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읽는 순간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푸른도서관 83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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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마음이 찌르르 해졌다. 이 책의 주인공 '영서'는 내가 아는 아이였다. 몇 가지 세부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여러모로 내가 아는 사람과 꼭 닮았다.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나의 영서'에게 그런 말과 행동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이 책에 나오는 '연아', '고모', '이모', '진교', '사서 선생님', '소란', '유리' 모두가 내가 그 친구에게 드러냈던 감정이다. 영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또 영서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동시에 영서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감정들.


영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단순히 안타까워하고 영서를 응원하며 서평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경험해 본 일이기에 영서를 가볍게 동정할 수 없고, 영서 주위 사람을 힐난할 수 없다.


진심 어린 말 5개, 반성하고 생각을 다듬어서 하는 말 3개, 가시 돋친 말 하나, 그리고 둘. 서로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 진심을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이건 직감으로 아는 것이다. 특히 영서와 같은 사정에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사정을 가진 아이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특히나 강렬히 느낀다. 이런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다가, 싸늘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관계는 서로를 예민하게 만든다.




졸업이 몇 달 남지 않은 중학교 3학년 영서. 영서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영서 엄마는 영서와 곰팡내 나는 쇠락한 모텔을 전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살아졌다. 영서 엄마는 힘들게 사는 자기 여동생보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만큼 경제수준이 되는 고모네 주소를 남겼다.


남동생이랑 인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던 고모는 영서를 오래 맡을 수 없다. 영서 엄마에게 연락이 안 되니, 그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영서의 이모는 영서에게 고모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어쨌든 영서 고모네에 가서 영서를 데려온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 영서를 데리러 간 날, 비를 맞았고 영서 이모는 감기에 걸렸다. 영서의 권유에 직장을 하루 더 쉬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당장 반지하 원룸 월세를 내는 것도 아득하다.


그래도 힘내어 영서를 돌보려고 하지만, 이모 남편은 영서는 놔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잖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도 안타깝지만 남편의 제의가 마음을 홀가분하게 한다. 그래서 이모와 그 남편은 영서만 남겨두고 떠난다. 원룸 월세는 부쳐주겠다는 말을 하고. (하지만 월세를 부쳐주지 않는다)


다시 영서는 엄마와 함께 살았던 '파라다이스'라는 허름한 모텔로 돌아간다. 겉으로는 냉냉하지만 속은 따뜻한 모텔 주인 할머니가 영서가 안타까워 다시 받아준 것이다. 모텔 비용은 받지 않고. (하지만 샴푸 같은 건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서는 '진교'라는 남학생을 알게 되고, 또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알게 된다. 그리고 끝은 좋지 않았지만 '소란'이라는 같은 반 학생과 짧게나마 행복한 시간을 지낸다.


모두 영서를 안타까워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게 본인에게 '삶의 무게' 혹은 '삶의 짐'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도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남들보다 일찍 독립해야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일어났던 사고는 등굣길에 탄 버스 라디오에도 나와서 전교생이 그날 아침 그 친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았다. 이전부터 워낙 활발하고 웃는 게 정감 있고 예쁜 친구여서 사고 이후에도 구김살 없이 사람들 만나고, 친구들을 사귀고 했지만 『너를 읽는 순간』의 영서처럼 언제나 타인과 한 발 물러서 있는 게 느껴진다. 스스럼없는 친구였지만, 스스럼없을 수 없는 상황... 그 친구에게 사고가 일어난 후 그 친구와 내가 친해졌는데 순수하게 친구된 마음으로 다가갔던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다가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여러 감정이 혼재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자주 잤고, 나 역시 그 친구가 머물던 고시원에 몰래 들어가 같이 놀고는 했었는데 지금도 그 고시원 방이 생각난다. 고시원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일절 소음을 내지 않고 신발을 벗고 복도를 걷고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 소곤소곤거리며 웃고 이야기하던 그 순간들.


『너를 읽는 순간』 마지막 부분은 안타깝다. 영서가 머물던 모텔에 불이 나고, 영서를 알던 사람들이 놀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럼에도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희망을 남겨놓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영서는 구출되고, 영서 고모부가 다시 영서를 데리고 와 사는 것으로 나도 상상하고 싶다. 해피엔딩. 물론, 인생이 지속되는 한 '엔딩'은 있을 수 없다. 영서가 뛰어넘어야 할, 그리고 감내해야 할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영서의 삶이기도 하고, 영서 주변인의 삶이기도 하고,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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