문필.강선주 외 지음, 박민철 감수 / 빅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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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인류 투쟁의 역사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한듯 생각하는 100세시대가
불과 100년 전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불로장생에 버금가는
장수였다는 사실은 '당신의 오늘은 어제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 라는 문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체감시켜주었는데,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가?'라는
고민에 앞서 이 생명을 영유할 수 있는 사실 자체에
먼저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소중함을 먼저
자각하지 않고서야 저런 고차원적 고민 역시 그저 피상적인
상념에 그치고 말테니까.

 

 


현대의학의 수혜가 없었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난 어릴적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는 바람에 잇몸이 심하게 찢어져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19세기 리스턴과 심슨이 에틸에테르, 크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고작 유치원생이었던 어린나이에 마취없이
잇몸에 칼과 바늘을 대는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을 것이고
제멜바이스가 소독과 청결이 수술후의 감염을 막아준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사망한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 뿐만아니라 주위에 크고 작은 외과수술을 받은 지인들 중 몇이나
내 곁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 19세기 중반까지 산욕열등으로 인한 산모의 사망률이 18.3%에
이르렀음을 생각해볼때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총,균,쇠]의 저자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들 중 하나로
병균을 꼽았고 이 병균들은 기원전 1만년전 농경을 깨우친 인류가 집단생활과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과 길고 처절한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17세기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발견하고
19세기 미생물학자 파스퇴르가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전까지
무려 1만2천여년동안 그저 두 눈에만 의지해 병마와 싸워야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원인을 알지 못했으니 그저 신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세균학적 질병에 심리치료만을 처방한 꼴이다.

이처럼 절망적이었던 인류의 힘겨운 생존 투쟁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위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점차 절망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감없는 실화라는
사실에 더욱 숙연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또, 의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게 됐다. 죽은 몸이라 할 지라도 인체를 해부하는 걸 불경하게 생각한
오랜 문화때문에 해부학적 지식에 갈급하던 의사들은 동물을 해부하는
것에 만족해야했는데 각 장기의 기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살아있는 채로
개복을 했고 이 과정에서 고통과 감염 등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죽어갔다.

이 후 계몽시대에 이르러 의학의 발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인식의 전환덕에
시신 해부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전염병의 원인인 미생물을 발견한 후에는
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수십 수백마리 단위의 동물들이 강제로 감염되어야 했고
이 과정은 마침내 치료제를 만들어내기까지 계속되었다.

면역학의 창시자라는 베링은 디프테리아균을 치료할 수있는 약을 만들기
위해 수백마리의 기니피그에게 이 균을 투여했고 역시 면역학의 대부 에를리히는
606번째의 실험에서 마침내 트리파노소마균의 치료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동물 보호론자들은 경악할 이야기이고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나
위대한 미생물학자 코흐가 이런 실험끝에 찾아낸 우역(소에게 나타나는 전염병)치료제로
1896년 사망률이 무려 90%에 육박하던 남아프리카의 소 이백만마리를 구할 수 있었고
광견병치료제 등 동물질환들도 점차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위안이 될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은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며
철학의 근본일 것이다. 나 역시 이에 관한 몇 몇 성현들의 조언을
외우고 있는데 그 동안은 젊다는 안일함과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변명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의
내 존재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고 나니 이 소중한
삶을 더 가치있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든다.
 

의학쪽은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란
당초의 염려와 달리 정말 단숨에 읽어내려갔고 중간중간 많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어주었다. 의학기술의 발달사에 관한 내용들은
곧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을 통해 이런 명상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게 독서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526페이지라는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며 주제를 세분화 해 좀 더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별도의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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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사 1 -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전쟁과 평화 학술총서 1
일본역사학연구회 지음,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 엮음, 방일권 외 옮김 / 채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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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책을 정독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고발이었다.


일본의 양심있는 학자들 50여명이 공동집필했다는 이 책은

조선 식민지배 성공과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의

잇따른 성공에 도취되어 점차 광기에 휩싸여간 일본이 결국

패망하게 되기 까지의 경위에 대한 내부고발서라 할 수 있는데
책이 쓰인 시기가 패망직후이므로 저자들 모두 동시대를 산

현장증인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인지 절제된 서술의 말미마다

이따금 드러나는 감정의 격앙이 인상적이었다.



지은 지 50여년이나 되어 나름 고서의 목록에 포함해도 될 정도로

오래된 책이지만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명료한데 무엇보다

당시 일본의 내부 사정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재벌과 관료들의 정경유착에 더한 군부의 독선,

육군과 해군 내부의 경쟁의식, 파시시트 및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사상운동가들 간의 대립.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일반 서민들의 실태 등 르포르타주 전시를 떠올릴 만큼

당시 일본 사회를 위에서 아래까지 소상히 다루고 있어 일제의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며 어째서 일본이 끊임없는 침략을 일으켰는가,

또한 어떻게 그런 규모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책의 [펴내는 글]에서 책을 편역한 아르고 연구소가 암시하듯
이 책은 반 자본주의적, 공산주의적, 혁명적 사관에 입각해서

쓰인 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하는데 책 전반에 걸쳐

공산주의사상가들을 점점 파시즘에 물들어가는 일본의 상층부에

끈질기게 저항을 고집한 유일한 양심가들로 그리고 있어 지은이들의

이런 사관에 경도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저임금과 노동시간 연장 등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자국민의 고혈을 짜내던 수뇌부들에 맞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선 것은 호평을 받을 일이지만

문제는 이 당시를 파시스트 vs 공산주의의 양대 대립 구도로 몰아가

마치 일본의 반 전쟁 반 제국주의 투쟁을 벌인 양심적 실천가들은

공산주의자들 밖에 없었고 그들의 세력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있는 점이 눈에 걸린다.



이는 그들이 제시한 통계치에서도 드러나는데 메이지 초기 이미

3500만명을 넘겼던 일본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동자들 중

노동쟁의 건수는 가장 불황이 극심했던 1932~1937년의 5년동안 500~800건

정도이며 참가인원역시 3만~12만명정도이고, 그 후 총선거에서도

공산주의 계열의 후보가 차지한 의석수가 상황에 따라 늘기도 했지만

늘 소수파에 불과해 저자들이 사회대중당(사회주의 계열)의 약진이

돋보인다며 제시한 총선거표에서도 사회대중당은 전체의석수 466 중

37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나마 그 전 선거에선 19석이었다)

총선거에서 늘 압도적인 수를 차지한 건 민정당과 정우회 쇼와회 등이었으니

결국 일본국민들은 침략전쟁으로 인한 영토확장과 그들식의 국위선양을

지지했다는 것이 된다.


즉 저자들은 1. 당시 일본 국민들은 결코 일제의 침략정책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2. 오직 공산주의계열 운동가들만이 파시즘에 맞서 고군분투했다.는 사관으로
글을 쓴 것이다.


물론 저자들이 책을 쓴 목적은 참회이겠지만 이런 식의 해명이 당시

일본사회가 공산주의식 계급투쟁의 연속이었으며 노동자 계급인

대다수 일본 국민은 그저 선량한 피해자요, 나쁜 것은 이미 전범재판으로

처형당한 군부와 정치 수뇌부 및 일부 극우 파시스트 자본가계급 들이다 라는

류의 변명으로만 들려 불쾌했다.


오늘날의 일본이 지난 침략전쟁과 수탈에 대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이에 대해 소수의 양심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일본인들이 묵시적 동의를 하고

있는 점을 비춰보면 저자들의 참회란 실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비겁한 변명의

연장에 다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쓸하다.



 

책의 두 번째 장점은 태평양전쟁사라는 제목답게 당시 유라시아대륙

극동과 극서 양쪽에서 벌어졌던 격동의 정세를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켜

설명해 시야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이다.


어째서 영미제국은 일본에 유화적인 태도를 견지했는가,
어째서 국제연합이 존재했음에도 일제의 만주-중국 침략을 저지하지 못했는가
1차대전의 책임으로 재기불능의 상황에 빠져있던 독일이 어떻게 2차대전을
일으켰으며 어째서 주변강대국들은 세계대전의 재현을 막지 못했는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으로 동맹을 맺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등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기까지의 국제정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 그 분량에 비해 얻는 것이 많다.




이런 장점들로 태평양전쟁과 일본제국주의의 실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에겐
추천할만한 양서이지만, 다만 당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보니 우리에겐

생소한 여러 인물들이나 관직명등에 대한 별도의 부연설명이 없어 해당 사건이나

인물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점과 환율에 대한

설명이 없어 당시 일본의 경제규모와 경제부양정책의 대강에 대한 그림이 잘

잡히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이런 점들은 이 책을 편역한 아르고 인문사회연구소에서 개선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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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춘추전국이야기11



사실 춘추전국시대는 나에게 밀린 숙제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즐겨 쓰는 고사성어들이 집중적으로 탄생한 시대이며
어느때고 불쑥불쑥 인용되고 회자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아웅다웅하던 시대인지라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욕심 역시

불쑥불쑥이지만, 그야말로 '난세'란 수식에 알맞은 혼란 가득한

시절이었던지라 쉽게 손댈 수가 없는 그런 대상.



그걸 저자가 해냈다.


1권 도입부에서 저자는 가장 먼저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찰한다. '결정론'에 함몰되지 않는 정도에서의

지정학적 위치는 해당 국가의 경제구조와 정책기조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틀과 같아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야말로 당대인들의

행동양태를 이해하는 핵심 중 하나라고 볼 때, 지금까지 이처럼
도입부부터 상세하게 지정학적 고찰부터 시작한 책은 없었는데

이는 저자의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구성이라

마음에 들었고, 실제로 저자는 권의 말미에 현장답사경허과 그에 대한
소회를 적어 독자들이 최대한 생생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듯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강조는 '결정론'이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태고적부터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해온 인간의 진취성과 가능성을 무시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극단적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이 조선인들의 저항의식을 꺾기 위해 내세웠던 식민사관의

양대 기둥 중 하나가 반도론(조선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의 한계

 때문에 늘 주변의 침략과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이었다는 점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저자는 도입부 이후에는 서서히 지정학적 설명을 줄이고

대신 문헌학과 고고학을 토대로 해설을 시작하는데 그 풍부한 정보와

그 정보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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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문장은 언뜻 심심해보일 수 있지만, 마음속에 솟구치는

문장력에 대한 과시욕을 절제하고 '평이해보이는' 문장을 쓰는 것 자체가

문장기술에 대한 어지간한 고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요는 평이하냐 화려하냐가 아니라 잘 읽히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라는

고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 고민과 노력의 결실은 권의 후반부에 갈 수록 빛을 발하는데,

어느순간부터 저자가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한 논평에 조심스레 현재를

투영시켜 대조하고 반추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그 대목들은

평이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다. 딱히 전문적인 용어나 사상을 집어넣지 않아
잘 읽히면서도 무게가 있다. 개인적으로 10권 [천하통일] 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는데 진시황과 키루스, 아소카 대왕이 남긴 비문들을 비교하며

진시황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비평을 한 부분이 특히 참신했다.


마지막 권인 11권은 진시황 사후 또 다시 도래한 난세를 정리하고

마침내 최후의 승자가 된 유방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사실

시대구분용어에서 춘추전국시대를 '선先진秦시대'라고도 하듯

춘추전국시대는 진시황의 통일로 그 막을 내리는 것이 역사상의

구분이기에 유방과 항우의 대결인 초한쟁패기는 권말 보너스 같은

느낌일 수 있지만 저자는 춘추전국이란 난세의 진정한 끝은 유방의

천하통일이라 생각하기에 이 초한쟁패기까지를 다루었다고 술회한다.


이는 저자가 그저 춘추전국시대의 흥미로운 이야기들만을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시작과 종언을 정리하여 그 의의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임을 알게 해준다.


물론 유방이란 인물에 대한 찬미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저자의 사관에서는 그 지옥같은 아비규환의 난세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니

그야말로 '구원자'로 매료되어버렸다고 해도 이해는 간다.


10권과 11권에서 저자는 기존과 달리 진나라의 법과 한나라의 법에 대한

주장을 하며 자기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는데, 이는 진나라의 법이 포학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성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이 '법'이라는 대상에 대한 저자의 존재론적 고찰을 엿볼 수 있어 이 점도 흥미로웠다.  


권수가 많아 쉽게 도전하기 힘들 것 같지만 막상 1권을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다 읽게 되는대단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만해도 올 초에 1권을 읽어 1년만에 전권을 다 읽었다.



중국에도 출간된다고 하는데 중국인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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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이우각 지음 / 생각과사람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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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상과 너무 다른 책의 구성에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 역사, 내 역사를 다시 한 번 잘 정리하고 요약해보자!"는
머리말을 그저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일반적인 역사도서들이 특정 시대나 왕조를 주제로 한 연대기적

 서술 속에서 저자의 견해와 주장을 펼치는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정말이지 한국사 고대 파트를 백과사전식으로

'충실히' 요약해놓았고 (출처도 거의 대부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다,)
심지어 저자의 코멘트보다 요약부분의 분량이 더 많을 정도였다.

 

 

 

이런 구성 때문에 얼핏 책 자체가 성의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정리해놓은 요약파트를 쭉 보다 보면 또 '대충 만든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쑥 들어갈 만큼 잘 정리-요약되어 있기에

(웬만한 수험서 보조자료로 써도 될 정도이다) 이 책을 집필한

저자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가가 더 궁금해지게 만들어 저자의

코멘트를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 <이야기 한국사> 보다 부제인

-정통 한국사를 위한 첫 걸음-이 책의 본질을 더 충실히 나타내고 있다.

 

다른 비전공 저자들이 재야역사가라는 타이틀을 얻기위해

검증되지 않은 학설들을 여기저기 짜깁기한 '유사역사'로

독자를 오도하는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역사자체보다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왜 한국인인 우리는 한국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구하려 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으며 한국사를 알아보려하는 사람들의 '첫 걸음'에

 길라잡이 역할을자청하고 있는데, 나이를 굳이 숨기지 않는 필체가

조금 고지식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묻어나는 저자의

박식함과 연륜, 그리고 각 질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느껴지는

코멘트들은 정말 좋은 조언으로 다가온다.

 

 


한국사 입문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 한 책이고,
수험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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