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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신간도서이자 오쿠다 히데오의 일본범죄 장편소설 <죄의 궤적> 1권과 2권을 읽었다. 1권은 불운한 가정사의 시골소년 ‘우노간지‘의 빈집털이와 그의 선주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우노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패턴과 확연히 다른 소설의 전개로서 ‘오쿠다히데오‘ 작가는 상당히 친절하게 우노의 범죄현장과 심리등을 순차적으로 묘사한다. 또 소설 속의 형사들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함인지 우노가 누구인지 여러번 반복설명까지 해 준다. 그래서 초반에 반전재미나 호기심 또는 긴장감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추리소설, 범죄소설을 자주 접해 이해도가 높은 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권을 읽은 후 <죄의 궤적>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단순 재미나 쾌락을 위한 범죄소설이 아니었다. 선악의 경계에 선 인간에 대한 근본적 물음, 선과 악의 시작과 끝을 나열하고 죄의 근원을 깊이 들여다보며 무엇이 죄를 만드는지, 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인간이 죄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1권과 2권을 자세히 들여다 볼까? <죄의 궤적> 1권은 주인공 ‘우노간지‘의 암울한 성장배경의 전제를 암시한다. 아비없는 우노간지를 남동생이라 부르는 애정없는 젊은 엄마(우노요시코)와 야쿠자계부(고미야쇼조)에게 여러번의 자해공갈로 뇌손상을 얻어 바보가 된 우노간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노간지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조차 모른 체 습관적으로 빈집털이를 하며 살아갈 뿐..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은 한 아이의 성장과정과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1권에 고스란이 담겨있다.
일본 레분토라는 섬에서 청어잡이로 일하는 20살 된 간지는 어부가 되기보다 도쿄의 점주가 되고 싶어한다. 적당히 목돈을 챙긴 후 도쿄로 갈 부푼 꿈을 꾸던 간지는 동네 빈집털이를 하다 우연히 선주 사카이 도라키치가 살인되는 범죄현장에 휘말리며 살인자로 의심받는다. 업친데 겹치며 다른 어부 사카이에게 빈집털이까지 걸리고 그의 괴략에 빠져 암암리에 배를 타고 동네를 떠나다 죽을 고비를 겪는데.. 우노간지가 어떻게 레분토에서 탈출하고 도쿄까지 이동하였는지를 장엄하게 서술한다.
2권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도쿄까지 도망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여러사건에 엮기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빈집털이를 하다가 결국 호스티스살해와 유괴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간지를 추적하고 심문하는 형사들의 수사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영화나 미국드라마처럼 심문자에게 거칠거나 모멸감을 주는 형식은 아니였고, 일본의 특유의 치밀하면서 의도 된 수사법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색달랐다.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나라모토검사의 취조과정 중에 우노간지가 자아(?)를 찾고 자신이 누구이며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지 이유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오치아이 담당형사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편해졌다? 무슨 뜻이지?˝
˝내가 바보가 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마음이 편해진 거에요˝
˝그런 건가?˝
˝예 그래요. 적어도 태어날 때부터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뭔가 구원받았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충분히 지독한 일을 당했고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도 다소는 용서받지 않을까 하는....
˝그럴리 없잖아. 도둑을 만난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쳐도 용서받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먼 적어도 이유는 있어요˝
˝그런 게 이유가 돼?˝
˝오바씨는 몰라요. 나쁜 짓이라는 간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나를 만든 것은 아방이와 오마이니까요˝
2권 333p~334p
˝오바씨, 저번에 두 사람을 죽이면 사형이라고 했지요? ˝
˝그래 하지만 다 그러는 건 아니야.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으면 무기징역이 되기도 하니까˝
˝아니, 사형이 무서운 것은 아니에요.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마음이 무거워요˝
˝그런말 하지마. 모처럼 태어난 거잖어˝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았던 사람도 있어요. 내가 그래요˝
2권 361p
경찰의 추척 끝에 검거되고 여러번의 취조를 마친 우노간지는 현장검증 도중 도주했지만 유일하게 신뢰하는 오치아이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도주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사과한다. 형사들도 우노간지가 범죄에 노출 된 안타까운 사람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바씨, 나는 아이(요시오)의 목을 졸라 죽인 것 같아요. 하지만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기억은 없어요˝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래요. 그럼 사흘만 기다려주세요˝
˝알았어.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줘˝
˝뭐에요?˝
˝죽지마. 너하고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2권 409p
간지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레분토에서 자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달콤한 생각이 차오른다. 집은 가난하고 어머니도 할머니도 그다지 예뻐해주지 않았지만 레분토의 자연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 그대로 섬에 있었다면 나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하나도 둘도 모두 계부 고미야 쇼조라는 존재 때문이다. 어머니가 그 남자와 결혼한 탓에 나는 자해 공갈의 도구가 되었다. 그 남자를 죽이지 않고 사형당 할 수는 없다. 죽은 후라면 쓰가루 해협에 몸을 던져도 좋다.. 나는 이따금 혼이 빠져나간다. 오바는 믿어줄까? 나는 죽일 생각 같은건 없었다..
2권 405p~406p. 작가독백 중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그를 죄짓게 했는지의 과정은 납득 될 만하다고 보여진다. 우노간지라는 한 인간은 어쩌면 적당히 키우다 자신을 버린 할머니와 자신의 탄생을 부정하는 젊은 엄마 그리고 자해공갈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계부 또 바보가 된 우노를 놀리고 죄를 덮으려는 주의사람들로 인한 적지 않은 피해자이며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 <김봉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살인은 용납할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잘못이지만 한번 정도는 그 사람이 왜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질문해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누구나 악해 질 수는 있다고 우리 모두는 약한 존재이고 늘 선과 악의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다고 말이다. 죄진 사람을 미워하기 앞서 한 번 정도는 죄만을 미워 할 수는 없을까 심도있게 고민 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을 뒤흔든 유괴사건의 전모를 그린 소설 <죄의 궤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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