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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ㅣ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평점 :
지혜의 시대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하나.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입증할 대법원 문서파일이 공개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벌인 로비의 대상엔 언론 인사가 포함되었으며 특히 찬성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특정 언론과 결탁하려 했던 정황마저 포착됐다. 이와 관련해 언론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나섰다.
둘. 며칠 전 모 언론사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여 특정 혐오를 부추긴 세력으로 한 극우 기독교 세력을 지목했다. 이를테면 제주를 통해 입국한 예맨 난민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해외 성폭력 사건의 90퍼센트 이상이 이슬람 난민에 의해 발생했다는 보도로 공포와 혐오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해당 기독교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한 언론사에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요지는 미디어가 지닌 권력이다. 정치권력을 위시한 공권력과는 다른, 미시적인 차원의 권력은 오늘날 미디어를 중심으로 발동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식 정보=권력의 등식을 증명하는 언론이 존재한다.
“…언론인들이 어떤 사실을 포착하고 뽑아내서 ‘뉴스’라는
지위를 부여해 보도하는 행위 그 자체에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39p)
마이크의 힘, 언론의 힘, 미디어의 힘은
정치 및 경제 외에도 책에서 예시로 든 스타들의 공항패션처럼 일상에 밀접한 앎에서 또한 발휘되므로 보다 섬세한 권력의 그물을 형성한다.
CBS 라디오에서 <뉴스쇼>를
진행하는 김현정 피디는 누구보다 이를 알고 있다. 2005년에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기 시작하여 2008년 만들어진 <뉴스쇼>를
담당하게 되면서 뉴스의 중요성과 언론인의 책임, 미디어의 역할을 천착해왔다.
1) 진실을 호도하지 않고, 가장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사건의 당사자부터 찾는다.
2) 변죽을 울리지 말고 사안 및 문제에 날카롭고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3) 선입견이나 편견이 포함되지 않은, 가급적 ‘날것’ 그대로의 뉴스를 제공한다.
4) 마이크와 카메라가 담지 않아 배제된 타자 및 소수자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소신, 프로그램의 선한 영향력, CBS와
세상의 원활한 소통은 ‘한국피디대상’이라는 성취와 ‘뉴스를 만들어내는 뉴스 프로그램’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일구었다.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라는 책의 제목이 일견 도전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결국 수긍을 자아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애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CBS의 기사를 찾아 읽고 방송을 듣는
사람으로서 문장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인다. 만일 프로그램이 이른바 ‘클릭 장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거나, 알려져야 할 이슈의 공론화에 지레 겁을 먹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단순한
‘사실’ 전달에 그치는 ‘프레임’을 고수함으로써 종합적인 ‘진실’을
호도하는 매체에 그쳤다면 본 책은 자체로 기만이었을 거다. 김현정 피디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범위를 넘어선
권력을 행사했다면, 그러니까 뉴스 전달 및 인터뷰어의 역할을 넘어 마치 사회 전반에 관한 전문가인 양
처신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감히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및 언론인의 자질을 운운하는 것에서 기가 찼을 거다.
이 책은 김현정 피디가 강연에서 들려주었던 말을 활자로 옮긴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여 책의 후반부에는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김현정 피디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뉴미디어 관련 대목이 눈길을 끈다. 전통적 미디어인 라디오가 계속해서 생존하고 나아가 발전할 여지는 새로운 기술과의 공존에서 그 가능성을 보인다. 즉 청취자들의 실시간 반응 및 의견이라든지 인터뷰 내용의 2, 3차
가공(즉 원 소스 멀티 유즈) 등으로 보여지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결합이다. 다만 우려해야 할 것은 오늘날 인터넷 환경이 지닌 양면성이다. 방대한 정보와 견해를 집중시키는 동시에 분산시키는 인터넷은 정보와 견해가 낳는 권력의 집중 및 분산 또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청취자들의 피드백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특정 정치 사안의 경우 획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곧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자본주의적 분열증에
다를 바 없는 이중성이다.
교과서 같은 이야기이지만 권력의 분모 중 다수를 차지하는, 자본과 결탁한
언론의 위험은 여전히 대두되고 있다. 경계. 그럼에도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은 언론을 위시한 미디어에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작동할 것이라 염려한다. 김현정
피디가 언론 부패와, 이미 여러 차례 깨어진 신뢰를 지적하고 언론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염원을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세대교체도 세대교체이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본 적 없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앵커가 되어서도 김현정 피디가 자리를 지켜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