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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선 :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 P25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작물들의 풍요로움과 멀리 떠 있는 바다, 차 보닛에 떨어지는 햇빛이나 석양이 아름다워서 질리지 않았다. 고되고 고되면서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게 인간이란 생각을 했다. - P65

할머니는 장례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가 들어가는 단어는 사실 묶어서 싫어했다.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내 모든 것의 뿌리. 아직 태어나지 않은 괴물의 콧등에 기대 많이 울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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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습관 -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를 읽고, 힘든 현실에도 과거에 갇히지 않은 채 미래를 바라보는 정약용의 태도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습관을 담은 이 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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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인지혁명_2) 지식의 나무

역사와 생물학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다. 숫자가 1천~2천 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만일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 명씩 모인다. 인간은 교역망이나 대중적 축하행사, 정치제도 등의 질서 있는 패턴을 함께 창조한다.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 P117

제 1부 인지혁명_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현대 수렵채집인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을 통해서 우리는 고대 수렵채집인들에게 어떤 가능성들이 있었을지 이해할 수 있지만, 고대엔 그 가능성의 지평이 훨씬 더 넓었고 그 대부분은 우리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주된 쟁점을 놓치고 있다. 인지혁명 이래 사피엔스에게는 단 하나의 자연스렁누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문화적으로 선택하느냐라는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 P136

제 1부 인지혁명_4) 대홍수

노아의 방주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만일 좀 더 많은 사람이 멸종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대해 안다면, 스스로가 책임이 있는 제3의 물결에 대해서 덜 초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시켰는지를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 것이다.

이것은 특히 바다의 대형동물들에게 유효한 문제다. 바다의 대형동물들은 육지의 대형동물들에 비해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종이 산업공해와 인간의 해양자원 남용 탓에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사태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고래, 상어, 참치, 돌고래는 디프로토돈, 땅나무늘보, 매머드의 선례를 따라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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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원

할머니가 나를 흘겨봤다. 무섭지 않았다. 생경했다. 이전에는 그녀가 나를 그렇게 쳐다보면 마음이 조여오곤 했으니까. 할머니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아니면 질투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부디 제발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그녀가 온종일 일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내게 윽박지르고 몰아붙였기 때문에, 때리고 실망하고, "유지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 동네를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밥값을 하게 되었다. 박윤보와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얼마든지 그들을 떠나고 다시 만나고 잊었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나만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살게 되었다. 살고 있다. 그래. 정말로 안다. 사실 박윤보는 나의 인생, 나의 삶, 나의 미래를 자신의 무엇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래서 나의 웃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었던 거라는 것.

"야."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응."
"진짜야."
"뭐가."
"나는 지금껏 낮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웃었다. 할머니가 인상을 찌뿌렸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차를 빠르게 몰았다.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지금까지도.

계속.

가원은 여자의 호로 쓰이는 이름이다.

나는 대답했다.

"응, 알아. 우리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지."

다 옛날 일이다. 모두.

그치? - P72

# 화이트 호스

197p

"이 밤중에 애들이 여기까지 찾아왔다구요? 착각이시겠죠."

그해 여름, 나는 그 집에 갔다.

이선아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지난 일 년간, 내가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221p

노래가 계속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는 네가 이끌어줄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공주가 아니고, 이건 동화도 아니란다.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 - P197

카밀라

우리는 계속 함께 걸었다. 날이 밝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유진씨는 언제나 밤에 깨어 있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녀가 곧장 되물었다.

"그러면 아까 집에 있으면서 왜 대답 안 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찾아왔고, 오늘 함께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었다고,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와 함께 걷는 이 순간에도 나는 어떤 시간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끝나버릴 것 같은 시간, 누군가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꿈.

그리고 지우가 말했다.
"유진씨,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이제 곧 해가 뜰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손끝을 매만졌다. 부드러웠다.

나는 아직 깨어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럴 것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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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원

할머니가 나를 흘겨봤다. 무섭지 않았다. 생경했다. 이전에는 그녀가 나를 그렇게 쳐다보면 마음이 조여오곤 했으니까. 할머니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아니면 질투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부디 제발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그녀가 온종일 일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내게 윽박지르고 몰아붙였기 때문에, 때리고 실망하고, "유지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 동네를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밥값을 하게 되었다. 박윤보와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얼마든지 그들을 떠나고 다시 만나고 잊었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나만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살게 되었다. 살고 있다. 그래. 정말로 안다. 사실 박윤보는 나의 인생, 나의 삶, 나의 미래를 자신의 무엇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래서 나의 웃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었던 거라는 것.

"야."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응."
"진짜야."
"뭐가."
"나는 지금껏 낮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웃었다. 할머니가 인상을 찌뿌렸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차를 빠르게 몰았다.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지금까지도.

계속.

가원은 여자의 호로 쓰이는 이름이다.

나는 대답했다.

"응, 알아. 우리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지."

다 옛날 일이다. 모두.

그치?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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