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법철학 - 상식에 대항하는 사고 수업
스미요시 마사미 지음, 책/사/소 옮김 / 들녘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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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무엇인가요?

흔히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실상 현대 국가에서 국가의 권력이 큰 나라에서는 법 없이 행해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시민 상호의 자주적인 계약의 형성보호를 위한 편의를 제공"한다. 즉, 법률이란 현대 생활에서의 도로, 정기, 상수도 같은 인프라 뿐만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법률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이 위험하다! 정의가 수상하다

법이란 상식에 대항하는 사고란 기존의 틀을 부수는 일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법철학" 이 책에서 말하는 논리가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평소에 갖었던 법이 가지는 의미와 정당성에 대해서 항상 고민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나와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책을 보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지배하는 권력, 어느샌가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상식이나 습관

그리고 법률과 싸우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싸울 상대인 법률에 대한 공부의욕이 급작스럽게 내 안에 끓어 올랐다."

이 저자가 말한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법이 정의로울까요? 정의는 무엇에서 오는 것일까요?

법률이 정해진 것이 과연 정의 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여력합니다.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법률 탓?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법률관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소송을 제기해서 이기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여담이지만 조영남씨는 대작논란으로 소송하였지만 결국 승소하였습니다.

대법원에서 조영남씨의 손을 들어주었죠. 하지만 창작물을 조수에게 시키고 자신은

이래라~ 저래라 지시만 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창작물로서의 가치가 인정이 될까요?

이렇게 되면 돈있는 사람, 기득권이 있는 사람은 창작물의 주인이 되는 거고

실제로 하는 사람은 그냥 소유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AI시대로 왠만한 건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들이 많을텐데요.

법의 정당성이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이런 것들이 참 씁씁합니다.

클론 인간의 제작은 NO GOOD?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바뀌여도 기술이 바뀌여도 결국 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고 법은 인간을 보다 이롭고 건강하게 사는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인간이 조직을 이루고 살면서 부터 타인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 규율과 규칙이 정해졌고 그것이 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게 의해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클론은 원인간의 복제입니다. 본체의 체세포에서 핵을 빼내어 역시 핵을 빼낸 미수정란에 이식하고 그 란을 자궁에 들어보내 성장시킴으로서 자신이 복제가 되는 기술입니다. 그럼 그 인간은 사람인가요? 인간의 존엄성이 있는 그 자체의 본질인가요?

가치관이 다양화하고 있는 오늘날, 기본가치에 대한 성찰이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당신은 희생해주세요

나의 생명적 가치와 너의 생명적 가치 중 어떤 것이 더 중할까요?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 사항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살려야 되는 생명이고 누가 죽게 놔두어야 되는 생명일까요?

나이가 많다고 그 생명의 가치가 떨어지나요?

그런 생명권에 대한 문제가 법적으로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면서 최대 다수의 행복과 공익을 위해서라고 말을 하겠죠

불평등의 근절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심리. 그러면서도 대 놓고 하지는 그 심리는

"나는 너와 달라" 너는 더 특별해야 돼. 나에게 주는 혜택은 당연해"

그러나 내가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이 세상은 불공평해.

우리는 헬조선이야. 흙수저, 금수저를 논하면서 이런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한다.

평등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실현이 가능할까? 사회주의 사회가 나오게 된 배경도 이런 맥락과 함께 하지만 그 결과 공산주의 사회가 탄생이 되었다.

공산주의 사회가 과연 평등한 사회인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우리 옆에 있는 중국이나 북한을 보아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불평등의 근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은 숙제이다. 과연 어디까지 평등을 실현 할 수 있는 가가 관건이다.

나에게 '누구가에게 먹힐 자유'가 있다.

난 이 표현이 정말 와 닿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잡아 먹힐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나로서 살기는 정말 힘들다.

나로서 나의 자유를 누리면서 나의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유라는 것은 한계가 없는 거다. 거림낌이 없는 거다.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내가 원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성취하고 그것을 보유하면서 마음에 안정을 누렸을 때나 가능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종속적으로 잡아 먹히는 관계에 있다.

권력에 끝에 갈수록 그 관계는 더 집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먹고 또한 먹히고

그러면서 먹이사슬이 연결된 사회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중 내가 어떤 먹이가 되는 건가?는 나의 선택, 나의 자유이다.

내가 누구에게 먹이감이 될 것인가? 그런 나의 권리이다.

그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아가 나가는 일이다.

책과 콩나무 책 서평단에 선정되어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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