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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인가? 정부인가?
김승욱 외 지음 / 부키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우선, <시장이냐 정부냐>하는 ‘명쾌한 분석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슈마다 각종 전문용어와 통계수치, 정치적 수사가 홍수처럼 넘실대는 요즘, 독자들은 이런 복잡한 사실관계를 넘어서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해줄 ‘종합적 안목’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 지적 호기심이 충분히 충족될만큼 포괄적으로 다양한 이슈를 다루되 시장중시자와 정부기능중시자의 두 가지 잣대만으로 요약하는 방식은 독자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장-정부의 대립각은 20세기 역사를 지배해온 가장 현실적이고 유서깊은 구도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책의 이분법적인 명료한 구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우파와 케인지안 이후 정부 개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좌파의 견해를 이슈에 따라 대조적으로 설명한다. 독자들이 두 논리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고 다른 입장의 근거를 검토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여기서 생긴다.
주택문제를 다룬 16장을 예로 들면, 고급 아파트 가격 상승이 서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가 바람직한 것인지를 시장기능 중시자와 정부기능 중시자 각각의 의견을 비교하며 자신의 의견을 쉽게 정리해볼 수 있다. 두 시각의 한계와 장점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생활필수품이자 고가품인 주택의 정체성과, 소유권과 사용권이 분리된 채 꾸러미로 거래되는 주택의 특징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두 관점을 중립적으로 서술하면서도 각 장마다 한국경제의 사안들이 종합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7장을 예로 들면, 한국의 노후대책에 관한 두 관점의 강점과 약점을 두루 살핀 후, 두 주장의 상호견제 속에서 노인복지에 관한 인식전환와 노인복지의 공적영역 확대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특히, 10장의 경우 그 간 방대한 양의 연구자료가 쏟아져나왔던 ‘한국 경제 위기의 원인과 외화위기 이후 한국의 구조조정’에 관한 내용이 단 몇 장 정도로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경제 뿐 아니라 이웃국가들의 상황도 간단히 정리하는데도 유용하다. 11장 금융시장 편에서는 시장의존형 모델을 가진 ‘대만’과 정부개입형 모델의 ‘한국’을 비교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정치적인 외압이 적고,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부문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었던 반면 빨리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경공업분야는 발전했지만 그렇지 않은 제철,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장치산업은 성장하지 못했다. 한국은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후장대형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반면 이자율의 자원 배분기능이 포기된 탓에 자본의 낭비가 많았다. 두 쪽 모델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이다. 12장 노사관계 편도 독일, 스웨덴, 미국, 한국, 일본의 상이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들의 혈액형이 A, B, O, AB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각 국가들도 사회, 정치, 역사적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음을 간략하게 나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요약적으로 서술된 것의 한계도 분명하긴 하다.
반면, 중립적 기술은 교과서처럼 지루하게 읽힌다는 취약점이 있다. (읽다가 여러번 졸음이 쏟아졌다.) 특히 전달할만한 충실한 콘텐츠 없이 무개입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에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할 만한 새로운 이론이나 용어의 소개가 매우 적다. 나의 경우, 8장의 ‘내부시차’,‘외부시차’,‘프리드먼의 K퍼센트 준칙’,‘정치경제주기’등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2부에서 “인상적인 정보”를 접한 기억이 없다. 나 이외에도 다수의 네티즌들이 <야심찬 기획, 부족한 구성>이라고 지적한 것이 그 점이다. 간단한 요약을 위한 첫째, 둘째, 셋째, 넷째의 행진속에 독자가 조우하고 싶은 새로운 이론이나 사례는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쉽사리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의 기초이론을 개괄적으로 서술한 1부는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어떨까. 1부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개별이슈를 다룬 2부에서 1부를 녹여서 서술하는 방법도 있다.
2부의 경우도 구체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빈약한 면이 있다. <노사관계 -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가?>를 다룬 12장의 경우, 요약이 잘 되어 있기는 하나 비정치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미국식 노사관계과 공동결정제도로 대표되는 정부-노동자 개입적인 유럽식 노사관계의 특징이 지나치게 개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사안의 경우 각 국가의 상황을 두루 살피되 두 가지 입장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기 보다 국내외 다양한 케이스를 소개하거나 심도있고 풍성한 토론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쉽게 전달하는 편이 효용성을 높였을 것이다. 내용이 빈약하니 독자의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사안의 구체적 파악을 위해서 보충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는 2부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안을 다루려는 과욕에서 비롯된 문제인 같다. 2부의 이슈 개수를 줄이고 내실을 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이분법적 구성이 현실감을 떨어뜨리고 있는 점이다. 사실 올해의 이슈만 해도 분배냐 성장이냐(양극화), 개방주의냐 보호주의냐 (한미FTA), 주주이익의 실현이냐 투기적 먹튀자본이냐 (론스타를 비롯한 해외자본 규제문제), 정상적인 거품이냐 비정상적 이상신호냐 (주택가격 폭등)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OX식 사고로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31가지 품목수처럼 다양한 다층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현실경제의 이슈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서,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가진 의견들을 분절적인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지은 것이 본질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 대 정부 구도는 일정한 효용이 있다. 다만, 이러한 단순화된 대조를 “보완하고 완충시켜줄” 참신한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의 고갱이다.
저자들도 “대칭적으로” 서술된 방식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다만, 각 장마다의 결론이 두 접근방식의 협력과 조화라는 식으로 뭉뚱그려져 있고 분량도 지나치게 짧기 때문에 결론의 신뢰감이 적어지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두 관점이 상호견제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9장 <경제성장-정부가 주도해야만 하나?>나 15장 <농업-포기할 것인가, 보호할 것인가?>의 경우 “양자택일적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저자들은 9장에서 정부주도형과 시장중시형을 단순비교하기보다는 시기적, 단계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각각의 경제성장모델을 택한 국가들의 시기적, 단계적 사례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아, 결론이 설득적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당위론에 머무는것처럼 느껴졌다. 15장의 결론도 마찬가지다. <농업문제 해법 :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에서는 농업문제를 섣불리 생산자농민 대 소비자국민, 제조업 대 농업 등 적대적 대칭관계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대립 속의 조정이라는 협력적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층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농업문제에 대한 해법이 1-2쪽 정도로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요약되면서 독자들은 ‘적대적 대칭관계’를 넘어설 해법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조선일보 북리뷰>의 지적처럼, 현실경제에서 두 관점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다. 선진국들도 두 가지 관점사이를 왔다갔다할뿐이지 어느 한쪽 논리에 묶여있지 않다. <시장 대 정부의 대립 구도>로 일관한 논리 구성은 암기해서 객관식 시험을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복잡하기 그지없는 경제문제에 대한 나름의 판단력을 키우기에는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대립구도>를 보완해 줄 수 있도록 각 장의 결론 부문을 보완하고 강화시키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세계일보>,<파이낸셜 리뷰> 등 미디어들은 이 책이 중립적인 시각에서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전달했다고 좋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이 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이 책은 편파적인 견해를 견지하면서 쉽게 쓰여졌다. 정파적 이해에 따른 편파적 왜곡 보도가 많은 우리사회에서 중립적으로 서술된 책은 고유의 강점이 있다. 하지만 ‘중립적 관점’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충실성’이다. 다수의 독자들이 이 책에 기대했던 것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포장지로 싸인 탄탄한 콘텐츠이지, 딱딱한 그릇에 담긴 진부한 내용의 요약정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은 가장 아쉬운 사항이다.
창의성과 충실성의 부족은 무엇때문일까? 저자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는 아닌 것 같다. 경제학이라는 이론적 배경 자체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
경제학의 논리는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로 상징되는 두가지 입장을 상충적으로만 접근하는데에만 익숙하다. 하지만 현실경제는 시장논리와 정부개입이 화학적 배합으로 섞여있지 어느 한 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의 학문적 논의에서는 두 가지 상호배타적인 잣대로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현실경제 진단을 보완해줄 만한 이론적 틀이나 개념, 용어가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정치경제학>, <사회경제학> 등의 교차연구가 걸음마 단계인 것에서 기인한다. 교차연구가 활발해질수록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적 도구들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경제학적인 시장-정부의 대립각을 넘어서서 고민할 때, 이 책도 <현실적인 OR>과 함께 <대안적인 ABOUT>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했던 것도 그것일 것이다. 한쪽 관점만 고집해 거듭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 수 있도록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일 말이다. 책의 표지에는 <OR>이 크게 디자인 되어 있다. 시장 또는 정부 중에 우리 경제를 어디에 맡겨야 할 것인지를 모색하고 있는 책의 주제를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이냐, 보이는 손이냐를 넘어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아울러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OR>뿐 아니라 <AND>의 관점도 필요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책은 시장우위와 정부개입의 관점에서 다양한 경제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기초지식을 종합하는데에는 성공적이나, 경제에 이미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줄만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컨텐츠의 양과 질은 부족한 책이다. 그리고 참신성의 부족은 경제학적 배경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국가경제라는 큰 시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양 방향의 톱니바퀴가 적당히 필요하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시장, 왼쪽으로 돌아가는 정부를 각각 서술하기 보다 이 둘이 아귀를 맞추어 돌아가는 역동성에 좀더 집중했다면 더욱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