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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미장원에서 ㅣ 노마드시선 7
조연희 지음 / 노마드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고도리
조 연희
창밖에서는 쏴아 흑싸리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그럴 때마다 얘, 누가 온 것 같아.
엄마는 2월 매화 열 끗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오빠가 집을 나간 건 기러기가 대이동을 하던 계절이었다.
팔월 공산의 세 마리 새처럼
그렇게 지붕을 넘어간 가족들
나는 칠월 홍돼지처럼 날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정말 형편없는 패야.
철마다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가 피어나는
카키색 군용 담요는 한때 우리의 정원
우리 가족 다섯, 고도리처럼 다시 모여
함께 만두를 빚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삶은 뒤집어야만 볼 수 있는 패였다.
엄마가 찾고 있는 패는 없는 게 아닐까.
언니는 왜 섣달 비 쭉정이 같은 사내를 꼭 쥐고 있는 것일까.
얘, 누가 온 것 같아.
엄마는 끝나지도 않은 화투를 접으며 말했다.
열 끗 중 한 개의 패가 내 아버지였지만
아직도 난 패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 문득 눈길이 머무르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시인의 시에는 맛스러운 표현들이 많다. 그녀의 삶이 시가 되어 맛을 낸다. ‘골목 끝에 그대/ 막다른 그리움이 있어서(골목은 기억이다 중에서)’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 앉아 있는 막막하고도 적막하기 그지없는 그리움을 만난다. ‘뒷굽에 매달려 온 생의 고단함을 털어내고(모래내 풍년재활용센타 중에서)’싶을 때, ‘수증기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던(자궁근종 중에서)’날에는 한 줄 시가 ‘곡소리가 끊긴 상갓집처럼 적막한(쓸쓸한 연애 중에서)’ 내 시간들을 위로한다. 아직 자신의 패를 보여주지 않은 작가의 다음 시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