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계몽의 물결이 비록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더라도 이윽고 그것은 다시 썰물이 되어 빠르고 실없이 철수하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만학도들에게 철학과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부딪치곤 했던 그 철옹성 같은 벽은 관념의 조수간만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는 나이와 경험의 타성이자 몸과 생활의 무게였을 것이다. (아예, 몇몇은 "교수님, 아이를 낳고 길러 봐야 진정한 철학을 하지요!"라고 일갈했다.) 그 벽은 실로 닻이면서 덫일 수밖에 없는데, 몸과 버릇 속에 각인된 과거를 고집하는 순간 그것은 든든한 닻이 되고, 공부라는 미래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그것은 그만 끈끈한 덫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