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끝나지 않는 이야기

선별된 단편집을 읽으면서 줄곧 드는 생각은 이 사람은 이야기를 참 잘하는 사람이구나,였다. 이야기는 줄곧 갑작스럽게 끝맺어지곤 하는데 이것이 앞서 밝힌 생각의 이유다.

독자는 이야기를 따르며 새로운 위기가 다가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지만 이야기는 뚜렷한 결말이 없이, 그러나 무언가 진행될 느낌으로 재빠르게 마무리된다. 때문에 긴 여운을 남기는 효과가 나타나게 되고, 짧은 호흡의 단편에서 긴 숨을 내쉴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마무리는 독자가 당혹감을 넘어 종료된 이야기에 재차 관심을 쏟게 한다. 때문에 필자는, 단순히 흥미를 끄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뒤에 이어질 무수한 이야기를 독자에게서 이끌어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았다 믿었다.


비판적 상상력

이 작가의 소설은 현대미술처럼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유리 여자랄지 머리 위로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여자랄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또한 그들이 처하는 상황, 겪는 어려움과 시선들이 담담히 서술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현실적인 인물들의 상황이 현실에 바탕을 둔 여타의 단편 속 배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독자는 줄곧 여성의 개념과 가치,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돈, 남편, 아이로 치환되는 상황을 마주한다. 이 세 가지는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지금의 모든 상황 속에서 힘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그려진다. 이것들은 각 소설을 이끌어가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한 개인으로 사회에서 살기 어려운 현실을 비판하는 중요한 논점이기도 하다.


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인가?

벡델 테스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테스트는 영화 산업처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에서 여성이 소외받고 남성이 중심이 되는 현상을 지적하려 만들어졌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2.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3.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이 항목들은 단순히 의미만을 담아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들이 생각보다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테스트가 이야기 속의 성평등을 시험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진 않으나, 많은 작화가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형성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때문에 '왜 여성의 이야기를 쓰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어야 옳다. 만약 이 질문자가 남성이라면, 그리고 이 질문에 다른 함의가 존재할 가능성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질문에 남성 중심의 시선이 담겼다는 사실을, 그것이 보통의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다른 의미를 담은 사람이라면 질문의 표면적인 의미와 그 답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질문은 곧, 왜 여성이 중심인 여성에 관련한 이야기만을 묶어냈냐, 는 것이 되고 이에 대한 답은 남성 중심의 시선이 주류인 사회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아직도 너무 적기 때문에, 일 것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

묘사된 여자들의 삶과 생각, 여자들이 놓인 개인적 혹은 사회적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해쳐나가는 행동과 방식이 불쾌하다 느껴진다면 그만큼 우리는 여성의 삶에 대해 모른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이 묘사되는 자리에 여자의 말과 글이 없다는 현실의 한계를 마주한 셈이다.

소설이 묘사하는 여자들의 세계 - 남자들은 경험하지 못하기에 잘 알지 못하는 세계의 반절 - 는 사실 여성들에게는 일상의 경험이다. 때문에 불편하다면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해결 받거나 해석돼야 할 종속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불안감을 주목해야 한다. 여성은 끊임없이 불안을 소비하고 남자들의 세계에서 소비된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추측하기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은 곧 사람의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불안은, 그리고 불안감으로 소비되는 삶은 숨겨야 할 것도 아니고 내가 겪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묻혀야 할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레 사라질 일도 아니다.


같이 살자

독자들은, 자신을 강간한 이를 피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지만 '위험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단편집을 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여성이 처한 위험과도 마주한다. 이것은 마치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위협과 두려움을 공론화하려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저자가 여타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만큼 여성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만약 소설 속 묘사가 소수의 상황이라며 부정한다면 그것은 애써 비겁해지려는 일이다. 남성적인 세계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에 소외되고 버려진 이야기들이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여성적인 것은 위협받거나 배제되어야 할 영역이 아니다. 그것도 곧 인간적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왜 여성이 겪는 불안은 오해이거나 과장이라고 무시되는 것일까? 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논의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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