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와무라씨 댁을 소개합니다
아침에 거실 커튼을 걷은 노리에씨는 텔레비전 위에 꽂아둔 한 송이 작약이 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노리에씨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지만,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고,
이 작약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서 폐를 끼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한 아침의 노리에씨였습니다.
p.105
앞서 말했다시피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연령대가 꽤 높은 편이다. 그런 주인공들의 일상은 조용하면서도 묵직하다.
매일 보통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두 노부부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게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이라하면 어두운 분위기를 연상하겠지만, 사와무라씨댁은 조금 특별하다.
시로씨와 노리에씨 모두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잠시 씁쓸해지다가도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 만화에서의 '죽음'은 결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누구나 맞게 되는 그런 것.
책을 읽다보면 그런 시로씨와 노리에씨의 마인드에 자연스레 동화된다.
바닥에 떨어진 작약 꽃잎에서도 죽음을 생각하는 노리에씨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라는 말과 함께 가볍게 털어버린다.
그것도 어느 아침에 아주 잠깐 한 생각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은 자주 찾아오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인상 깊었던 일화 중 하나, <슬슬 준비를>.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데 "어떤 음악을 틀지, 어떤 꽃을 꽂을지"가 대화의 주제다.
뒷부분은 두 부부가 장례식에서 틀만한 음악을 오손도손 고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에게는 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장례식 문화가 다른 것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는데 슬픔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예를 들어 통곡을 한다던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최대한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례식에서의 노래선정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는 일본의 보편적인 장례문화가 아니므로 사와무라씨댁만의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할수록 제법 괜찮다. 장례식이라고 주구장창 슬프리란 법은 없지 않는가.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는 것도, 예쁜 꽃과 디자인으로 장례식장을 꾸미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내 장례식도 그렇게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사와무라씨댁에서 '죽음'이란 소재는 일상 그 자체다. 전단지에 실린 납골당 광고를 꼼꼼하게 챙겨보고, 7년 후에 돌아오는 올림픽 때까지 건강히 살 수 있을 지 농담처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늘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웃음.
대화주제가 무거워지다가도 이내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져 함께 빵 터지곤 한다.
# 공감의 정석
마스다 미리하면 "공감"이라는 단어가 자동연상된다.
그도 그럴것이 서평단 이름의 끝에도 늘 "공감단"이 따라 붙는다.
평범한 노부부와 미혼여성의 일상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들의 잔잔한 일상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심지어 어떤 일화는 내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 그린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엄마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는 히토미 이야기)
이게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20대인 내가 70대 노부부와 40대 미혼여성의 일상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진솔함" 때문이었다.
보통의 만화들은 흥미를 위해 다양한 픽션들을 추가한다. 우리는 여기서 흥미는 느낄 수 있을지언정 공감은 느끼지 못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진솔함, 그 자체다.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진짜 이야기, 즉 논픽션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