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연극 을유세계문학전집 130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지음, 홍재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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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에서 1912년까지 살다 간 스트린드베리는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의 작가라고 한다. 여태 이름만 가끔 들어본 정도였는데 이번에 책을 읽어 보니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예술가, 학자였다. 입센과 함께 북유럽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스웨덴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기도 할 정도로 천재 극작가라는데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아쉽다.

이 책의 제목은 <꿈의 연극> 이다.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작품이라고 하는 같은 제목의 희곡이 뒤쪽에 실려 있고, 그 외에 '미스 줄리'라는 3인극도 앞에 담았다.

처음에는 서문에서 작가가 연극에 대해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정의내리는 과정이 길고도 길게 이어져 좀 지루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분도 어지간히 까다로운 분인가 보네'
그런데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서문이 지나고 '미스 줄리'를 읽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번역도 매끄럽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심리 묘사가 세밀해서 주의를 계속 끄는 매력이 있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고, 귀족과 하인이라는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기에 변호사 약혼자와 결혼의 약속을 깨고 자기 집 하인 장과 썸을 타는 귀족 아가씨 줄리, 그리고 하인 장의
약혼녀이면서 신실한 신자인 요리사 크리스틴이 주 등장인물이다. 그중에서도 장과 줄리의 심리전은 불꽃을 튀며 전개된다. 사랑에서는 많이 사랑한 자가 약자고, 계급에서는 귀족이 하인보다 강자다.
그런데 남녀 간의 문제로 보면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유리하니 이들의 역학 관계는 엎치락 뒤치락 종잡을 수 없이 바뀐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한동안 믿지 못했다. 워낙 은유적으로 표현을 해서, 내가 느낀 게 맞는지, 혹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미스 줄리'는 '꿈의 연극'에 비하면 아주 애교스러운 작품이었다. ㅎㅎㅎ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희곡이다. 기승전결, 인과관계가 명확한 희곡은 읽기에도 편하고 즐거운 면도 있지만 무대화한 것을 만났을 때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매우 실망한다. 희곡 자체가 다 보여줘버렸기에 나의 그리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주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주 아주 김 새는 일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 '꿈의 연극'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하다. 그러다가 중간에 문득, 내가 너무 심각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문장을 따라가느라 급급하다는 깨달음이 왔다.

'어쩌면 이거 코미디일지도 몰라. 이렇게 엄금진하게만 접근할 일이 아니야.'

한참을 그렇게 헤매고 나니 아, 이것은 풍자구나. 이 대목에선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새로운 발견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꿈의 연극'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 인드라 신의 딸이 인간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상에 내려와 인간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보다 죽음을 통해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맥락을 알 수 없게 끼어드는 새 인물들도 있고, 앎의 깊이가 얕은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헛소리, 꿈꾸는 소리 같은 장면도 있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작가의 심중을 알아챌 만한 단서가 될 어떤 것을 발견하면 아주 헛된 방황은 아니었구나 배시시 웃고. 이상하게 재미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명료하게 요약할 수 있는 것 이상의상징과 철학이 깔려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인드라의 딸이 지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인간의 고통과 갈등과 슬픔을 차근 차근 알아가는 여정은 중간 중간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의 형식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그들과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깝게는 스크루지 영감을, 멀게는 파우스트의 여행을. 크크크.

한 번 쓰윽 읽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는 못하겠고, 스트린드베리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나면 훨씬 손에 잡히는 것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다 알지 못하고 봐도 꽤나 재밌다는 것! 왜 이 희곡을 내로라하는 연출가들이 무대에 실현시켜보고 싶어하는지 알겠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배경이 바뀌는 것도 무대 미술 면에서 도전이 되기도 하겠고. 창작자의 상상과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많으니 자유롭게 거침없이 풀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달려들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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