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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김영사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를 양보하는 게 별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버스에 타신 할머니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던 날, 할머니의 미소나 짐을 들어주겠다는 다정한 목소리 같은 것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뿌듯함에 입술을 실룩이곤 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처음 자리를 양보 받는 나이가 됐을 때는 어땠을까. 그냥 고마웠을까, 아니면 당혹스러웠을까.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후자였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욕을 받았다고 여겨야 하는 건지 몰라 나는 주춤거렸다.”(p.20) 갑작스럽게 찾아온 늙음, 세상의 달라진 태도,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상황은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늘 책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으며 에로티시즘을 발견했고, 여자 친구들과 도리스 레싱의 글을 읽으며 연대감을 느끼고, 해방에 대한 욕망을 정당화하곤 했다. 늙음을 깨달았을 때도 그는 책을 찾았는데,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존 맥스웰 쿠체, 앙리 드 몽테를랑, 필립 로스 등의 남성 작가들과 달리 노화라는 주제로 글을 적은 여성 작가 자체가 드물었다. 콜레트, 보부아르, 수전 손택 등의 작가들이 글을 쓰긴 했으나, 그들이 노화를 다루는 방식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늙어버린 여름』은 저자가 찾아 헤맸던 책이다. 저자는 솔직하게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늙음을 맞닥뜨린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하나 생긴 셈이다.
저자는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 속에서 직접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꼰대력’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 덕에 삶이 윤택해졌다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을 떠올리며 귀엽게 넘겼다. 물론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저자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젊은 세대를 만나며 당황하기도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선거 참모로 활동할 당시, 저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싶어 하는 여성 후보자가 적은 것에 대해 여성 대상의 설명회를 기획하자고 주장하지만, 젊은 세대의 남성, 그리고 여성은 남자를 배제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경험은 저자에게 젊은 세대와 우정을 느끼고, 다양한 경험을공유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포함될 수는 없음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나도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의 공백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내려갔다.
요즘 나의 엄마는 피부 관리나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다.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그냥 태어난 대로 사는 거지.”라며 시니컬하게 반응하곤 했다. 최근 든 생각이지만, 나에게는 젊은이의 오만함이 있는 것 같다. 아직 20대를 살아가는 내가,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이제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긴 50대엄마의 삶을 다 알 수 있을까. 정신 차리고 보니 탄력을 잃은 피부, 곳곳의 주름, 기미 같은 게 보이는 현실이 엄마에겐 스트레스일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늙음을 재고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다행이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비관론은 상실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자 상실을 길들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황당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요컨대 버림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는 것이다. - P45
세대마다 나름의 전투를 치른다. 우리 세대가 치른 전투는 현재 젊은이들이 지구를 구하겠다고 벌이는 전투보다 더 혁명적이지도, 더 정당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도 거기에 충실했다. 나는 감히 우리가 어쩌면 그처럼 천진하게 낭만적일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일 거라고 생각한다. 유토피아 건설의 꿈, 고리타분한 세상에 대한 거부, 그때까지 아무도 해보지 못했던 당돌한 실험, 연대의식, 이런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인 위로 양념처럼 더해진 우리의분노와 취기, 음악과 요란한 연회, 도발과 질풍노도, 완전히 고삐 풀린 향락이라니.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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