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미카미 오사무 그림 / 도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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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지구의 건강에 긴급 사태가 생기면 달려가 처리하는 식물계의 적십자다.

다행히 지구가 위급한 상황을 넘기면 잡초는

성장 속도는 자기보다 느리지만 보다 크고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 알프레드 크로스비

 

잡초는 가이아의 백혈구이자 부스럼 딱지이고 반창고이자 항생 물질이다.

- 짐 놀먼

 

인간이 상처를 내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이 잡초다.

살아 있는 지구는 잡초에 의해 아름다워지고, 인류에 의해 황폐해지고 있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잡초다.

작물에 사로잡혀, 혹은 인간 중심주의에 빠져 인간은 잡초의 이런 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 옮긴이 '최성현'의 글에서 발췌

 

 

 

입춘이다.

이제 곧 굳게 닫혔던 땅이 열리고 나뭇가지가 눈을 틔우면서 기특한 연둣빛이 세상을 물들이리라.

혹한을 견디느라 웅크리고 있던 식물들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오면 또 한번 우리는 기쁨과 함께

다시 피어나지 못할 우리의 지난 봄들을 아쉬워하리라.

 

나는 동물의 고통보다는 식물의 고통에 더 쉬이 마음 주는 심장을 가졌다.

길고양이의 로드킬보다도 가로수의 무참히 잘린 어깨에 더 분노하는 심장이다.

식물성이다, 라는 생각에는 동물성이다, 라는 생각과는 대조되는 각별한 편견이 있다.

수동적이고 순응적이고 내성적이고 온순하고 정적이고 신뢰할 만하고 연약하고 정직하고 단순하고 기타 등등.

그래서 식물을 사랑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경계를 풀었다.

 

만약 나와 같은 이가 또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아뿔싸, 하고 이마를 칠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동안 완벽하게 속아왔다. 아니 우리의 무지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 나온 50가지 식물(흔히 잡초라 불리는)들의 속사정을 낱낱이 들여다 보며 그러나

이런 고약한 것들, 괘씸한 것들, 앙큼하게도 나를 속여 왔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던 존재가 나름의 방어전략과 공격적인 전술을 갖추고

제 앞가림을 충분히 하며 거친 땅에 적응하고 진화해가며 살고 있다는 데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풀들의 생존전략이 얼마나 영리하고 과학적이고 기발한지 헛웃음을 자주 날리게 될 것이다.

 

일본인이 저자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들을 다루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세밀화 형식의 그림으로 각 풀들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글을 읽으며 전혀 어색함이 없다.

같은 동아시아 권이라 식생이 비슷하고 어린 시절의 경험(몇몇 풀을 가지고 놀던)도 닮아 있는 탓이리라.

 

또한 거기에 더해 번역하신 '최성현' 선생의 공도 있을 것이다.

잊고 있었는데 이 양반,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쓴 분이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이리저리 펼쳐 보다가 싱싱한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다.

소나기 내리던 어느 해 초여름 풍경이 불쑥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창밖 숲은 아직 하얗고 앙상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봄이고,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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