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근대세계 - 개정판
A.N.화이트헤드 지음, 오영환 옮김 / 서광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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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상의 도래는 기존의 방식을 극복한 창조적인 사유체계가 제시됨으로써 생겨나지만, 기존의 사유체계를 총체적으로 개정해야만 한다는 광범위한 동의는 오랜 실험기간을 요구한다. 천재가 자신의 시대를 외롭게 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알프레드 N. 화이트헤드(1861~1947) 역시 자기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탁월함은 수학, 논리학, 물리학, 과학철학 등에 집중했던 생애 전반부에 이미 입증되었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생애 후반부에 전개한 형이상학과 철학적 우주론으로 근대정신을 전면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데에 있다. 그가 주장했던 유기체 철학의 관계론적 사유체계가 소개된 지 벌써 한 세기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전 학문분야에 걸쳐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어가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근대정신의 비극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인류문명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정신세계의 지평을 가장 섬세하고도 드넓게 제시한 사상가였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이 1970년대 이후 “탈근대(postmodern)”라는 이름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동안 탈근대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한 해체주의에 기초한 상대주의적 미시담론은 탈근대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첨근대적(mostmodern)”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철학조류는 서구 근대사상사에서 발생한 가장 큰 비극인 역사와 우주에 대한 전체적 비전을 상실한 “지식의 파편화”의 문제와 대결하지 않고, 도리어 그 문제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빚어낸 ‘물질과 가치의 분리,’ ‘과학과 종교의 갈등,’ 이로 인한 “유기체를 전체상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습관”을 상실해버린 사상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탈근대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포괄적인 지평에서 제시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30년 동안 수학자와 과학철학자로 보낸 옥스퍼드와 런던대학의 삶을 정리하고, 63세에 하버드의 철학교수가 되어 전개한 후반부의 연구는 바로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바쳐졌다. 근대의 기계론(mechanism)에서 탈근대의 유기체론(organism)으로 이행을 가능케 할 형이상학과 우주론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구상은 [과정과 실재, 1929]라는 거대한 저작을 통해서 완성되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책의 기본내용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과학과 근대세계, 1925]이다.

[과학과 근대세계]는 1924년 하버드대학에 도착하여 처음 연 “로웰 강연”에서 사용했던 8편의 강의록과 따로 집필된 논문 4편이 첨가되어 구성된 책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지닌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유기체적 형이상학의 길을 모색한다. 화이트헤드에게 형이상학이란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에 반드시 적합한 일반적 관념들을 발견하려는 과학”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근대정신이 깊어갈수록 더욱 크게 노정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과 ‘전문과학적 지식의 파편화’의 문제를 가장 근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획이다.

[과학과 근대세계] 초반부에서,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정초시킨 17세기 천재들에 의해서 “야만시대의 히스테리가 남긴 오점이 일소”되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세계관의 특징을 “소박한 신앙에 기반을 둔 반합리주의 운동”으로 규정한다. 데카르트의 실체철학과 뉴턴의 기계론적 물리학에 기초를 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주의의 이상인 “논리적 완벽성”과 “이론적 정합성”을 세우는 작업에서 실패했다는 진단이다. 그 이유는 근대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관념이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유기체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우주의 실제성에 주목하지 않고, 죽은 물질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단순 정위”(simple location)되어 외적 충돌이란 방식으로 운동한다고 전제하는 추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지니고 있는 근본문제 즉, 사물 자체에 담긴 가치와 사물 간에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무시한 “편협한 형이상학과 명석한 논리적 지성이 낳은 괴물”을 퇴치하고자 했다. 그는 이 작업의 가능성을 “(추상적인) 원리에로 환원시킬 수 없고 굽힐 수도 없는 엄연한 사실들,” 다시 말해 환경과 유기체적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움”(novelty)을 탄생시키는 살아있는 우주 안의 생명적 요소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작업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19세기에 발생한 “낭만주의적 반동”부터 20세기 초반에 대두된 “상대성원리”와 “양자론”에 담긴 철학적 함의를 밝힘으로써 해결해 간다.

그의 철학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사라진 “신”을 형이상학에서 복권시킨 점이다. ‘신의 합리성’이란 전제로부터 세계의 모든 운동법칙을 연역해냈던 중세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인과율에 착안한 근대과학에서 사라진 후, 신은 더 이상 근대사상의 중심담론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근대정신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심화시켜갔고, 이 사상적 대치 속에서 종교는 “안락한 생활을 장식하는 점잖은 형식 신앙으로 타락”하고, 과학적 지식은 “문명과 안전을 혼동”하며 사회적 진보를 가능케 할 모험의 비전을 잃어갔다. 화이트헤드는 신을 “구체화의 원리” 또는 “제한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철학적 세계관 속으로 복권시켜, 우주가 창조적인 전진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설명한다.

이로써 화이트헤드는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의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과 우주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이 포괄적인 철학적 토대 위에서, 무신론적 유물론에 기초한 근대정신이 일그러뜨린 과학과 미학, 윤리학과 신학에서 새로운 길을 마련하고자 한다. “생존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하여 인류역사를 질곡으로 빠뜨린 근대후기문명, 그 문명의식을 채우고 있는 “힘의 복음”과 “획일성의 복음”에 저항할 수 있는 포괄적인 비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다시 말해, 문명의 궁극적 이상인 “평화”를 향한 모험을 가능케 할 사상적 토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과학과 근대세계]는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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