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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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고 비극으로 가득 찬 외로운 현실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한 남매의 사랑 이야기.

소설은 콜롬비아의 극도로 양극화된 현실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내전과 게릴라 단체와 극우 민병대의 잔혹한 행위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리는 왜곡된 경제 시스템은 콜롬비아의 모순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중산층은 있을 곳이 없으며 몰락하고 있다.

중산층의 자녀들은 방황한다. 그들의 처지는 빈곤층과 다를 바 없는데, 교육은 부자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받는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소외된 존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부모님의 비루함을, 약함을, 무능함을, 무지함과 비열함을 경멸하면서 동시에 부자들을 증오한다. 가난한 중산층 자녀들은 그렇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문학으로, 영화로, 예술로 도피한다. 그 자체가 그들을 구원해 주지 않지만 그들은 이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쉬며 기다린다. 사랑을... 사랑만이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도 적었듯이 이 책은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남매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까 뉘앙스가 끈적끈적한 느낌이지만, 그런 것과 달리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 <존재와 존재 간의 온전한 이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굳이 정의 내릴 마음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말해 본다면, 그 알맹이는 '이해'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 '이해' 역시 머리로 하는 이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의 이해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포옹'도 포함된다.

누구보다 외로웠던 8살짜리 남자아이는 열이 팔팔 끓고 너무 아프자 기뻐한다. 이 비루하고 외로운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죽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죽고 싶어서 애가 타는데, 그동안 자기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질투만 많았던 누나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자 그들은 통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 것이다. 누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으로부터 동생을 지켜주겠다고 결심했고, 동생은 자신이 온전히 이해받음을 느끼며 자신은 강하다고, 자신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남매는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만들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만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비열하고 옹졸한 부모 밑에서 남매는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때가 되면 둘은 자유를 찾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대가 남매를 지탱한다.

동생은 문학과 영화에 심취한다. 나중에는 철학에도 빠지는데 그는 조용하지만 새롭고 기민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때로 아무도 모르게 벽에 그래피티를 그린다. 그는 첫 그림에 화산을 그리는데,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폭발시키듯 벽에 그린 것이리라.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비극적 요소가 들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누나가 사라진 것이다. 처음엔 사라진 줄도 몰랐다. 평상시 여행을 자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남동생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누나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버지와 실종된 누나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현재 콜롬비아의 사회적 모순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 세계화된 양극화와 범죄의 모습도 보여준다. 인도 델리, 태국 방콕, 일본 도쿄, 이란의 테헤란을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곳은 분명 아름다움과 선량함도 있지만, 대부분은 추함과 범죄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무역 경로와 똑같은 경로를 갖는 마약과 섹스 산업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저자 산티아고 감보아는 1965년에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자라고, 유럽에서 공부를 했다. 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인도 델리에서 외무 영사로도 일했다. 외국에 오랜 기간 체류한 경험으로 그는 콜롬비아나 다른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순과 차별, 불평등이 있음을 보여준다.

콜롬비아는 내전과 좌익 게릴라, 우익 민병대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폭력적이다.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그 나라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고, 탈출을 꿈꿔 해외로 가지만 해외 역시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설 속 태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왕처럼 대접받길 원하는 호색한들이 모이거나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다. 태국의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에 분노하며 그들의 사법 시스템을 외국인에게 비우호적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응징한다. 일본은 겉으로는 깨끗한 나라이지만 그들의 성적 취향은 변태적이고 더럽기 짝이 없다. 또한 야쿠자들은 성 접대부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자유를 박탈한다. 이란은 어떠한가. 일본에서 만난 성 노예들을 꿰어 자유와 사랑을 주겠다며 자기 나라로 데려가지만, 자기들 나라에서는 그 여성과 결혼해 또다시 그녀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도록 한다.

감보아가 이 소설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콜롬비아의 비극적 실상일 것이다. 콜롬비아가 문제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자 한 또 다른 것은, 외국도 콜롬비아처럼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소설의 주인공 남매는 자유를 꿈꾸며 외국을 이상향으로 삼지만, 어느 면에서 외국은 콜롬비아 모순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 남매는 부자를 경멸한다. 그런데 남매는 부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자들로부터 좋은 책과 작가, 그림을 알게 되었고, 철학 사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국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을 때에도 (아마 부잣집 자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소설을 쓰는 지식인인) 영사의 도움을 받는다.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그들 자체로는 자유와 정의는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소설 마지막, 후아나가 자유를 위해 홀연히 사라진 것이 책에는 해피엔딩처럼 맺어졌지만 도쿄로 갔을 때의 일처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찜찜했다.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보호받지 못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오직 사랑인 걸까. 죽은 남동생 마누엘 대신, 후아나가 낳은 마누엘로 이어지는, 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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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외의 첫 콜롬비아 장편 소설.

책 속에는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작품 이름이 나온다. 이것만으로 나는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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