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평점 :
올여름, 폭염이 시작되기 직전에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특별할 게 없었던 5월의 어느 날, 갑자기 잘 먹지 못하는 듯해 병원을 찾았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1년이라는 의사의 소견과 이어진 한 달간의 열렬한 투병에도 불구하고 한 달 보름 만에 갑작스럽게 떠났다. 마지막 며칠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떠나보낸 후 처음 한 달간은 거의 매일 오열하는 수준이었고, 두 번째 달은 그냥 내내 울었고,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조금 덜 울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움과 위화감에 고통스럽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위로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사실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씁쓸했다. 위로랍시고 만나 밥을 사준 몇몇은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나을 뻔했을 정도로 무심한 말로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다. 상실감, 이별, 위화감, 죄책감, 그리움, 우울감. 이런 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까지도 잔여물이 남았다. 보통 그러하기 때문에 나도 그냥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슬픈 와중에도 웃고, 일을 처리하고, 회식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사놓고 강아지를 간호하고 떠나보내고 슬퍼하느라 읽지 못했던 책들도 읽었다.
<철학의 쓸모>는 그런 내게 쓸모가 충분한 책이었다. 딸이라 여긴 강아지의 죽음을 맞아 상실감과 고통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그런 문제(죽음, 허무, 고통)를 바라보는 통찰과 나름의 철학적 처방을 제시하는데, 어떤 구절들은 너무나도 동의가 되었고 현재의 마음과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위로가 되었다. 아마 그것이, 그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야먈로 철학의 쓸모가 아닐까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죽음이 아닌 타인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만을 경험한다. 그래서 죽음은 애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죽음은 나날들이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그의 존재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보란 듯이 무너뜨린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삶의 덧없음을, 그의 부재가 만들어낸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공허를 경험한다. 바로 그 순간이 삶에서 무를 대면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50쪽)
“언젠가 고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추억만 남는다고 해도,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말은 거짓이고 기만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매일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의 죽음을 다시 마주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일 역시 오늘로 끝나지 않고 매일 계속된다. 철학은 이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53쪽)
“바라볼 수 없고 실감할 수 없는 것에는 치료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슬픔을 위로하려고 하는 이들은 슬픔을 더욱 깊어지게 할 뿐이다.” (55쪽)
저자는 죽음으로 인한 그런 상실과 슬픔에 대한 처방으로 몽테뉴의 <에세>를 언급한다.
“어설픈 위로나 격려보다 주변을 환기하는 편이 낫다. ‘변화는 늘 고통을 덜어주고 무너트리며 흐트러트리기’ 때문이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고통과 싸우려 들지 말고 ‘주변환경, 일거리, 만나는 사람들에 변화를 주면서’ 고통을 가라앉혀야 한다. (…)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소소하고 즐거운 활동일수록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삶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잠시나마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56쪽)
단언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서 좋았다. 슬픔과 상실감이란 시간이 지나면 바람에 불려 날아가듯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그것은 인생이 품어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다만) 잠시나마 걷어내기 위해 주변을 환기해보는 게 어떻냐는 소박한 조언이 내게는 더 실용적이고 위로가 되었다.
나는 철학적 지식을 쌓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철학이라는 것이 말장난이나 지나친 비약으로 인한 뜬구름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는데, <철학의 쓸모>를 읽으면서, 아, 철학이란 게 실제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쇄신하거나 관점을 바꿔주는 실용적인 측면이 있네, 하고 새삼 느꼈다. 이 책은 그렇게 죽음과 슬픔과 질병과 고통과 사랑과 삶의 다양한 개념들을 진단하고 처방한다. 확실히 지금의 내게는 쓸모가 있는 독서였다.