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조금
유진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용되지 않을, 한 권의 유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수 시절, 한없이 바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했다. 죄 없는 손톱이나 물어 뜯으며 시간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직장인은 아니지만, 직업 공부를 하면서 이제는 다른 고민에 빠졌다. 해야 할 과제와 공부는 많아졌는데, 이번에도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속에서 제현주와 금정연이 쓴 <일상기술연구소>를 읽게 됐다.

  2016년 5월 시작한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1부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돈 관리의 기술부터 일 벌이기, 함께 살기, 생활 체력 기르기 등 평소 물어보기 어려운, 기술자들의 일상 이야기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각자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 방법이 옳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이렇게 살아왔다. 당신은 어떤가? 무엇을 원하는가?'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러나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기 위한 디테일이 담긴 <일상기술연구소>는 21세기 자기계발서다. 내 삶을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좌절감만 잔뜩 얻고 마지막 장을 덮는 책이 아니라, 독서가 끝난 뒤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다. 문학과 에세이도 하기 어려운 이 일을, 이들의 담담한 대화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라서 - 이민혜 그림 에세이
이민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방 책장에 꽂힌 책들은 본래의 모습보다 훨씬 두툼하다. 곱씹고 싶은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책 귀퉁이를 접은 까닭이다. 그런데 엄마라서를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책의 모서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귀를 접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한 생의 장면에 내 입맛대로 표시한 자국이 남지 않길 바라서일까? 엄마와 딸 사이의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이 글과 그림으로 온전히 전달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민혜는 일러스트 작가로, 동화책과 그림책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다. 혹 그녀의 이름이 생소하다면, 공지영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성석제 에세이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의 표지를 떠올려보라. 아마 둥글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한 캐릭터를 보고 쿡 웃음을 터트린 기억이 있을 거다. 그런데 그녀의 쟁쟁한 이력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바깥에서는 착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집에서는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듣는 딸이다. 매사에 걱정이 많고 마음이 여리지만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엄마가 있다. 엄마를 그리고 쓰면서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러모로 걱정을 끼치며 살고 있다.”

    

   몇 번이고 작가 소개를 읽으며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이거, 내 얘기 아냐?’

 

   모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겠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정말이지 이상하다. 누구보다 친한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이보다 더한 원수도 없네생각들 때도 있다. 엄마, 부르기만 해도 가슴 한쪽이 아려오지만, 엄마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난 적도 많다. 너무 편해서, 많이 사랑해서, 그만큼 섭섭한 것도 많아서 상처주는 말도 많이 뱉었다. 엄마와 나 사이를 어떤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글쎄... 이민혜 작가의 그림 에세이 제목처럼 엄마라서라는 말로밖에 문장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엄마라서했던 수많은 말들과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어쩌면 우리는, 아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외면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별일 없으니 우리 엄마는 괜찮을 거야, 라고 모른 척하면서.”

 

   얼마 전 떠난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서로의 손바닥을 짚어가며 손금 얘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난 한 번도 엄마의 손바닥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의 생명선을 보는 게 겁이 났다. 손금이나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혹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실까봐 무서웠다. ‘학교에 들어가면’, ‘이 일만 잘 풀리면’, ‘성공하면’...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엄마의 상처를 보듬는 일을 미뤄왔는데. 지금껏 나는 엄마가 우는 모습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강하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 엄마는 괜찮을 거야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나도 완벽하지 않듯, 나의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 한창 때는 발목까지 오는 길이에 앞부분의 단추 디테일이 허리부터 밑단까지 이어진 은근히 도발적인 디자인의 “24인치 리바이스 청치마를 즐겨 입었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어떨까? 갱년기를 겪고, 외로워하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꿈꾼다. 실수도 잦고, 감정적이며, 때론 남대문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 모으는 소소한 행복도 즐긴다. 지금 모습의 엄마를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나? 난 그러지 못 했다.

 

나는 엄마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엄마와 말다툼할 때마다 난 엄마처럼은 안 살아!’ 외쳐왔다. 그런데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엄마와 나의 모습이 놀랄 만큼 닮아 있어서 말이다. 지금껏 부정해왔던 엄마가 사실은 나였을지도, 나에게 향해야 했던 비난의 화살을 엄마에게 돌린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엄마라서줬던 상처들을 이제는 엄마라서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이민혜 작가가 그림과 글로 그녀의 엄마를 안아준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는 역사소설이라곤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역사소설이 지닌 무게감이 때문일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비현실적이게 느껴졌고, 픽션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순수소설이 아니라고 하대했다. 근현대사의 역동이 버거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알게 될수록 책임감이 아닌 죄책감이 먼저 밀려왔다. '만약 나라면 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겪지 못한 시절 앞에서 자꾸만 비겁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 여자>를 펼치기까지 나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세 여자>는 식민지 조선 당시 청계천 개울물에 발을 담군 단발머리 세 소녀의 사진에서부터 시작하는 조선희의 새 장편 소설이다. 머리를 자르는 일마저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시절, 주세죽과 허정숙, 고명자는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상해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독립운동을 소명으로 삼았고, 경성의 여성동우회를 이끌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뿔뿔히 흩어진 그들은 서울과 중국 연안,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해방의 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혼란한 남북 분란의 시대는 그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고명자는 인민위원회 활동 도중 홀로 죽음을 맞이했고, 죽세죽은 모스크바에서 병에 걸린 후, 허정숙은 북체제의 변화를 지켜보다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에 비해 주목받지 못 한 세 여자. 조선희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었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버텨온 세 여자의 일생을 뒤쫓으며, 역사의 뒤안길에 놓였던 이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은 내 머릿속엔 6월 6일 제 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것이야말로 "애국"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삶에 주목하는 일. <세 여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머리를 짧게 잘라도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암울한 시대에 세 여자는 여성으로서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운동을 이끌어 왔다. 격동의 시대를 버티다 외롭고 쓸쓸히 죽어간 이들은 용기있었으며 굳건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오늘날 우리에게마저 외면 받을 수는 없다. 나는 <세 여자>를 읽으며 지나간 역사에 죄책감이 아닌 고마움과 책임감을 느꼈다. 교과서 속 해설이 아닌 소설 속 이야기였기에 가능했다. 픽션이 주는 거리감과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요소 덕분이었다. 페미니즘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외편집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컴인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집자가 되자고 마음먹은 뒤부터 책을 '책'으로 읽을 수 없게 됐다. 독서라는 행위에 부담과 책임이 덧붙여진 기분이었다. 글의 흐름을, 이야기를, 종이의 여백을 그 자체로 음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된 것이다. 책이 잔뜩 쌓인 방 안에서 어쩌지도 못하는 날들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다 츠즈키 쿄이치의 <권외편집자>를 집어들게 됐는데,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표지가 주는 간결함에 끌려 구매한 책이었는데, 그 안에는 츠즈키 쿄이치의 담담하고도 강인한 40년 편집 인생이 담겨 있었다.

 

  "일에는 배울 수 있는 영역과 배울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애초에 편집자에게 필요한 기술은 거의 없다. 그러니 책은 만들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만들면 된다."(p.31)

 

  "편집에 '기술'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독자층을 예상하지 마라", "절대 시장 조사 하지 마라"와 같이 홍보문구로 쓰인 말들은 사실 별 것 아닌 축에 속한다. (그동안 듣고 배워왔던 얘기들과 완전히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 입을 다물지 못 했지만.) 내가 놀란 건,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선명하게 의식"하게 된 저자때문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은 거의 없으니 "책은 만들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만들면 된다"고. 그 다음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보는 일"뿐이다. 이 끝없는 순환 속에서 저자는 읽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있었고,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고려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나는 진정한 편집자로서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p.27)

 

  물론 출판사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기획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단카이 세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지낸 시대는 출판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의 부흥기였다. 편집의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가능했던 것도 (초반에는) 그가 잡지에 글을 싣는 편집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대의 혜택을 받으며 생활한 그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꼰대'의 것처럼 읽히지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고민한 결과, 혼자 내린 답은 다음과 같다.

 

  1. 자랑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

  2. 부러워하라고 쓴 글이 아니라서.

  3. 편집의 기술을 알려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

 

  이 글을 읽고  "그래, 이거야!" 소리치며 수첩을 펴고 편집의 규칙을 적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일관된 태도로 편집자 생활을 해온 저자의 삶을 보기 위해서 읽었다. 그런 생각에 그치자 다음과 같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겨났다.

 

  4. 책을 통해 주류 바깥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던 노력 때문에.

 

  세련되고 부유한 일본의 모습을 담은 <JAPANESE STYLE>을 접한 그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진짜로 살고 지내는 공간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마추어용 카메라를 사고 두 발로 직접 뛰어어다닌 끝에 <TOKYO STYLE>을 낸다.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그는 책을 통해 이뤄나갔다. "죽을 때까지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만족하는 패자 그룹"을 존경한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 '좋아하는 책만 만들 수 있어서 좋겠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좋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일 뿐이다." (p.129)

 

  아직 예비 편집자라 그런지, 공부하다보면 취직에 대한 불안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려온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는 불안한 내게 자주 묻는다. '나는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었나?' '앞으로 어떤 책을 읽고 싶은가'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떤 편집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거다. 좋은 출판사, 좋은 원고가 아니라 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호기심과 아이디어와 추진할 에너지"뿐이다.

 

  마지막으로, 출판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며, 다음의 문단을 함께 읽고 싶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기에 앞서 고민해볼 문제가, 스스로를 '권외편집자'로 지칭한 이유가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현대인의 감성은 옛날 사람에 비해 결코 둔해지지 않았다. 둔해지기는커녕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의 발달로 모든 사람이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쓰는 시대는 이제까지 없었다. '시인들의 문단' 바깥쪽이야말로 전율하게 하는 언어가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다."(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