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 -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의 내일을 위한 철학 입문서
나오에 기요타카 엮음, 이윤경 옮김 / 블랙피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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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요한 일을 두고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무지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을 모른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 이유로 옳지 않다. 

   생각이란 사실 머리나 뇌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생각하거나 종이 위에서 생각하거나 냉장고의 내용물을 손에 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이 첫째 이유다. 

   그리고 혼자서 생각하지도 않는다. 설령 혼자서 뭔가를 하고 있을 때라도 거기에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목소리가 아닌 말,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실제로 생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이유다. 

- 44쪽, 노야 세게키, 『처음 생각할 때처럼』 재인용 
중학생이 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보통 중2병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볼 땐 '이전의 나'와 '현재 달라지고 있는 나'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트기 때문에 철학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변화>와 <낯섦>은 곧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므로 이 시기엔 친구와 어울리고 싶고 이성에게 많은 호기심을 갖는다. 기나긴 인생에서 누군가를 그토록 열성적으로 알려고 하는 시기는 바로 이때가 아닐까(다른 시기 때는 '판단'이 앞서지, '호기심'은 크게 없다고 본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비추어 나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곧 철학이며, 생각하는 자는 철학자다. 그런데 보통의 청소년들은 학업이나 일상 생활, 금기(禁忌) 때문에 호기심과 생각은 뚝뚝 끊어지고 파편화 되어, 철학자로서의 싹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만약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힘을 준다면, 그 청소년의 미래는 얼마나 달라질까.


이 책은 철학 및 사상학 전문가 35명이 쓴 철학 입문서다. 일본 원서는 독자 타겟을 어떻게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살짝 고등학생을 위한 철학 교양서 같은 느낌이 든다. 구성이 논술 참고서 느낌이 살짝 든다. 대화, 철학적 질문 및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철학자와 그의 생각 그리고 이 장의 정리. 이런 구성이다. 철학적 질문도 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이 던질 법한 질문이 많다. 전체적으로 중고생이나, 20대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철학 입문서. 각 나이에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 다른데, 이 책은 학생과 20대가 많이 생각할 것 같은 질문을 다루고 있다. 그래도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읽어도 좋다. 20대랑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나도 읽었으니까 ㅎ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몇 부분

토론은 공통된 언어를 가지고 공통된 기본 전제를 수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들 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은 토론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 사람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147쪽, 포퍼, 『추측과 논박』 재인용
포퍼가 이런 말을 했는 줄 몰랐네. 이 인용문을 보고 포퍼의 책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이 문장만으로도 포퍼의 책을 충분히 애써서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저런 말을 한 사람은 자신의 글도 진심을 다해서 썼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는 이런 만남이 좋다.

  '삶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이 말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무엇보다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우리가 생에 아직 기대할 만한 것이 남아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 철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묻지 말고 우리 자신이 물음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략) [그럼 어떻게 해야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기거나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동으로, 적절한 태도로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다. 삶이란 삶에 대한 물음에 올바르게 답할 의무, 삶이 각자에게 던져준 과제를 완수할 의무, 시시각각으로 주어진 요청을 충족할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밤과 안개』 中

  프랭클은 '삶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삶'은 수동적인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처하는 상황을 올바르게 마주하고 행동하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야말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고 여겼다. 

167-168

빅터 프랭클,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위의 재인용 구절을 읽고 좀 더 관심이 많이 생겼다. 빅터 프랭클은 프로이드와 아들러를 사사하며 정신의학을 배운 사람이다. 유대인이어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붙잡혀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살아 돌아와 그 곳에서의 경험을 엮은 『밤과 안개』를 펴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에 이미 정립해 놓았는데, 극한의 장소였던 나치 수용소는 빅터 프랭클 자신의 이론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극한의 장소에서 누군가 깨달은 것은, 강하게 와닿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내 마음의 뭔가를 자극한달까 좋았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생각하고, 결론 내린 것은 충분히 내가 공부할 만하다. 이런 게 바로 철학의 유용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해야 할 생각을 다른 사람이 먼저 하고, 길을 제시해 준 것, 나의 시간을 많이 절약해 준다. 게다가 경험까지! (빅터 프랭클이 겪은 수용소의 생활을 나는 결코 겪고 싶지 않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혹은 많은) 시간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건 확실하다. 이해하고 넘어간 후, 나는 한 발 더 나아간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철학책을 읽고 그 책이 다루는 질문을 깊이 생각해 보는 건 나에게 정말 유용하다.

이 책의 267쪽에는 일본의 근대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이야기가 나온다. 올해 초에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자서전을 읽었던 터라 좀더 흥미롭게 읽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의 농민 계급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지만, 흥정을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그 지역의 부농으로 덕망 높았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워 나갔는데 어느 날 무사 계급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 계급의 부당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반란에 가담하게 되는데 일이 잘못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평소 그를 잘 보았던 사람에 의해 추천을 받아 그는 싫어했던 무사 계급이 되었고, 나아가 도쿠가와 가문의 수행원이 되어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유럽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그동안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유럽에 대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유용한 것을 보고 배운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은행을 비롯해 500여 개에 달하는 회사를 세우고 일본의 경제를 완전히 근대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재와 도덕의 일치에 힘쓰고 인격을 높이고 공공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생각에 따라 도덕을 숭상하는 자는 실업을 멸시하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는 학문이나 덕의가 필요 없다고 알고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야만적인 생각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273쪽, '상도덕 및 서구 사찰담' 재인용

조선의 상도(商道)를 세운 김상옥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렸을 적 논어를 깊이 공부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웠고 무엇을 보고 겪든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 삶의 굽이굽이 마다 고민을 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런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물론 우리나라로서는 이 사람 때문에 수탈의 아픔을 겪어 밉지만(일제강점기 시 일본 은행 설립이나, 일본 자본의 침투, 경제 약탈 등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이 사람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 사람은 실업가이므로 직접적으로 우리를 수탈한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이 사람의 영향이 아주 컸다. 당시 일본 경제는 이 사람을 빼놓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는 본받을 바는 있다고 본다. 그를 있게 한 건 바로 철학의 힘이었으니까.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질문에, 답이 되어 줄 혹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철학자와 철학책을 소개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고, 어른들이 봐도 유용한 내용이 많다. 무엇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은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발췌문이 좋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은 생, 노, 병, 사. 이 네 가지 이유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생각'이다. 보통 불교를 종교라고 보아서 부처님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지만, 부처님은 숭배의 대상이기에 앞서 한 명의 철학자였다. 부처님은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과 깊은 고민, 실천을 하신 분이다. 이런 걸 보면, 철학이 인간을 구원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싯다르타, 부처님을 생각이 구원했듯이. 이 책에 언급되는 장자나 노자도 그렇고, 다른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가끔씩의 힐링은 삶을 안정되게 해주고, 기분 전환을 해 주지만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근본부터 바꿔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절함과 노력 여하에 따른 문제지만.

어쨌거나 더 나은 삶, 더 나은 하루를 위해서는 철학을 해야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철학 말고, 내 일상의 질문,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이런 철학이 우리를 구원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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