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 당신을 워해서.”


리얼 라이즈로 데뷔한 T. M. 로건의 신작 29초는 시작부터 악마와의 거래를 드러내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본격적인 사건은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몰입도와 가독성이 좋아서 금세 빠져들었고, 무엇보다 쓰레기 앨런 러브록 욕하면서 읽다 보니 분노 부스터를 쓴 마냥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직장 내 성희롱을 적나라하게 담아서 읽는 데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게 가장 불편하고 불쾌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흡입력 있는 소설이라 어느새 29초간의 통화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세라에게 감정이입했고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상황에 내내 긴장하며 읽었다. 솔직히 남성 작가가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고충을 꽤 자세히 알고 있어서 놀라웠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과 그간 쌓은 성과들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아래로 보는 모습은 참... 현실적이라 생각이 많아졌다. 굉장히 현실적인 책이었지만 그래도 소설인 만큼 결말이 더 통쾌하길 바랐는데 내 생각보다는 약해서 조금 아쉽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그런 쓰레기는 더 고통받아야 하기에...

전작 리얼 라이즈 흥미진진하게 읽어서 나도 모르게 29초와 리얼 라이즈를 비교하며 읽었는데 확실히 전작보다 성장했음이 느껴졌다.T. M. 로건이 다음엔 어떤 책을 선보일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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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더 괴로운 건 말이야. 난 석사와 박사 학위도 땄고, 제대로 된 직업에, 주택 담보대출까지 있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 있어. 그런데도 러브록은 아직도 회의 때마다 날 ‘영특한 녀석’이라고 불러. 마치 내가 현장 실습 나온 열네 살짜리 애인 것처럼. 내가 왜 그런 말에 휘둘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 화가 나. 난 서른두살이라고. 러브록이 젊은 남자 동료를 그렇게 부르는 일은 절대 없거든.” -p.30

“(...) 선임 교수들은 아랫사람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특히 그 사람이 여자라면 더욱 더, 스스로를 아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끼도록 만들려고 전력을 다하거든. 자신들이 가진 힘을 과시해서, 한동안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절감하게 하는 거야. 서열을 익히도록 말이지. 피를 맛보게 하는 거야. (...)” -p.34

“바로 그거야.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 해서 끝에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어. 상대가 이미 시궁창에 있다면, 때로는 너도 시궁창으로 내려가서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려야 해. (...)” -p.187

“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거든. 내가 원하는 삶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p.349

세라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설령 그것이 상대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러브록은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때로는, 아주 가끔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일지 모른다.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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