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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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드는 책들이 있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부류이기도 한.
그건 꼭 내용이 말랑말랑 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겪어가며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새 딱딱하게 굳어져 간 내 가슴 속
한 구석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준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또 한권의 그런 책을 만났다.
후지오카 요코의 '어제의 오렌지'..

치료를 받는 환자도 ,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길이를 처음부터
드러내놓지 않으면,
터널 속 길게 깔린 어둠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는 수가 있다.
더구나 요헤이처럼 젊고,
대부분의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건강한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정표 같은 것이 필요하다.

료가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덜컥 암 선고가 떨어지고
그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굳건히 지켜주는 가족, 그리고 간호사의 위치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 동창 '야다', 그리고 가게 후배.
특별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문앞에서도 결코 특별하려 하지 않았다.

자만할 인생은 아닐지언정,
그럼에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남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가 수가 없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
덧없다. 참담하다. 처량하다.
이 셋을 합쳐도 여전히 부족할
만큼의 속절없음으로 료가의
마음은 가라 앉아 있었다.

료가와 료헤이는 쏙 닮은 쌍둥이로 살아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료헤이는 죽은 이모의 아들.
다시 말해 사촌지간이지만 그들은 형제의 삶을 살아 간다.
십대에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료헤이이지만 그의 선택으로 아무일도 없었던 듯 지금 이대로의 삶을 이어갔다.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고 둘 만의 비밀로
남겨둔 채..
16살에 등산길에 올랐다가 죽을뻔 한
아찔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온
죽음의 빛깔이란...

​마지막 순간, 사람은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지닌 채
떠나는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료가는 초목의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두 눈을 감았다.
"다들, 고마워."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움직였다.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했던 오렌지색의 물건들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무너져도 몇번을 무너질 만한 상황에서
옛 기억의 힘과 지금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고스란히 느끼며 견디는 료가와,
그리고 그냥 그저 단순한 일상인 듯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이들과의 얘기들.
늘 죽음이란 명사 앞에서는 한 없이 숙연해지고 작아지게
되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따뜻한 감성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 온 가슴을 휘젓는 하나의 감정은 정말
감사함이지 않을까.
나도 아파봤지만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남게되는
주변 모든것들을 향한 감사함이 늘 존재하듯.

​형이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 너무 애쓰지마 '...​
어쩌면 한 순간 한 순간 본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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