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기사가 다녀온 나르시시즘의 도시들
오영욱 글.그림 / 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그의 책을 샀다.

그는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혹은 누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는데 ...

 

 

 

 

 

나는 오기사한테 미안해서 책을 샀다.

2005년에 나온 첫 번째 책도 사고 2006년의 두 번째 책도 샀는데 2008년에 나온 책은 사지 않았다.

잠시 그에게 무심했다. 인정한다.

 

그의 처녀작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는 당시에 정말 참신한 여행기였다.

15개월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그린 수평과 수직의 선들이 왜곡된 독특한 그만의 그림체와

대체적으로 간결하고 짤막한 그러나 재치있고 정곡만을 찌르는 글들로 이루어진 내용은

아마 모르긴 해도 그때까지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던 나는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공부하던 시기를 그린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가 나왔을 때 환호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르셀로나가 그의 펜 끝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무척 궁금했고 기대했고

삼청동 초입의 어느 북까페에서 열린 아담한 출판기념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20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남동생 같았는데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마 지금 마주친다 해도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를 보는 내 시선은 누나에서 이모 정도로 진화했달까.

자동차에 달린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는 것처럼 가끔은 그가 실제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얼마 전,

오기사가 다녀온 세 가지 테마의 도시들 (욕망-라스베이거스, 일탈-인도의 찬디가르, 위안-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을 다룬

이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새롭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다른 보다 진지한 책이 될 거라고 걱정(?)을 했는데, 반대로 나는 보다 진지한 그의 책을 기다렸었다.

언젠가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한 그의 장문에서 블로그나 여행기를 통해 봐 왔던 단문과는 다른 색깔의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한테 미안해..>는 그의 말대로 한없이 진지하고 글자로 빽빽한 책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대처럼 빽빽한 책은 아니었다. 이제 막 건물들이 들어서는 신도시처럼.

하지만 역시!

그다운 위트와 얄미운 깍쟁이 같은 문장은 여전히 나를 웃게 만들었다.

꿈에도 관심있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먼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하나의 도시를 이런 식으로 해체해서 보는 방법도 있구나, 건축가다운 시각도 보았다.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키는 그림은 현저히 줄어든 대신 그 자리를 그가 직접 찍어 온 사진들로 채웠다.

그런데 사진들의 인쇄 상태는 도시의 매력이나 오기사의 시각을 돋보이게 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라스베이거스와 찬디가르를 다룬 부분까지는 그 주제에 맞게

생활의 무게에 눌려 있던 내 안의 오래된 일탈 욕망을 자극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줘서

오랜만에 심장이 콩당콩당, 추억 속의 도시를 그리게 하고 꿈을 갖게 했다.

하지만 위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룬 마지막 장은 붙박이처럼 묶여 있는 나를 위로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다른 책의 인용보다는 오기사만의 색깔이 도드라졌어야 했다. 아쉽다.

 

 

 

 

 

그의 첫 번째 책에서 가끔씩 등장하던 오기사 그리고 오기사.

 



 

두 번째 책에서 일관성 있게 혼자 등장하던 오기사.

 


 

 

그리고 네 번째 책 찬디가르 장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던 오기사 그리고 오기사.

 

 

헬멧을 쓴, 머리 크고 다리 짧은 오기사 캐릭터는 오래전부터 '오기사'라는 별명과 함께 유명한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가 그린 그림이 도심 까페의 벽, 어느 센스 있는 백화점의 여자 화장실, 젊은 감각으로 개업하는 캐주얼 음식점의 면면을 장식할 만큼

사랑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 헬멧 쓴 오기사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나고

서슴없이 예쁜 여자를 밝히며

일기를 쓰듯 그림으로

하이쿠 같은 단문으로

스스로를 유창하게 표현한다.

 

 

그렇담 맨머리의 ㄹㄹㄹ레알 real 오기사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나한테 미안해서...> 를 읽다가 문득

초기 여행기에서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오기사는

어느 새 헬멧 쓴 오기사와 자리가 역전된 거 아닌가, 싶은

수박 겉핥기 식이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인 생각이 스쳤다.

 

이번 책은 그런 의미에서 서른 중반을 넘어선 건축가 오영욱의 변신의 욕구를 매우 조심스럽게 드러낸 것이라고

내친 김에 또 내 멋대로 짐작해 버린다.

 

완전한 변신과 기존 이미지 사이의 과도기적 방황이랄까?

사실 그건 변신이라기 보다는 건축가 오영욱의 본질이고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이지만 말이다.

 

하여 책을 쓰는 고충을 전혀 알 리 없는 나는 그에게 겁없이 무식하게 외친다~

 

오기사여,

그대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면 '무겁고 진지하게 끝까지' 해 부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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