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채혜원 지음 / 마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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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으로 건너건너 본 피드 덕분에 참 알록달록하고 사랑스러운 책이 출판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서둘러 신청했었던 기억이 난다. 책 제목이 마음에 참 와닿았다. 항상 내가 나를 위로하고 어루만질 때 하는 이야기니까. 힘들 때에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 때, 딱 한명만 있으면 된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건 우리를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준다.

 

부제가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이라 표지에 적혀있길래(마치 패들렛처럼 책 표지가 구성돼 있어서) 정말 궁금했다. 페미니즘.. 대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와 같을까. 아니 우리와 같을까? 병원 동기와 이전에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미로에 빠진 것처럼 헤매던 날을 생각했다. 페미니즘의 ㅍ만 꺼내도 견제되고 제외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나도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내게 성교육 시간에 페미니즘에 대해 다뤄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같은 여성임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양성평등한 사회이지 않느냐고.

 

아직 많이 배우고 갈 길이 멀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주요 골자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어느 인종이여서, 어느 나잇대라서, 어느 성별이라서가 아닌 이 모든 것을 떠나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오롯이 바라보는 것. 어떠한 차별과 혐오도 행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작가님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작가님의 섬세한 마음으로 알아차린 많은 부분은 결국 우리 모두는 차별하지 말아야하고, 미워하지 말아야하고, 함께하자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이 다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더 인상깊었고 관심이 많았던 분야들에 대해 내 생각과 함께 정리하려 한다.

 

첫번째는 우리 모두가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성애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직도 왈가왈부하고 있다는 게 속상할 정도로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의 문제는 '남'이 이야기할 거리가 아니다. 이성친구 있는지, 사귀는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했는지, 결혼했는데 애는 없는지. 예전에는 친해지기 위해서 화두를 던지듯 사실 별 배려 없이 던져오던 이 말들이 이제는 정말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상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이성애자라 전제하고 하는 실수. "직장에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가 더 많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내’같은 성별 이분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베를린은 어쩌면 곧 찾아올 한국의 미래란 생각을 해보았다. 짐작보다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올 미래.(page 66)" 우리 모두가 동성애자가 됩시다! 라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자는 거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대방의 성적지향에 대해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간호사로서 일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임상에 있을 때는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었다. 너무 업무 강도가 심해서. 정말 밥먹을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상급병원에서 일하며 간호사로서의 자존감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환자들에게 내 신념에 맞는 간호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우리나라에서 참 좋은 병원이라 알려져있고 병원에서도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처우개선되려면 너무 갈 길이 멀었다. 동기들과 연대해서 힘내자고 했지만, 결국 임상에서의 길을 포기했다. 당시에 나는 졌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 돌봄을 제공할 수 없어서. 너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너무 지쳐서 그렇겠지, 혹은 아직 일하는 사람들 있는데 왜 나는 못할까 하는 죄책감도 들고. 미래가 안보여서 떠나는 임상이라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안다. 우리나라 의료현장은 봉사정신과 헌신을 요구하며 어쩌면 이게 직업이기에 존중해주고 배려해줘야 할 많은 부분이 누락돼 있다는 것.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 그리고 특히 임상에서 간호사의 업무 환경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어쩌면 이 직업군에 여성이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 더욱 개선이 안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도 간호, 돌봄 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고 한다. 독일은 간호사, 간병인의 80%, 노인 돌봄 종사자의 84%,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중 94%가 여성이라고. 그래서 간호, 돌봄 영역의 노동환경 개선은 '여성파업'의 주된 테마이기도 하단다. 여성 파업 베를린 지부는 "사회적인 인정과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선한 일'을 하고 있지만, '선한 일'이라는 인식은 노동자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앞으로 간호,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저임금과 평가절하에 대항해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page 193)" 소위 여성 영역으로 여겨지는 산업과 직군의 임금이 낮은 '성별 임금 격차'가 전세계에 존재하는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간호, 돌봄 영역의 구조 개혁, 제대로 된 근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2019년 4월 우리나라도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바가 있다. 하지만 임신 초기 낙태만 가능한 것(14주 주수 제한), 정부가 정한 임신중지 사유를 충족하는지 따져보는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화 그리고 낙태를 거부할 수 있는 의료거부권 보장을 포함한 개정안은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성관계의 결과가 임신이고,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라는 점에 있어서 참 거룩하고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거룩함과 신성함을 안고 항상 성관계에 임하지 않지 않은가. 어느 부분은 성교육으로 인식개선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쾌락으로서의 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피임교육에 힘써야할테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번의 성관계로도 임신은 가능하다. 만약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였다면?

 

임신이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한 일인만큼, 이 사안은 여성에게 아주아주아주 큰 일이다. 임신을 했으니, 낳아라. 뱃속에 있는 아이도 생명이지만 그 생명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럼 성관계를 하지 말았어야지라 비난하고 책임지라 하는 것은 이제 나는 폭력이라 생각한다. 성교육을 하며 데이터를 보면 첫 성관계를 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갈 수록 낮아지고 있다. 청소년 때 첫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이 정확한 피임을 할까. 임신이 되면 어떻게 할까. 아이의 꿈이나 앞으로의 인생을 송두리 째 흔들 수 있는 게 임신이고 더 많은 삶의 변화를 안고 가야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잉태된 생명만큼, (생명의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임신한 여성의 삶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사실 이 임신중지의 법제화는 물론 생명의 소중함도 소중함이지만, 예전의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자아이인 게 확인되면 낙태하던 것. 그리고 지금의 출생률 감소 때문에 불법화해야한다고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렇게 임신중지를 불법화하는 행위를 그만둬야한다. 우리는 결코 '남'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할 수 없다. 아이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그 생명을 계획하지 못한채 갑자기 잉태하게 된 여성의 앞날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낙태를 금지해도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할 거란 걸 의회는 알고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고 죽을지 모른다 해도요.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입하고, 역사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성 혐오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전 세계 여성이 연대해 싸워나갈 것입니다.

130 page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과 차별의 역사는 참 뿌리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라 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여성'이기에 겪었던 차별과 폭력이 독일에서는 '아시아 여성'이라 받는 차별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가해자에 대한 가벼운 형량이 문제라 한다. 자신을 떠나거나 자신을 떠나고 싶어해서 이전 또는 현재 파트너인 여성을 죽이는 사건 상당수가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로 마무리된다고.(그렇게 되면 최대형량의 차이가 크다..) 줄리아 셰퍼 검사에 의하면 "남성 파트너에 의한 살해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모욕과 수모, 경제적 압박으로 시작해 수년간 이어진 폭력의 결과"라 한다.(page 142) 우리나라에서의 많은 사건들을 보면서도 나 또한 참 진절머리가 났다. 아직 내가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늘 적은 형량. 관심갖지 않는 언론. 피해자에 주목하고(여~, 기사제목도 피해자로 사건명을 정정하는 등) 피해자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등. 여성살해를 가족이나 연인관계에서 벌어진 비극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이를 사적인 문제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나를 제외한 사회가 가해자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독일 여성변호사협회의 레오니슈타인이 말했듯 "대부분의 피해자는 가해자가 결정한 삶에 따라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있으며 이는 젠더에 기반을 둔 불평등의 결과이고 이것이 바로 젠더로 인한 죽음인 페미사이드(femicide)의 정의이다."(page 144)

 

젠더기반폭력에 대해 읽으며 얼마 전 성매매 예방 연수를 진행했던 것이 기억났다. 우리나라 모든 공기관, 학교 등에서는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에 대해 각각 예방 연수를 1시간 이상씩 실시할 의무를 갖고있다. 성매매를 젠더기반폭력이라 정의하고 성평등 관점에 따라 진행하라는 표준 매뉴얼대로 연수를 준비했다. 우리나라는 성매매가 불법이고 교원이 성매매를 할 경우 (구매를 하든 알선을 하든) 이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책을 읽어내리며 작가님이 계신 베를린도 당연히 성매매가 불법일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성매매가 합법이란다. 심지어 그냥 도너츠가게를 여는 것보다 성매매업소를 여는 게 더 쉬울지경이라고.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콘돔착용 의무화 등 안전하게 운영하려 여러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 처럼 보이나, 결국 성매매로 사고 팔리는 성은 여성이 대부분인 것을 우리 모두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사고 팔리는 성이 될 수 있고, 또 그걸 합법화하여 이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국가에 산다는 것은 정말 비참한 일이다.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이에 대한 수요를 인정하고 등가교환이라 생각하는 순간, 여성을 공급하고자 하는 무지막지한 폭력과 시도(인신매매 등) 또한 우리가 용인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작가님이 언급한 것처럼,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성구매가 되려 감소하고 성노동자가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오산이다.

 

마치며 사랑스러운 표지와 손에 부드럽게 닿이는 표지 덕에 더 위로받은 것 같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기도 했다. 지금 이 불편함과 힘듦은 그 다음을 위해서라고 늘 생각한다. 해뜨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우리는 많이 나아졌고 또 나아지고 있다. 좌절하지 말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반성한 지점도 있다. 대한민국에 살며 여기 태어나 쭉 살아온 나이기에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사는 다른 외국인에게 나는 어땠을까. 한창 조선족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 또한 조선족을 무서워했고 또 한편으로는 혐오했던 것 같다. 나도 무지하고 폭력적이였구나. 베를린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지낸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더 깨우친 것 같다. 또 체크한 부분은 새로 알게된 많은 날들. 9/3 양성평등 임금의 날, 9/21 성적결정권을 위한 행동의 날, 11/25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때 활용해야지. 우리 아이들이 내딛을 사회는 더 따뜻하고 안전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당하고 폭력당하지 않는 그 날까지, 더 힘내서 공부하고 소리높여 말해야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떠한 경제적 대가 없이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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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
도모다 아케미 지음, 김경인 옮김 / 마인더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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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매일 새로운 소식을 싣는 뉴스나 신문만 봐도 하루에 한 건 이상 숨쉬듯 폭력관련 사건이 쏟아진다. 최근에는 연예계, 체육계에서 쏟아지는 학교폭력 미투.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동학대 사건들. 불과 몇달 전 밝혀진, 우리 곁을 떠난 정인이의 이야기로 아동학대의 잔혹함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때, 서평단 모집글을 보고 이 책은 꼭 읽고 싶었다. 학대당한 아이들의 피해 및 지원을 넘어서서 가해자인 부모, 어른에 대해 접근하는 것 같아서다.

 예전에 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느꼈던 바인데, 고통받고 피해받은 자는 환자로서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는다. 사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입원한 환자들은 우리랑 다를 바 없다. 다만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고 그 사건 속에 갇혀있는 상태에 대한 관리 및 도움을 받고자 왔을 뿐이다. 이야기해보면 예기치 못한 사건은 폭력이나 배우자의 외도 등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고 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그 '폭력 가해자'에 대한 미움이 나도 함께 자라고는 했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간혹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 중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거나. (사실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소연(예를 들어 부모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등, 나는 이야기할 곳이 없다는 등----아동학대 건을 발견하면 바로 신고한다. 아직 학교에서는 그런 사안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을 듣다보면 심각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되어서 왜 그럴까.'하는 마음이 불쑥 샘솟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 부모도 이상한 굴레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학대에 대해서 어느 한치도 허용할 수 없지만, 그 부모도 이 양육이라는 것, 애정을 있는 그대로 주고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저자도 이러한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충분히 아이보다 지능이나 완력 면에서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 성인이 아이를 학대하는 데 있어서는 뇌나 마음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부모를 향한 시점'으로 폭력(학대)을 풀어나가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미래부모로서 읽어 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평단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측면에서 책 읽은 후의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서평단 초입에 소개되었던 문구처럼 '정인이 사건을 안다면 읽어야할 책'이다. 우리 모두 마음 아파하며 보내줬던 정인이.. 그 이후 다른 아이들이 이렇게 아동학대로 떠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고 비폭력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200쪽 분량으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며 시각자료와 도식화를 많이 활용하여 이해를 도운 친절한 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소아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학대 가해자와 피해자의 뇌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보니 다소 전문적인 의학용어와 뇌의 구조들이 등장하는데, 비의료인들도 읽기 쉽게 도식화를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학대로부터 자유로운 어른이 있을까? 단연코 나는 크게 이렇다 할 학대를 받지 않았고 누군가를 학대하지 않으리라 자부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에서 저자는 학대를 '멀트리트먼트(mal+treatment)'라 표현할 것을 제안하는데 아마 나처럼 대부분은 학대라는 것이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나 그렇지 않기에 용어를 다른 방식으로 또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하던 때, 훈육을 위해서 부모가 일명 '사랑의 매'를 들던 것이 당연하다는 시절을 살아왔기에 멀트리트먼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나도 (처벌로서)맞고 살았다. 그게 당연한 시기라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받았던 마음 한켠의 상처보다도,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사고는 폭력현장을 바라보는 눈을 무디게 한다. 나도 맞고 살았으니, 잘못하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맞고 산 사람은 때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멀트리트먼트는 세대 간 대물림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직 아이가 없는 미혼이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혹은 내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내가 한 순간도 멀트리트먼트를 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뜨끔했다.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혼내거나 뭔가를 해달라고 집요하게 졸라대는 아이를 무시하거나, 아이 앞에서 남편 혹은 아내에게 악쓰고 욕한 적은 없는가?(page26)" 물리적으로 때리지 않았다고 멀트리트먼트가 아닌 것이 아니다. 참치캔을 줬는데도 계속 울어대는 고양이(인간에게만 냐-옹하고 운다고 한다.)의 말을 더 이상 안들어 준 적도 많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동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적도 많다.(아마도 나의 이 마음이 전해졌겠지하는 생각에 반성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행위가 학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page26)"

 우리 모두 멀트리트먼트를 받았을 수 있고, 또 다시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도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무서웠던 멀트리트먼트의 두가지 측면은 먼저, 장기간 지속해서 멀트리트먼트를 당하면 애착 자체가 일그러지고 말아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는 부정적인 자아형성이 이뤄지고 양호한 대인관계를 성인이 되어서도 맺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멀트리트먼트를 당한 사람은 일그러진 애착관계가 표준이 되어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관계를 맺기 쉬운 상대방을 고르게 되는지, 폭력적인 상대에게 끌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어릴 때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 건강한 정신으로 아이를 키우지 못하거나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page 88)" 결국 우리는 우리의 유소년기를 돌아보고 내가 그 과정에서 얻은 트라우마와도 같은 상처는 없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라도-를 떠나 나 자신이 온전히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 트라우마는 들여다보고 치유할 필요가 있다.


 교사로서 보다 민감한 눈과 귀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생각했던 바지만 정말 몸과 마음은 연결되있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같이 병들기 마련. 괜히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몸에 기운이 쭉쭉 빠진다. 아마도 학교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은 나를 찾겠지. 트라우마를 계속 안고 있으면 특히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사춘기에 특징이 나타난다고 한다. 너무 표면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또 두드려야지. 교사로서 명심해야 할 것은 (이미 법제화되어있지만) 아동학대 현장을 목격하면 또는 의심되면 신고해야한다는 점. 그러기 위해서라도 보다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한다. 나도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감으로 아이들이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을 했다.

 사실 교사도 부모도 다 인간이기에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책에서 조언받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는 잠시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아이와의 관계의 미래상을 객관적으로 그려보자. 폭언이나 체벌은(뭐 사실 학교에서 폭언이나 체벌은 없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 표정, 눈빛은 주의하고 싶다.) 공포심을 자극해 아이를 일시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다.(page 102)"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행동이라 함부로 판단하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시선을 멀리하여 잠시 나부터 환기하자.

 사실 심각한 트라우마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안고도 잘 생활하고 살아나가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정신적 회복력', '정신적 탄력성', '리질리언스(resilience)'라고 한단다. (사실 이 개념은 내가 참 좋아하는 '회복탄력성'이라서 참 공감되고 즐거웠다. 같은 개념을 예찬한다는 점에서?) 책에 의하면 회복탄력성은 개인의 특성, 가정의 특성, 사회적 특성에 의해 강화될 수 있다고 한다. 따뜻하고 안심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꾸려가는 부모가 아이와 건강한 애착을 형성해준다면 그 무엇보다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교사는 사회적 자원으로서 안정된 관계, 탄탄한 지원을 제공해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개인적 특성은 지능, 자기긍정감, 유연한 자아, 자제력, 긍정적인 사고방식 등인데 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학급 운영이나 CA, 동아리 활동 하다못해 학생들과 대화함에 있어서도 이를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치유가 무엇보다 우선시되야 하겠지만,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학급활동으로 많이들 하고 있는 '칭찬샤워'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 책에서 한 번 더 마주할 수 있었다. 멀트리트먼트가 대물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칭찬을 받으면 칭찬을 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고 공감을 얻는 경험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상당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생긴다.(page 104)" 교사가 구체적으로 자주 칭찬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으니, 칭찬 아끼지 말자. 더불어 아이들이 직접 서로를 칭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제공하자. 칭찬받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지를 아이들이 스스로 알게되면 각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칭찬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미래 부모로서. 나 또한 그저 아이가 예쁘긴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될 거란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온 적은 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공부하며 나의 유년기를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점들이 있었고 그 이유는 '부모가 주 양육자가 되어주지 않았어서'에 화살을 돌리고는 했었다. 그러니 나는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주양육자가 되어주어야지,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낳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그 생각에 경종을 울린 부분이 있었다. 이른바 '3세아 신화'에 나는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뇌의 발달과 건강한 애착 형성을 위해 유소년기 특정 어른과 안정된 관계를 형성해줄 것이고 그 특정어른은 '부'나 '모' 어느 한쪽이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부모-자녀라는 폐쇄적인 관계만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 직장생활 때문에 3년 동안만이라도 아이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부모 자신은 사회와 관계하고 아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긴다. 다만 아이와 재회했을 때 충분한 스킨십 시간을 갖고 애정을 쏟으면 된다.(page 155)" 믿을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겠지만, 반드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해 주는 것만이 건강한 애착형성의 정답이 아니라는 점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나 먼저 누군가의 믿을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사회에 기여하다보면,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일단 낳고나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에 맞게 뇌의 특정 능력이 신장된다고 한다. 모성이 분만을 겪고나면 산후우울증을 앓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엄마가 된 여성의 뇌는 기억력, 학습능력, 공간지각력, 공포나 스트레스반응을 제어하는 힘이 향상된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아직 결혼도 안한 상태지만 미리 육아에 대한 공포로 질려버린 이들에게 위로와도 같은 상식을 전해줘서 나는 참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여러 사례를 설명해주고 뇌의 구조에 대한 연구(뇌의 특정부위의 크기 변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등)를 제시하고 있어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멀트리트먼트가 무엇인지 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고민해보고, 나는 정말 괜찮은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참 많이 다들 힘들고 지친 시대이다. 알면 대처할 수 있고 또 알면 바로잡을 수 있다. 멀트리트먼트(체벌 및 학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부모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인상깊었던 구절들과 함께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람은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혼자 아이를 키울 수도 없어요. 힘들 때는 의지하면 됩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

"자녀 양육의 길은 끝이 없고 멀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걸어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회를 지탱해갈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인 만큼, 그것만큼 창조적이고 꿈이 넘치는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 자녀 양육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사회와 함께 나눠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떠한 경제적 대가 없이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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