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사 1 - 새롭게 밝혀진 문명사 : 문명의 출현에서 로마의 등장까지 신세계사 1
쑨룽지 지음, 이유진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역사는 인간이 만든 '관념의 산물'이다. 실제로서의 '실체'가 있기 보다, 개인과 집단이 어떤 상(플라톤이 말한,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상에 역사적 사실과 흔적(유물)을 퍼즐 맞추듯 조각조각 끼워 맞추어 전체적 그림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 아닐까 싶다.


구석기인들은 신석기인들이나 청동기 시대 사람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렸다. 동굴 벽의 입체감을 그대로 살려서 동굴의 튀어나온 부분에는 실제 동물의 근육이 강조되는 부위를 그려 꼭 지금 시대의 3D 영화처럼 동물을 생생히 구현한 것이다. 일정하게 발광하는 전깃불이 아닌, 불규칙적으로 매 순간 일렁이는 횃불로 동굴 벽을 비추면 거기 그려진 동물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구석기인들은 동굴 깊은 곳에 왜 동물 그림을 그렸을까? 어떻게 원시시대라 할 수 있는 구석기 시대에, 그토록 사실적이고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당시 구석기인들이 안료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로 깊었기에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주류 학계의 의견은 ① 사냥 연습, ② 사냥 성공을 비는 제의를 위해, ③ 넘쳐나는 예술 혼, ④ 우연히 발견한 염색성 가루 등등으로 나뉜다. 이 의견들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학자는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보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고, 또한 문학에서 말하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역사학자들은 결코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그 시대, 그가 뿌리내린 그 시대의 시각으로 최대한 그럴 듯하게 과거를 읽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세계사' 역시 마찬가지다. 말은 '세계사'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역사학자 등이 쓴, 지극히 (서)유럽식 사고의 '세계사'다. 그들에게 '세계'는 어디일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가기 전까지는 지중해 연안 지역 및 북아프리카와 서유럽 지역이다(북유럽과 동유럽 역사 또한 이 '세계사'에서 쉽게 배제된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아메리카 역시 '세계사'로 편입되는데, 말이 세계사이지 아메리카가 유럽사에 편입된 순간 이후를 서술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쓴 세계사의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점이다. 가령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보면, 철저하게 그리스 입장에서 이 전쟁을 다룬다. 그리스라는 나라의 역사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페르시아가 등장해 서로 전쟁을 했다고 적어 놓는다. 소위 세계사라고 하면, 그리스와 동등하게 페르시아도 이 나라의 형성 과정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와 왜 전쟁을 했는지 따로 자세하게 서술해야 하는데 유럽인이 쓴 <세계사> 속에는 '페르시아'가 갑자기 역사 외부에서 짠, 하고 나타나 그리스와 전쟁을 했다는 식으로 적어놓는 것이다. 로마와 카르타고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서술의 중심은 언제나 로마이고, 카르타고는 느닷없이 나타난 페니키아 식민도시라는 식이다.


유럽인들이 '세계사'라고 하는 책은 대부분 세계사라기보다, '유럽사'다. 유럽이 아닌 지역에 대한 서술이 있다고 해도, 그 서술은 유럽과 상관이 있기 때문에 적어 놓은 것일 뿐 진정한 세계사가 아니다.


극동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읽는 그들(유럽인들)의 <세계사>는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려 있고, 유럽인의 입맛에 맞춰 쓴 너덜너덜 조각나 있는 <유럽사>일뿐이었다.




<세계사>를 가장한 <유럽사>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인 역사학자가 쓴 『신세계사』. 저자 쑨룽지는 처음부터 <유럽사>일 뿐인 <세계사>를 비판한다.


이렇게 해서 가르치게 되는 건 세계사라고 할 수 없다. 역사라고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소위 정상급 대학이 세계사라고 내건 것도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서양사다. 나는 강의실에서 자주 이렇게 탄식한다. "타이완의 세계사 교육은 서양 중심론의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25쪽)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역설은 이것이다. 서양 중심론, 포스트식민주의, 다문화주의 등이 죄다 서양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서양 중심론 제거, 글로벌 사관, 동서양의 대분기설 등은 사실 서양의 흐름을 뒤쫓는 것이다. (25쪽)


저자는 소위 '세계 4대 문명설'에도 비판적이다. 세계 4대 문명은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에서 발흥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흥한 <인더스 문명>, 그리고 황허 강에서 발흥한 <황허 문명>을 일컫는다. 저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강 유역에서 발흥했다기 보다, 근처 산에서 무관개 농경을 먼저 한 후 기술이 발전해서 강 유역의 관개 농업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한다. 무관개 농업보다 관개 농업이 훨씬 발달한 농사 기술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바다와 강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물 중심 유럽식의 사고가, <문명은 꼭 큰 강 유역에서 발흥한다>는 생각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생각이 틀렸다고 본다. 정말 큰 강 근처에서 문명이 발흥한다면, 왜 아메리카 대륙, 특히 문명이 발흥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가진 '미시시피강 유역'에서는 왜 문명이 발흥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다고 보지만(물론 석기를 주로 사용), 당시 대제국을 이루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구를 가졌던 잉카 제국은 강이나 바다에서 발흥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살기 힘든 산에서 대제국을 이뤘는데 이들이 아무리 석기를 썼다고 해도, 천문학이나 수학 수준을 보면 과연 뛰어난 문명을 지닌 곳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이 쓴 세계사에는 그들의 '문명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아메리카 문명은 철저히 배제한다.


이런 역사 비판 의식으로 저자는 인류 시작부터 로마 시대까지, 유럽인 사고에서 벗어난 세계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남도어족' 이야기였다. 거의 처음 접하는 역사 이야기여서 내가 완전히 소화했다고 할 순 없지만, 아무튼 놀라웠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타이완을 출발한 남도어족은, 바다로 남서진, 남동진한다. 그래서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에 퍼져 살게 되었고,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근처 섬인 마다가스카르까지, 동쪽으로는 폴리네시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 코앞인 이스터섬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224쪽


남도어족들이 어떻게 증기선 없이도 거센 바람과 파도를 거슬러서 폴리네시아를 거쳐 이스터섬까지 갔느냐이다. 특히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전 남아메리카의 고구마가 폴리네시아 중동부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남도어인들이 남아메리카에 갔다가 다시 배를 돌려 폴리네시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남도어인들은 제대로 된 역사(글로 체계적으로 남긴)가 없어서 유럽인들에게 미개인, 원시인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항해기술을 가졌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런 역사를, 역사로 여기지 않았으며 문명으로도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유럽식 문명'만 문명으로 생각하며 그 세계 속에 편입된 역사만 세계사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내가 느끼기에, 글쓴이가 바로 '중국인'이라는 것이 바로 한계다. 그는 중국이라는 범위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지만, 책 중간중간에 어쩔 수 없는 중국식 사고방식이 튀어나온다. 가령 서양 역사학자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중국 사마천 이야기를 한다던가 이런 식으로 다른 지역 역사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중국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중국인이 아닌 나로서는, 왜 이런 맥락에서 중국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억측하는지는 몰라도 중국에 대한 글쓴이의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중국인이 아닌 나로서는 살짝 거부감이 느껴진 요소였다.


어쨌거나 일제강점기 이후로, 세계사는 곧 유럽사라는 인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깊다. 서양을 발전의 롤모델로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 때문이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세계사 코너를 둘러보면 거의 다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다.


『신세계사』의 저자는 중국인으로서, 유럽인 중심의 세계사를 고쳐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사를 읽고, 써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 새롭게 읽고 쓴 세계사가 우리 나아갈 길을 비춰줄 등불이 되고, 길라잡이가 되리라고 믿는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언급했듯, 역사는 '우리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럽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 의문을 품고 있는 분,

다양한 세계사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