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폭풍 - 1945년 8월 9-16일, 소련의 만주전역 전략 공세
데이비드 M. 글랜츠 지음, 유승현 옮김 / 길찾기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차대전 말 소련군과 일본군이 만주에서 싸운 '만주 전략 공세 작전', 일명 '8월의 폭풍 작전'을 다룬 책.

 

내 블로그의 다른 서평에서 8월의 폭풍 작전에 대해 언급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역자가 댓글로 '8월의 폭풍 작전'은 공식 명칭이 아니라 이 책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댓글로 알려 주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명작 '인간의 조건'은 일본군 병사의 시점에서 만주 전투를 다루었는데, 이 책은 소련의 작전술적 관점에서 만주 전투를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조건'이 많이 생각 났다.

 

냉전시대만 해도 항복직전인 일본을 상대로, 항복 겨우 5일 전에 소련이 기습 공격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숫가락 얹은 전투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일본 항복 직전에 소련이 참전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으로 일본이 항복 했다고 해석 해야하지 않을까?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이 절망적인 싸움을 해도, 만주에는 자칭 100만이라는 무적의 관동군이 건재 했었다. '소련을 통해 미국과 종전 협정을 맺을 수 있는게 아닌가?'하는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관동군은 소련군과 개전 동시에 박살 났고, 소련의 중재라는 희망도 박살 났다. 결국 일본 무조건 항복을 선언의 결정타는 소련군 참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종전되기 5일 전에 소련이 참전했다고 해서 만주 전투가 5일만에 끝난 것은 아니다. 일본의 항복 명령은 관동군으로 8월 16일~17일에나 전달 되었고,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대장이 덴노의 진의를 의심하여 항복이 더욱 늦어 졌다. 결국 8월 20일에나 관동군 차원에서 항복 협정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후에도 관동군의 일부 예하 부대는 항전 하기도 하였고, 소련 25군은 조선을 향해 진격 하여 8월 26일에 평양 입성 하는 등 8월 20일 이후에도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다.

 

그동안 부분적인 지식 밖에 없었던 8월의 폭풍 작전에 대해, 전반적이고 자세하게 진행 사항을 정리 해 놓은 이 책은 나에게는 보물이나 다름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트남 전쟁과 나 - 채명신 회고록
채명신 지음 / 팔복원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제일먼저 든 생각은 왜 이제야 나왔나? 하는 생각이였습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사선을 넘어'라는 저자의 작품이나 채명신 장군의 그동안의 발언에서 언젠가 베트남전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여러번 밝혀 오긴 했지만 과연 나오긴 나오는 것인가. 하고 계속 걱정 반 기대 반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던 것이 결국 나왔군요.

책 내용은 다른 많은 베트남 전쟁책에서 나온 예기가 대부분이라 새로울 만한 요소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이미 채명신 장군이 그동안 강연을 통해 많은 부분을 공개 했죠) 주월사의 최고 사령관이였던 채명신 장군의 입장에서 베트남전쟁을 조망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독자적인 지휘권 확립이나 한국군 수당문제, 주둔지, 대우 문제는 주월사 초대 부사령관 이훈섭장군의 회고록에서 보면 한국의 최상층에서는 "미국이 시키는 데로 해라! 쥐꼬리 만한 수당도 좋고 안줘도 된다. 미국이 지옥에 가서 싸우라면 싸워라" 하는 식으로 나오죠. 그런데 이훈섭 장군은 본국의 훈령을 어기면서 결사적인 교섭으로 지휘권 확립과 수당문제, 주둔지 재배치 문제를 위해 싸우죠.

채명신 장군의 책에서도 이문제가 반복되서 나옵니다. 만약 채명신 장군과 이훈섭 장군 처럼 미국의 조처에 대해, 그리고 한국정부의 지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 한국군의 이익을 위해 결사적으로 싸운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훈섭 장군의 책에 나와 있는 것 처럼 "독자 지휘권이 확립 되지 않는다면 한국군이 용병으로 불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눈쌀 찌프리는건 이책도 예외 없이 위대한 박정희 각하 만세! 를 수없이 외치기는 하지만 그건 현재 출간된 거의 모든 군원로들의 회고록에서 반복되는 말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죠. (박정희에게 죽을뻔 한 이치업 장군과 정승화 장군의 자서전만 빼고)

한겨례 21의 구수정 통신원(채명신 장군의 책 말미에 언급 된 이름의 주인공)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예비역 해병대원은 한번도 포로를 살려 둬 본적이 없고, 한명의 베트콩은 놓쳐도 백명의 양민을 살리라는 말은 들어 본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도 포로를 기지로 끌고가 죽여 버렸고, 그 포로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밥을 전해 주라고 했다가 그 병사의 거짓말을 알아 채고 울부 짖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짜빈동 전투가 벌어져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고 나오죠. 자신의 행위의 인과 응보가 아닐까 자괴감을 느낌니다.

채명신 장군을 포함하여 많은 향군 단체에서는 이러한 양심 고백을 다 거짓말이라고 밀어 붙이지 말고 좀 귀좀 열고 들어 보고,

반대로 공산국가 베트남의 말이면 전부 진실인지 알고 근거도 없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채명신 장군의 책에도 나왔듯이 그들은 베트콩을 양민이라고 선전 합니다.)
연일 신문에다 시리즈로 양민학살 소식을 싫어 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느끼고 베트남전에 대해 공부 좀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용병논란은
향군단체들은 고대나 중세 서양에서는 타국의 왕과 용병 계약을 맺어 국가 단위로 참전하는 경우도 있고 독자 지휘권을 갖은 경우도 있다는 점도 염두해 두고,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용병의 뜻이 뭔지 사전이라도 좀 찾아 보고 그런 소리를 떠들기를 바랍니다.
잘하면 UN군들도 용병이라고 떠들것 같아 용병예기만 하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

결국 상호 이해와 많은 공부가 필요 한 것인데 이책은 한쪽 진영에서의 핵심적인 주장을 순수한 군인의 입장에서 잘 나와 있는 것 같아 베트남전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채명신 장군을 좋아 하는 사람이나, 자칭 진보주의자로서 용병 운운 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라고 생각 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후 2007-08-14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사에는 중립이란 없습니다. 가장 가운데서 평론하는척 하는 것은 결국 기만일 수밖에 없지요. 일단 맞춤법 똑바로 쓰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