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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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가제본을 받고 서평단에 참가했음을 밝힌다.(https://brunch.co.kr/@enormous-hat/306)

노명우 작가의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가히 필자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역사물이 될만하다. 하지만 시간의 후퇴만큼이나 본인은 심리적으로 물러나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야기에 심취한 어린아이가 되었다.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듯 조심스레, 아른거리는 옛 그림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좇는다.

<인생극장>에서 상영되는 흑백의 필름은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여기서 상상은 실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을 통과한 이들의 세계가 독재자들의 시대마저 역사로 배운 이들에게는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맹률이 높고 의무교육이 없었던 지난 대한민국의 시기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남겨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해서 우리는 당대에 의도된 혹은 발췌된 영상으로 그들의 삶을 상상해야 한다.

이는 이 책이 분명히 취하는 입장으로 역사의 진실을 다루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외면이 아니다. 사학자의 것이 아닌 사회학자의 눈은 철저히 개인들을 향하며 마침내 프리즘의 산란처럼 사회학적 해석을 투영한다. 역사의 큰 틀에서 이해하는 인간사가 아니라 개인과 그 개인들을 구속하던 환경 속에서의 분투가 만들어낸 인생을 역추적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가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의 인생은 교과서에 적힌 매끄러운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도 역사를 살 수 없고, 언제고 당대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인지적 한계를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사실 중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것을 추측할 수는 있어도 지금을 기억할 미래의 방식은 우리와 다를 것이라는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독자는 인간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인생에 대한 세밀한 추론을 경험한다. 그것은 쉽게 평론할 수 없고 단호히 구분할 수 없는 인생사라는, 깊은 강물 속 흐르는 물줄기를 읽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흩어지고 갈라지고 만다. 다 붙잡지는 못할 터이나 지면의 인생들을 통해 폭포의 후퇴처럼, 바위에 패인 구멍처럼 오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의 '결'은 당대를 살아온 이들의 기억의 '결'과 '동일'할 수 없다. 살아남은 기억 속에 빠져들어갈수록, 감정에 이입되는 과정이 구체화될수록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대한 네온사인 뒤로 가려진 평범한 인생을 발견케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주 귀하다. 작가의 담담한 서술은 독자에게 역사라는 필름의 중첩을 일생이라는 이름으로 거듭 구분하는 일로 읽힌다.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고 사람들의 인생에 명암을 남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 또한 살아가는 순간만큼은 물 밖의 존재가 아니라 물속의 것임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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