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내용을 구성면에서 살펴봤을 때



 목차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크게 5부분으로 구성해놓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중점적으로 살펴볼 대상 5가지로 의뢰인, 변호사, 판사, 법학계, 의료계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

 각각의 내용은 이렇게 큰 틀에서 단순하게 5가지로 분류해놓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각각의 글은 서로간에 연결점이 적은 것이 다수다. 저자의 관심사가 한정되어 있기에, 연결점이 있는 글도 조금 있으나, 바로 이웃해 있지도 않다.


 책 구성에서 얻는 느낌은 전체적으로 시트콤을 연상시킨다.

 즉, 앞뒤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다음 내용에선 다른 주제를 두고 내용이 전개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어떤 흐름이 있거나 연결점을 일부 갖추고 있다.


 흔한 법학자나 전문가들의 책 출간방식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컬럼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여 2배로 돈을 벌면서, 인지도도 올리고 업적도 쌓고,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쓴 글을 일회성으로 사장되지 않게 하는 것 말이다.

 사실상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고 할 수 있고, 제목과 비슷한 말을 가져다 붙일 수 있겠지만 빈약한 포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무거운 의식으로 책을 덮기를 권장한다.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 일부.





① 이 책 곳곳에서는 딱딱한 이미지의 법률가에서는 보기 힘들 것 같은 문학적 수사가 눈에 띈다.


 미국 판결문이나 법률문장의 특징이랄까.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미국 어느 주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한 교수가 영미법개론인가 민사소송법인가, 강의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미국은 연방대법원 판결문조차 주문으로 향하는 논지전개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 필설을 다해 서술한다. 따라서 비교적 틀에 박힌 문체가 아닌, 자유로운 문체를 만나볼 수 있는 데, 이를 읽고 감탄했다.'

 이는 일부 미국 판결문을 읽어보거나, 안경환 교수가 번역한《판사가 나라를...》시리즈 등을 보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② 이 뿐만 아니라, 저자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식을 보여주는 것은 흥미로웠다.


 예컨대, <취미는 약자 괴롭히기>나 <인지오류,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거나> 등에서는 심리학적 개념을 차용해서 논지를 이어나간다. 그 외, <균형은 최적성을 이긴다>에서는 경제학 개념을 차용해서 이야기하며, 일부 내용에 있어서는 철학이나 연극학에 대한 상식을 동원해 서술한다. 

 이는 아마도 해당 학문이 변호사 직무(소송서류 작성, 실제 변론 따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③ 더불어 책 전체를 통해 불문법 국가에 있어 사법시스템과 법의 역동성을 느낄수도 있었다. (예) p.200


 현실 변화에 느린데다, 전문 분야를 다룸에 있어 법률의 발전이 더딘 우리네 법사회현실 속에서, 미국법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한국 법학자들을 떠올리며 살짝 쓴웃음이 나기도 했다.





④ 이 책의 특징 중 서술형식에 관하여 느낀 점 세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특정 사건·이슈·사람을 -아마도 기고할 당시 화제가 되었음직한- 대상으로 하여 Essey 형식으로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비판한다(p.213). - 참고로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부시정권때의 글로 추정된다.

 둘째, 한 주제의 강에서 일반성의 바다로 빠져, 다른 주제의 강으로 건너가 이야기하는 서술법(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원래 주제로 ~ 삼천포로 빠졌다 막판에 가서 허겁지겁 나오듯)을 구사한다. 마치 한솥에 찐 두 마리의 찜닭같이.

 셋째, 개인적 경험이나 체험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는 -위에서 말한- 칼럼모음집이라는 인상의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⑤ 철저한 「Legal Reasoning」에 감탄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논문이나 조사 통계를 인용(p.125, 200 등)하며 근거짓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법학은 -아니, 다수의 학문 분야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근거지움의 학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러한 사고법과 표현법을 전문가답게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⑥ 미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읽으면 좋다.


 이를테면, 하나의 국가에 준하는 '주'들의 연합이 U.S.A.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많다. (예) p.289의 ‘전문가 증인’쉽게 말하자면, 예컨대 환자가 자신을 진료 및 치료한 의사(A)를 상대로 제소한 의료소송에서 전문가 증인으로 사건과는 관련성이 없는 의사(B)를 법정의 증언대에 불러들이는 것이다. 


 넓은 땅덩이에서 자기 지역을 무대로만 영업하면 되기에, 어쩌면 평생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아갈 다른 의사를 상대로 '저격'하거나 이에 도움을 주는 행위로 대가를 받는 것은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이는 변호사도 마찬가지여서, 문제가 된 변호사를 상대로 한 전문소송 변호사, 변호사를 사냥하는 변호사 일명 'Shark lawyer'도 적지 않다고 한다.


 좁은 땅덩이에서 한 두번 정도는 마주칠 확률이 높은, 특히나 '이 좁은 바닥'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한국 전문업계에서는 아직까지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따돌림당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야 불가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정된 수요의 법률시장에 매년 역대급으로 대량방출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득시글할 머지않은 장래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살기 위해 그런 일에 뛰어드는 변호사들은 쉽게 만나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어느 교수와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걸 듣기도 했지만. 그런 것도 한국형 로스쿨 제도의 장점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랄까?


 더불어, 유럽식 진보와 미국 진보는 교집합 영역은 있으나, 서로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많음도 염두해야 할 것이다.

 가령, 문제 인식 면에서 사회 제도로 바로 눈을 돌리는 유럽식 진보주의자들과 달리,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을 반대하는 소극적 사회주의 성향을 많이 나타내는 것이 미국 진보주의자들이다(p. 139. 저자는 본인을 진보주의자로 자칭, 더불어 p.170~171 참고).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 가운데, 유럽은 평등에 방점을 찍는 쪽이고, 미국은 자유를 중시하는 쪽이다. 비중의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⑦ ‘남소의 문제’ 에 관해.


 p.53~54를 보면 사설이 심하다.

 저자는 다분히 남소를 옹호하는 관점을 취하고, 그의 의견을 경청하면 분명 설득력이 있다. - 특히 의료소송(과실상해 소송 가운데), 교통사고 과실, 제조물 책임 관련, 기업상대 소송에서의 공익적 측면을 일례로 든다.

 사회적 비용증가 라는 문제 vs. 소송을 통한 개인권익 보호 중 후자, 즉 변호사업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미국 법조계에서 남소의 그늘의 문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의 막대한 수임료 챙기기' 문제는 간단히 언급하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만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변호사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다양한 영업책을 운용하고 있다.

 예컨대, 승소가능성을 판단하여 변호사가 직접 비용을 들이고 의뢰인에게는 소송비용을 부담시키지 않되, 승소시 배상 및 보상금의 90%는 변호사 자신이 취득한다던지 하는 행태를 들 수 있다. 과도한 수임료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철저히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주에 따라서는 이런 것도 허용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피해당사자인 의뢰인은 이득이 거의 없고, 변호사만 이득을 취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기업이나 문제원인제공자들이 더욱 몸을 사리게 되며 사회전체적으로 안전해지고 투명해지며 그런 쪽의 비용이 절감되는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소송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의료분야로, 잘 알려진대로 어마어마한 진료 및 치료비, 그리고 의료보험료의 한 원인이다. 그 외에 유머게시판에서 종종보는, 제품 광고와 사용설명서에 나온 기괴한 주의문구 등을 삽입한 것도 다 이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소를 제기한 원고가 전적으로 취하지 않고 일정부분 연방이나 주정부, 혹은 변호사 비용으로 이전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상액을 노리는 변호사들도 종종 있다.

 물론, 해괴한 소송을 거르는 장치가 배심원단과 판사의 합리적 판단 안에 마련되어 있지만, 이 그물망이 촘촘하지 않아 종종 이에 관한 해외토픽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요는, 저자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보완책이나 대안까지 생각해 충분히 언급한다면 제대로 설득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적으로 통찰력있고 매우 날카로운 모습을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저자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남소현상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저자의 언급 도중에, 승소시 이익 획득을 목적으로 변호사들이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 및 연구하고 파고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능한 모든 방안을 고려하는 모습(관련 단체에 기부하며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서라도)에서, 성고문을 당한 권인숙씨(현 교수)의 변호를 도운 故 조영래 변호사가 떠올랐다. 다른 측면이지만 그 역시 승소를 위해 언론을 잘 활용하는 등, 변호사로서 기술적으로 노련하며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⑧ 번역에 있어 소소한 오류


 예컨대, 민사사건의 '피고'를 '피고인'이라고 쓴 것(p.197, 첫 기술에서는 틀렸으나 그 아래에서는 제대로 표기). 반대로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피고'라 쓴 것(p. 173)이다.

 변호사의 감수를 거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⑨ 판사들의 어리석은 행동 백태를 언급한 부분에 이르러.


 지하철 성추행으로 여론의 뭇매와 사법부의 눈 밖에 벗어나 승진 또는 재임용심사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 법조계의 '좁은 바닥'에서의 평판 등을 계산해 사직한 국내의 황모 판사(서울중앙지법)나, "자신이 재판장을 맡고 있는 법정관리 기업체에 친형을 법정관리 기업체에 감사로 임명"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철저한 감시와 견제, 문책요구로 중징계를 당한 선모 부장판사(광주지법)가 연상되었다. - 또한 피의자와 검찰청내에서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전모 수습검사(서울 동부지검)도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고압적 태도로 법정에 온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훈계하거나 막말한 저급 인성의 판사들도 상기하게 되었다.


 " ...판사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장난을 단순히 그들의 '어리석음'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술을 권하거나 법정에서 골동품을 판매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정말 우둔한 것 아닌가? 합리적인 법률전문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별없고 얼빠진 행동으로 자신의 존엄성, 자존감, 경력을 송두리째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걸까?... "


 처벌수위가 낮고, 판사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풍족하게 먹고 살수 있어서 그런지 주인인 '국민'과 수평적 관계인 법률업종사자들의 머리 위에서 경거망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문제 판사들에 대하여, -일반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적절한 견제 및 문책 시스템이 필요성을 절감했다(교육만으로는 부족). 

 물론 이 경우에도 ‘사법권의 독립’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범위에까지 자의적, 공격적으로 침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 판사들을 걸러내는 장치가 되어야지,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 등이 다른 판사 길들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⑩ 이 책을 읽다 감탄한 부분 중 한가지만 언급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치료 윤리에 관한 부분이다(p.277)


 "... 보건 분야는 현재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의료 윤리는 바뀌고 있는 환경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수익 마진이나 잠재적 이해 충돌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의료 문제를 다루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들(그리고 병원들)은 이타적인 치유자, 환자의 행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가상의 인물상에 빠져 돈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무감각해질 수 있다. ..."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대로, 의사들이나 법조인들이나 좀 솔직하라고 말하고 싶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카페 <책좋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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