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나는 정치인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어차피 정치인의 놀라운 업적을,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홍보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어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금실 변호사의 <지구를 위한 변론>은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던 게 첫 번째 이유라면 현재진행형인 기후 위기에 대해 어떤 대안을 말할지 궁금했다.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어떤 연유로 이 책을 썼는지 알고 싶었다.
저자는 ‘토머스 베리’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지구법학’을 이야기한다. 지구법학은 “대안적 세계관과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을 핵심에 둔 인간법학과 반대된다. 인간은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기에 지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인터넷에서 기후 위기를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강조해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어떤 이유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가지만, 결국 ‘나의 일’이어야만 문제를 진지하게 보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저자가 말하는 지구법학 또한 인간이 지구상에 벌어지는 일들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 글과 같지만, 단순히 인간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더 진일보한 느낌을 준다.
“산업혁명은 ‘물질적 재화 생산에 무생물적 자원을 광범위하게 이용하는 조직적 경제 과정’이라고 정의된다. 이 ‘무생물적 자원’이란 자연을 가리킨다.”(p.72) 산업문명 시대인 근대는 자연과의 공존과 지배에서 후자를 택했다. 왜 근대의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하고자 했을까? 토머스 베리는 그 이유를 흑사병에서 찾는다. 흑사병은 300년에 걸쳐 출몰했는데,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등장하며 유럽인들을 유례없는 공포 속에 밀어 넣었다. 이로써 서구 사회는 자연을 맹렬히 혐오하는 전통을 갖게 된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줌”의 등장 배경을 흑사병과 연관 지어본 것은 처음인데,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글이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가 생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담아야 하므로 인물의 이름이나 사건의 흐름이 나열될 수밖에 없었다. 지구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굴러갔는지 알아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니 당연한 구성인 것 같다. 그 덕에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 공부했던 요나스, 가이아, 레오폴드 같은 반가운 이름도 만날 수 있었다. 수능을 위해 생윤, 윤사를 공부할 땐 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연결 짓는 것에 급급했는데, 이제서야 그들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해 보는 것 같아 새삼 신기했다. 다만 귀여운 책 디자인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꽤나 당황했고(😂), 읽으면서는 국내의 일을 더 많이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역사를 인간의 활동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의 많은 사건은 실제로는 사람과 땅의 생명적 상호 작용이었다. - P135
권리는 존재와 함께 온다. 존재가 있는 곳에 권리가 있다. 베리는 "인간의 법이 이러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인간 법은 그 어느 때보다 파괴적"이라고 주장한다. - P1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