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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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경험은 무엇인가? 기억이 나든 나지 않든 그것은 곧 나의 시작이고 나라는 기억의 첫 글자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던져보았을 나는 누구인가, 에 관한 이 질문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이끈다. 알 수 없는 것을 발굴하듯 찾아내려는 과거로 향한 탐험은 그렇게 출발한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아니 언젠가 드러났으면 하는 무언가를 어지간히 찾는 이들이 있다. 애써 하지 않고 그것이 운명인 것처럼 주어진 모든 것을 부인하여 친숙한 통과의례를 거스르는 사람들이다. 주류를 부정하고 불리는 이름을 부정하고 자신을 부인한다. 그가 읽어주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예술과 시의 세계는 그런 비주류를 담는다. 잊히고 버려지기까지 한, 그러나 분명히 그곳에 있는 무언가와 그 무언가를 보는 눈길을 말이다.

책이 담아내는 인생에 관해 때론 종교적이기까지 한 책의 서술이 독자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고개를 들어 잠시 한 눈을 팔고는 음독을 해보았다가, 손가락을 들어 눈과 함께 문장을 통째로 긁어보다가, 필기구를 들어 동그라미를 몇 번 친 후에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싶었던 이유는 이해되지 않는 만큼 마침내 얻는 위안이 깊어진다는 데 있었다. 나만 따르지 못한가 믿었던 대세의 길, 그 바깥에서 '나'를 찾으려는 이들이 새롭게 그리는, 새로운 통과의례를 본다.

난해한 문체에서 마치 저자의 의도를 읽어냈다고 믿은 필자는 예술을 읽는 과정을 또 하나의 예술로 미화시켰다 본다. 곧 음악과 문학의 여러 갈래를 삶의 난해함을 담아내는 지류로 삼았으므로 삶의 지난한 모양새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과 다르지 않다. 익숙한 소리로 형용되는 찰나, 삶이 의미를 잃고 부서져버릴까 두려운 사람, 그럼에도 고통처럼 느껴지는 이 삶이 어여쁜 사람이라면 생소하지만은 않은 신음과 희미한 그림자로 엮인 이 책의 독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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