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타워
경지운 지음 / 바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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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대학의 영문학을 전공한 26살의 취준생 김지민. 그녀는 한국대학교 총무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길어야 2년인 계약직 사원이 되어 학교직원의 4대보험 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사수인 정계장은 거의 자리에 없고 그녀는 독학으로 일을 배우며 적응해나간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그녀는 정규직의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 허탈함과 상실감을 느끼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과 미래의 어느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것이란 희망을 품은 채 열심히 맡은 일을 수행해 나간다. 



🔗난 내가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왜 계약직이란 신분이 이렇게도 모든것에서 배제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마치 뭔가를 박탈당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정작 '계약'이란 단어엔 그런 뜻이 없는데. (P34)


그냥 관행대로 기존에 해왔던 대로 나는 계약직이니 정규직원의 이름으로 로그인 해서 루틴에 맞게 법적인 태두리 안에서만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울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대학교가 나에게 부여한 내 업무였다. 4대보험 담당자(p54)





그러던 어느 날, 2년 전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직원이 총무과를 찾아온다. 계약기간 2주 전부터 일을 시작한 그의 실질 근무기간은 2년을 초과한 것이고, 그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것이다. 이 일로 인사팀을 비롯해 학교 교직원들은 비상이 걸리고 얼마 뒤 지민에게 낯선 이메일이 도착한다. 

📧정규직 전환 대상 조합원을 돈으로 매수한 대학본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클릭해보는 것 조차도 두려운 지민이지만 자연스럽게 학교 내 노조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된다. 그동안 사수 정계장은  열정적인 노조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에게서 노조가입을 권유받는다.
같은 처지의 직원이자 말동무였던 현주는 바로 노조에 가입하지만 지민은 머뭇거린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지만 정규직이 주는 안정감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은 지민의 갈등은 계속된다. 



 🔗그 법은 2년 쓰고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년 정도 근무했으면 그만큼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 그 이후부터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이야기인 거죠. (p119)





최저 시급에 가까운 임금을 받지만 정규직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계약직원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한계는 자신이 갖고 있던 꿈마저 흔들어버린다. <나는 가수다>의 제목이 어느새 <나는 계약직이다>로 보일 정도로 그녀의 삶 전체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타이틀에 잠식당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명목으로 도입된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정규직이라는 명함을 부여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왜 한낮 2년짜리 대체 인력으로 내몰려야 하는 것일까. 



👉제목인 '아이보리 타워'는 상아탑의 중의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대학이 살아있는 지성의 요람을 자처하면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방관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저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자칫 무거운 주제일수도 있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개인적이면서도 중립자의 입장에서담담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필력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인물 내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자연스레 주인공 지민으로 감정이입이 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결하면 좋지만 해결할 수 없는 그저 남의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중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깨닫게 된다. 편하게 읽혀내려가지만 거대한 사회문제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찬란하게 자신만의 빛을 밝힐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리석은 존재로 낙인찍지 않기를 두손모아 바래본다.



"원하는 삶이 뭔데?"
"사실 별거 없어. 난 그냥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밤에 자기 전에도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
아침과 밤, 그 사이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지낼 수 있겠지?" (p305)



작가님께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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