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밥벌이 - 하루 한 시간이면 충분한
곤도 고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 우석훈 해제, 하완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최소한의 밥벌이 - 곤도 고타로


하루 1시간만 벼농사를 짓고 나머지 시간은 글쓰기에 몰두하는 대안적(alternative) 농부, 얼터너티브 농부가 되겠다며 지방 발령 신청을 한 곤다 고타로. 벼농사에 대해 아무런 전문지식이 없는 곤도 고타로가 짓는 벼농사는 어떨지 읽는 입장에선 흥미진진했지만 내가 당사자 혹은 주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황당했다. 다행히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라는 직업은 유지되겠지만 그 정도면 좌천됐다고 할 만큼의 시골인데 자진해서 내려가다니... 게다가 평생을 도시에서 살고 벌레를 무서워하는 곤도 고타로가 벼농사를 짓는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벼농사에 실패해서 우울한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까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는데 걱정과 달리 그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쾌했고 한번 집중하니 다 읽을 정도로 가독성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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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중고 포르쉐를 구입하고 알로하셔츠를 포기하지 않는 곤도 고타로. 곤도 고타로의 얼굴은 모르지만 벼농사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차림은 아니라서 상상만으로도 웃겼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으면서 살아남겠다며 알로하셔츠를 고집하는 그의 논리에 점점 수긍하게 되었다. 또한 농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32년차 기자답게 자본주의 문제 등 사회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는 곤도 고타로의 방식도 맘에 들었다. 역시 필력이 뒷받침해주니 다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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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차게 본인만의 삶을 살아가니 도시에 있을 때보다 편집자들의 원고 청탁이 늘었다는 곤도 고타로. 그의 벼농사X글쓰기 프로젝트를 응원하며 유쾌함을 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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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막장에 몰리면 어지간한 일은 다 해내게 된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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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멋진 것', '즐거운 것'이 아니면 아무리 옳거나 좋더라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즐겁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멋지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의미가 없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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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0년. 이제 겨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문장을 쓰기 전에는 내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장을 조립하면 겨우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며 놀란다. 생각이 있어 문장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거꾸로다. 문장이라는 내 커다란 꼬리에 휘둘려 내 생각을 깨닫게 된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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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마다 살폈는데도 나는 전혀 몰랐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좋은 사진가나 화가가 보는 풍경과 내 눈에 비치는 풍경은 다르다. 프로 농부도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다. 전혀 다른 눈으로 흙과 물, 태양을 본다.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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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풍이 오는 줄 알면서 굳이 논밭에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가 농사를 지어보면 알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된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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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는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이 따로 없다.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 이건 거꾸로 말하면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소리다. 도시에 사는 노인들이 전기와 가스 같은 생명선마저 끊겨 고독사하고 있다. 풍요롭다는 21세기 일본 사회에서는,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해야 할 이런 상황도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너무도 익숙한 광경이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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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논바닥을 들여다보며 걷다 보면 자연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왜 여기 와 있나.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밀레가 그린 명화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노동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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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느 방향으로건 흘러갈 테지만 좋아질 일도, 더 나빠질 일도 없다. 세상은 늘 추하며, 우리는 기를 쓰고 살 가치가 없다. 그저 이 세상을, 인간사회의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자유로워질 것이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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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탐구하겠다느니, 뭐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다. 영원한 틈새 찾기. 나는 '구르는 돌'이다. 그래서 즐겁다. 그렇기에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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