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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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이 출간됐다. 알쓸신잡의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읽었던 14권의 고전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청춘의 독서라는 책제목에 걸맞게 수록된 책 이야기들은 모두 청년 시절 유시민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 때문인지 책을 읽다보면 유시민의 대학시절 자취를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당시 유시민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뇌는 책 속에 실린 고전들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했다.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밝히길, 여기에 수록된 책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30년 세월이 지난 후 집필을 위해 다시 펼쳐보니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다는데, 이 대목에서 묘하게 공감이 갔다. 

한 번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같은 글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청춘의 독서는 같은 책을 두고 청년 유시민과 30년 뒤 유시민이 나누는 대화 같기도 했다. 과거의 인물과 무전을 주고 받는 드라마 시그널처럼.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명작 소개하기'가 아닌 두 명의 유시민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읽고, 느낀 지혜의 목록들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모든 청춘들에게, 독재정권 시기를 겪었던 운동권 청년이자 지식인 유시민은 자신이 겪었던 삶을 "책"이라는 수단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책 속 인물들 그리고 유시민의 사상과 고뇌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먼저 일구어낸 지혜의 텃밭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배된 지혜를 수확하고, 새로운 사상을 심게 된다.
더불어 과거의 지혜와 현대의 지혜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때,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리커버 에디션은 2009년도에 출간된 구판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구판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확실히 리커버 에디션이 젋은 세대들에게 더 끌리는 디자인이긴 하다.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중앙에 있는 책그림 속지 부분이 은박지 같은 소재여서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반짝 하는게 정말 예뻤다.
대게 책 앞표지 부분은 제목만 있는게 가장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표지는 부제와 설명글까지 담아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깔끔하면서 정돈적인 느낌이 들었다. 텍스트가 많아도 배열 구조만 잘 신경쓰면 이렇게 단정하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결론은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표지가 예쁜 책은 언제나 환영이다. 

 

# 책속한줄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맹자」를 읽은 유시민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실린 조선 문인 유한준의 말을 바꾼 것이다.
문명의 코스모스가 끝없이 자기를 확장해간다는 것을 직시하지 못한 맹자는,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가려 한 보수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를 내면의 힘으로 빛을 내는 항성(行星)처럼 좌절마저도 아름다웠던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재표현했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그것을 알게 되서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앞전에 말했던 것처럼, 같은 책을 꽤 오랜 시간의 격차를 두고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에 대한 수용도는 굉장히 달라진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들을 흡수하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세월이 지나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때에 보이는 것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슬픔도 힘이 될까

9장 / 슬픔도 힘이 될까 _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유시민이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시절 0.7평짜리 독방에서 그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책을 읽게 됐다.
당시 그가 봤던 번역서에 19세기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 한 구절이 실렸고, 그는 이 시에 대해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표현했다.

 

당시 1심에서 유죄 선고 판결을 받은 유시민은 이 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그 유명한 유시민표 '항소이유서'의 가장 마지막 단락에 인용했다고 한다. 얼마전 알쓸신잡에서도 언급되어 또 한 번 화제를 일으켰던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좁은 구치소에서 슬픔과 노여움을 삼키던 청년 유시민에게는 이 짧은 문장이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위 구절과 함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를 슬픔과 노여움으로 쓴 소설이라고 표현했다.

"슬픔은 슬쩍슬쩍 비칠 뿐이고 노여움은 극단적으로 억제되어 있지만, 이 소설이 묘사한 상황은 그 자체로서 측정할 수 없이 깊은 슬픔과 뜨거운 노여움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와 같다."
194쪽

더불어 이 책에 담긴 슬픔과 노여움의 미학은 푸시킨의 문장이 지닌 발랄함과 낙관, 톨스토이의 작품과 삶이 풍기는 농염한 휴머니즘 위에 서 있다고도 표현했다. 또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며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견딘 후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201쪽. 

 

 

청춘의 독서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외에도 13권의 명작들이 담겨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그 중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 때문에 짧게 소개해봤다. 이 책은 기회가 닿을 때 바로 읽어보려 한다.

청춘의 독서를 읽으며 들었던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나에게도 이처럼 의식의 뿌리가 되었던 책들의 목록이 있는가?였다.
비록 유시민이 읽었던 고전 작품들처럼 훌륭하고, 멋진 책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내게도 분명 그러한 몇몇 책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 삶에 대한 지혜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을 때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그런 책들.
언젠가 완성될 내 「청춘의 독서」 목록은 어떤 책들로 채워졌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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