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지음 / 석필 / 199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탈리아의 거친 플레이에 말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게 그만 2대 1로 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브라질을 이겨야만 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당시 소크라테스, 지코, 팔카오, 에데르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첫 게임부터 이탈리아 전까지 거듭되는 거친 마크에 페이스를 잃은 마라도나는 브라질과의 대전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브라질은 완벽에 가까운 화려한 플레이로 3대 1로 앞서나갔다. 시간은 흘러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 아르헨티나 공격수가 드리블을 하며 전진하는데 브라질의 바티스타가 뒤에서 교묘하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야비한 반칙이었다. 경기 내내 플레이가 말려 분통을 터뜨리던 마라도나는 그 광경을 보고 감정이 폭팔, 바티스타의 다리에 옆차기를 명중시켰다. 심판은 당연히 마라도나에게 레드 카드를 보여주며 퇴장을 명했고, 마라도나는 타오르는 분노에 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천천히 당당한 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나왔다.

전설적인 '축구 황제' 펠레는 스페인 월드컵 관전기에서 마라도나에게 '고개를 숙일 것'을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마라도나의 처지를 동정헀다. 그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퇴장당하는 순간까지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반항하는 그의 오만함까지도 내 가슴에 남았다.축구공 위의 수학자는 괴짜 수학자인 강석진 교수가 자신의 또다른 전공 분야인 스포츠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하고 감동적인 일화들을 신나게 풀어쓴 책이다. 지난 시절, 승패에 따라 웃고 울었던 주요 경기들의 장면 하나하나를 그는 정확히 떠올려 생생히 묘사해낸다.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경기 뒤의 비화들까지도 찾아내 진정한 승리의 가치를 밝힌다.

그의 비상한 기억력은 가히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한다. 십여 년 전의 경기이건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생중계를 듣는 듯 실감나는 관전평이다. 간결 명쾌한 문장과 구수한 입담의 힘이 읽는 이를 숨 돌릴 틈 없이 글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강석진 교수는 왜 이렇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는 스포츠가 수(數)의 세계만큼이나 아름다움과 매혹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도전정신은 수학에서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다음의 일화를 보자. 예일 대학교 캠퍼스 안의 요크사이드 피자하우스. 밤늦게 생맥주 잔을 기울이던 자리. '왜 이 어려운 수학 공부를 평생의 과제로 삼았을까?' 다들 한순간 우울해졌다. 그때 가장 친한 친구 프레드 워너가 입을 열었다. '어렵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나는 수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거야.'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도전의 어려움은 우리 인생을 그만큼 아름답게 한다.

어렵기 때문에 그 길을 간다, 진정한 도전정신의 의미다. 강석진 교수는 그렇게 수학에 발을 들여놓았듯이 스포츠에서도 그 도전정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핵심이기도 하다. 스포츠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삶의 지혜가 보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사투에서 험난한 삶의 파고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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